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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말들을 위한 時間

Led Zepplin 2009. 7. 20. 13:26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영화는...

무지막지한 더위와 모래 바람의 땅으로 비유되는 탓에, 이란과 이라크 국경산악지역의 폭설과 엄청난 추위를 모르는 우리의 상상력을 비웃으며...

이란과 이라크간의 아니, 기독교와 회교도 간의 오랜 대리전쟁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아윱 일가의 처절하도록 고난한 삶에 앵글을 맞추며 출발한다.

 

'아윱(Ayoub)'은 이제 겨우 12살, 그의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낳다가 그만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쿠르드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국경지역에서의 밀수업을 위해 집에 있는 날이 없다.

눈물 속에 피어난 한 떨기 야생화 같은 '아마네(Amaneh)'는 아윱의 여동생이다.

아마네는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집안 사정을 말해 준다.

 

못사는 집에는 꼭 애들이 많듯이, 그녀에게는 아윱말고도 마디라는 또 다른 오빠가 있다. 그 '마디(Madi)'는 선천성 장애아다.

불과 네 다섯 살 정도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하루라도 약과 주사를 거르면 살 수 없는 장애아다.

아윱과 아마네는 그런 마디를 데리고 돌보며 시장에 나가 짐을 나르고 물건을 신문지로 포장해주며 돈을 벌어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춥고 힘들다.

밀수품을 몸에 감추는 조건으로 겨우 얻어 탄 트럭이 검문에라도 걸리면 매서운 추위와 험한 산길을 돌아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집에는 언니 로진이 겨우 젖을 뗀 막내 동생을 돌보며 살림을 한다.

 

아윱과 아마네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연습장 노우트 한 권 사기에도 생활은 벅차다.

어느 추운 날에 마디를 안고 아빠의 무덤에 간 것 때문에 아윱은 아마네를 혼낸다.

가볍게 뺨을 맞은 아마네, 하루 종일 심통이 나있고 오빠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다.

이를 눈치 챈 아윱은 살살 달래보지만 "나 때렸잖아"하며 여전히 뾰로퉁이 부어 있는 아마네.

이렇게 순진무구한 천사들에게 그 누가 전쟁과 죽음과 고통과 절망을 강요했단 말인가...

 

참으로 이렇게 슬픈 현실이 지구상 한 편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거다.

도적이 출몰하고 포탄의 굉음이 쿵쿵거리는 국경을 넘나드는 참담한 그들의 삶은 지옥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아버지마저 국경을 넘나들다가 지뢰를 밟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다.

온통 지뢰밭인 땅에서 농사도 지을 수도 없는 아윱은 어린 나이임에도 이제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란 짐을 지기에 아윱은 이제 겨우 12살.

자신의 몸보다 두 배나 되는 짐을 등에 지고, 말(Horse)조차 취하지 않고는 넘지 못하는 국경의 산들을 그는 넘는다.

오직 마디와 누이들을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운명의 신은 아윱의 그런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비웃듯이 희롱한다.

죽음보다 깊은 고통의 노역으로 받게 되는 품삯마저 제 때에 받지 못하거나 떼어먹히기 일쑤다.

좀체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절망할 시간도 아윱에게는 없다.

누이 로진은, 곧 죽게 될 마디의 생명을 연장하기위해 시집을 간다.

말이 시집이지 그녀는 팔려가는 것이다. 신랑의 지참금 대신 마디의 수술을 해주는 조건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어 산을 넘는다.

 

쌀자루 같은 푸대에 넣어져 로진과 함께 떠나는 마디, 아윱은 그 때서야 울 수 있다.

마르지 않는 눈물은 그의 사랑의 깊이며, 돌리지 못하는 발걸음은 가족을 향한 절절한 아픔이다.

그러나, 팔려간 신랑 집의 시어머니는 마디를 팽개치고 그 값으로 얻은 노새 한 마리.

아윱은 그 노새를 팔아 마디를 수술시키기로 결심하지만, 수술을 시킨다 해도 어차피 7,8개월 정도를 더 살수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아윱은 마디를 살리기 위해 노새 값이 더 좋다는 이라크를 향해 국경을 넘기로 작정한다.

 

가혹한 삶의 무게는 국경에 내리는 폭설보다 무겁고 살을 에이는 추위보다 더 무섭다.

마디는 더 이상 주사도 맞을 수 없고 곧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마디를 살리기 위해 아윱이 이라크로 떠나려는 시장에까지 험한 눈길과 산길을 내려와 오빠에게 도시락을 건네는 아마네.

