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태평성시도’의 꿈

Led Zepplin 2019. 4. 20. 23:24


                                             〈 (테평성시도)中 일부 발췌 〉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각 폭이 113.6×49.1cm나 되는 8폭 병풍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가 있습니다. <태평성시도>라는 명칭의 이 그림은 각 폭의 장면이 연결되어 한 화면을 이루고 있는 성(城)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대형 병풍입니다. 수레와 인파가 가득하고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결혼식 풍경/ 장원급제자의 모습/ 귀부인의 행차/ 광통교 색주가/ 구리개 약국노인 등등  사람들은 행렬을 짓거나 무리를 이루어 장사를 하고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일을 하며 아이들이 춤추며 뛰어놀기도 합니다. 그림에는 이런 사람들이 무려 2,000여명 정도나 된다는 겁니다.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그 시대가 희망한 새로운 도시에 대한 바람과 태평성대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 사회가 지향하던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태평성시도>가 구현하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은, ‘정조대왕’께서 추진하였던 ‘화성(華城)’의 신도시 건설안과 얼개가 들어맞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화성 신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일치하기 보다는 상업을 위주로 한 생활경제 중심의 도시를 이루려는 이상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평성시도>의 화가는 조선후기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제기된 문제들과 직면하면서 상업화에 대한 절실함과 첨단문물에 대한 동경, 새로운 도시에 대한 갈망,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는 축제분위기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소망들에 관한 현실적 이상향을 화면 가득 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태평성시도>는 다양한 맥락의 장면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면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못한 관념적인 이상공간을 시각화하였다고 분석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편,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북송화가 ‘장택단(張擇端)’의 풍속화를 환상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2010년 가을 ‘상하이엑스포’에서 인기를 끌었던 중국관의 벽면을 온통 가득 채운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청명상하도〉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중국의 카이펑(開封) 운하 위로 교외 풍경이 나오면서 시가지가 펼쳐집니다. 각종 상품을 실은 수많은 배가 늘어선 성벽 아래로 장마당이 서 인파가 모여듭니다. 행상들이 분주히 오가는 속에서 왁자한 흥정이 벌어지고, 상인들은 시끌벅적한 호객 행위를 하며 상점 안으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술과 밥을 파는 음식점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식객이 찾아듭니다. 공정한 교역을 감독하는 관리들도 행차합니다. 사람들로 붐비고 활력이 넘치는 이 도시에 대한 그림은 12세기 초 북송 도시인 ‘변경(현 허난성 카이펑)’의 청명절 모습입니다. 이처럼 물산이 넘치는 번화한 도시는 태평성대라는 또 다른 이상향이기도 했으며, 본래 6m에 이르는 두루마리 그림이지만 원화의 700배로 확대 전시해 ‘상하이엑스포’의 성황을 기원했다는 것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중국회화사에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도시를 주제로 성행한 화제였으며 명·청대 강남 중심의 상업 발달을 보여주는 독립된 화제로 유행하였습니다. 북송 시기의 화가 ‘장택단’이 변경 시가지를 그려 관심을 모았다면, 명말의 화가들은 ‘쑤저우(蘇州)’의 번화한 풍경과 강남의 풍속을 묘사한 성시도(城市圖)를 보급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으로 갖가지 모본이 나왔으며, 조선과 일본에서도 태평성대한 도시 풍경을 그린 작품이 많이 탄생하였습니다. 조선에서는 <태평성시도>가 그려졌으며 일본에서는 교토의 풍경을 그린 〈낙중낙외도〉와 에도의 번화가를 묘사한 〈에도도〉 등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기록화의 성격으로 당대의 사회/ 경제사/ 복식사/ 향토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입니다.

 

일본의 〈낙중낙외도(洛中洛外図)〉는 ‘교토’의 중심가와 교외의 경관을 그린 풍속화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하여 ‘교토’가 재건된 ‘모모야마시대(16세기 후반 무렵)’부터 ‘에도시대’까지에 그려진 풍속도이며, 낙(洛)이란 ‘교토’의 별칭으로 중국의 ‘낙양’에 빗댄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당시 ‘교토’의 시가지는 우리의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뉘듯이 가미교(上京)와 시모교(下京)로 나뉘는데, 우측에는 시모교를 좌측에는 가미교를 중심으로 절/ 신사/ 산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축제와 행사를 한 화면에 묘사하였으며 화면 가득 교토의 명소나 궁궐과 같은 거대 건축물/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서민/ 무사/ 승려 등 다양한 계층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일본에는 국보 1점을 포함한 7점의 〈낙중낙외도〉가 있습니다.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는 작금의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평화로운 모습과 풍경을 담은 작품을 우리는 지금 남길 수 있을까요. 다산선생이 녹두장군께서 정조대왕이 고민했던 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가 말입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던 통치자의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말입니다. 더 나아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그토록 아름답게 번창한 모습을 보였던 한국 일본 중국은 21세기 지금 동아시아가 함께 더불어 발전하고저 노력하고 공생공존