보호받고 돌보아지며 자라야 마땅한 어린 소녀가 오빠의 안위를 걱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겨우 도시락 싸는 것뿐인 까닭으로 도시락 보따리를 내밀며 사선을 넘어가는 오빠를 위로해야 하는 슬픈 현실.

이렇게 전쟁은 어린 소녀를 미리 커버린 기형의 어른소녀로 만들었다.

그 기형의 소녀는 오빠가 마디를 치료하여 돌아오는 동안, 갓 젖을 뗀 동생을 돌보며 살림을 책임져야 한다.

 

민족과 종교와 권력은 그렇게 아름다운 아마네를 지옥의 한복판으로 몰아넣고 악착같이 희롱하고 고문한다.

아마네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는다.

미움이란 단어는 애초부터 아마네에게는 없다.

아마네는 다만, 기도할 뿐이다. 마디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마디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오빠가 무사히 사선을 넘어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일등을 두 번이나 한' 자신에게 연습장을 선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마네는 기도할 뿐이다.

비록 잔인한 운명 앞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을지언정 그녀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아빠가 누가 묻어 놓은 지뢰에 죽어 갔는지 아마네는 묻지 않는다.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우리는 더욱 슬프고 오래도록 처연한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다.

 

품삯도 받지 않고 짐을 날라주는 조건으로 합류한 밀무역하는 무리들은 국경의 혹한과 험준한 산악을 넘기 위해 말과 노새에게 술을 먹인다.

아윱이 그 조그만 몸에 한 손으로는 노새의 고삐를 쥐고 한 손으로는 마디를 안고 국경을 넘게되는 날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춥다.

그래서 노새와 말들에게는 평상시의 배가 넘는 술 네 병을 마시게 한다.

그렇게 아윱은 성인 장정이 혼자 넘기에도 힘든 국경의 산악을 마디를 업고 혹은, 안은 채 노새를 끌며 오른다.

차마, 눈물읎이는 볼 수 없는 징헌 영화인 거다.

영화의 포스터에 씌여진 그대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가혹한 동화'라는 설명은 절대 구라가 아니다.

 

폭설은 끝없이 내리고, 살을 찢을 듯이 불어대는 사나운 삭풍은 뼈 속까지 얼린다.

말과 노새마저 한발자국 내딛기에도 힘든 그 잔인한 월경의 행렬, 그래도 아윱은 맨 손을 후후 불며 마디를 감싸안고 산을 오른다.

누가 이토록 잔혹하고 처절한 삶을 나어린 아윱에게 던져 주었단 말인가...

잔인하고 잔혹한 운명의 신은 또 한번 아윱을 희롱하고 배신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며 겨우 다다른 산등성이에는, 망치 피하면 다음엔 도끼 만난다더니... 도적놈들이 기다리고 있는 거다.

올라왔던 그 죽음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하는 그 비참한 시간 속에서 말들은 쓰러지고 너무 취한 말들은 넘어지고 나면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말을 포기하며 목숨이나마 건지겠다고 산 아래를 향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려 내려가지만, 아윱은 노새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노새는 곧 마디의 목숨이기 때문인 거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 노새의 고삐를 당기며 절규하는 아윱.

"누구 없어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하고 울부짖는 아윱...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이 장면은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명장면이며,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 되고야 말았다.

 

지옥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한바탕 소란이 멈추고 스크린이 페이드 아웃(Fade out) 페이드 인(Fade in)을 하고 나면...

폭설은 그쳐있고 바람도 잦아든 산의 정상, 국경의 철조망이 쳐진 곳에서 아윱은 어딘지 모를 앞을 향해 시선을 던진다.

아윱의 눈에 맺히는 피사체는, 아마도 이라크로 가기로 했으니, 이라크일 것이다.

어린 아윱이 이라크에 가서 노새를 팔고 마디를 수술시켰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아랍어로 쓰여진 엔딩 크레딧은 천천히 올라간다.

그것은 아윱의 삶이, 아니 쿠르드족의 눈물겨운 고난의 삶이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까닭일 것이며...

잔혹한 전쟁의 그림자가 오늘 이 시간에도 쿠르드족의 일상을 파괴하며 수난의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소녀 아마네의 눈으로 본 전쟁같은 삶 속에서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태어난 빛의 예술인 거다.

주인공 아윱의 눈에 비친 전쟁통의 삶과 일상 그리고 고난과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소녀 아마네의 눈에 비친 세상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의 힘이며 영화적 완성도를 견인하는 눈부신 아름다움이다.

소녀 아마네가 오빠 아윱을 따라 시장통에 나가 돈을 벌고 장애아인 마디를 돌보며...

기형적인 얼굴을 한 마디에게 수시로 뽀뽀를 해대는 장면에서 소녀의 눈 속에 감추어진 처연한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공부가 하고 싶은 아마네가 오빠에게 "연습장 사다 줄거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 풍족하여 버리는 것이 많은 우리의 삶이 낯 뜨거울 뿐이다.

세찬 눈발이 몰아치는 날에, 그 작은 몸으로 마디를 안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서...

"제발 마디 오빠를 살려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하며 우는 아마네를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다.

소녀 아마네의 눈을 통하여 세상의 구원은...

전쟁과 이념과 민족과 국경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임을 영화는 자명하게 보여준다.

아마네의 사랑이 있기에, 아윱의 치열한 삶의 의지가 있기에 영화는〈취한 말들의 시간〉이 아니라〈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 된다.

그러나,〈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그 지옥같은 전쟁속의 삶과 일상에서, 비록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 속에서도...

삶을 향한 진정한 의지와 가족과 이웃 나아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념과 사랑을 잃지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고귀한 시간인 거다.

 

어떤 권력의 횡포와 살인으로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고 빼앗아갈 수 없는 시간, 그것이 바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다.

영화는 바로 그 인간의 시간을, 그 위대한 시간의 영속성과 구원성을 아마네의 눈을 통해 소리 없이 조용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과장이 없다. 인위적으로 과장하고 각색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억지를 감독은 부리지 않는다.

화면에 담긴 리얼리티와 함께 영화를 불후의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키는 힘은 바로 이런 감독의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A Time For Drunken Horses>은...

정의의 신(神)이 졸면서 임무를 게을리 하는 시간이며, 우리의 어린 이웃이 먹을 것과 약이 없어 절망 속에 시름하는 아픔의 시간인 거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어른들은 지뢰에 목숨을 잃고, 열 살 안팎의 어린이들이 밀수품 포장과 운반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쿠르드족의 운명을...

과장없이 담담하게 보고한다.

이 담담함이 영화 속 슬픔을 증폭시킨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쿠르드족이 만든 최초의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영화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아름다움은 생의 비극적 고통을 폭발하듯 표출시키지 않고 내적으로 깊숙이 다스리고 있다는 점에서 슬픈 아름다움이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하고 산타페, 사라예보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영화제가 이 영화에 기꺼이 그랑프리 등을 헌사한 이유는...

그 슬픈 아름다움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는 이유 중 하나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서사의 진행은 삶의 극한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물들을 끌어안으며 등장하는 배경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등장 인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값싼 동정심을 구하거나 눈물을 쥐어짜게 하는 일회용 전시효과보다는...

삶의 본질적 근원을 건드리며 진행되고 있는 점인 거다.

 

미국의 평론가 Godfrey Cheshire의 말은 음미할 만 하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과거 디킨즈나 드레이저같은 작가들이 보여준 열정적인 사회 참여 의식부터...

이태리의 네오리얼리즘의 감독들이나 트뤼포같은 영화감독들이 보여준 인간적이고 시적인 정서까지...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일군의 대가들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그러한 요소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창조해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아마, 그가 작품에서 눈앞에서 긴박하게 벌어지고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불어 넣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神)과 전쟁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삶의 고귀함 그리고 인간(人間)의 영혼...

눈보라치는 험준한 산악지대가 연출하는 대자연(大自然)의 스펙터클한 아름다움은...

이어 닥칠 비극적인 상황과 결합되면서 비극적 서정성을 증폭시키며 영화를 시적으로 승화시킨다.

디테일의 섬세하고 치밀한 재현을 통해 획득된 단단한 리얼리티와 이야기의 진실성은...

작금의 어떤 현란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감동의 깊은 파장으로 현대인의 심금 깊숙한 곳을 울린다.

 

영화가 세계의 유명 평단으로부터...

"뇌리에 박힌 채 잊혀지지 않는 (haunting and unforgettable)" 그리고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heartbreaking)" 걸작으로 찬사받는 것은...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 만들어 낸 아름답지만, 가슴 가득 슬픔으로 채워주는 그 리얼한 진실에 있는 것이다.

오늘도 지구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많은 민족들에게 그들의 평화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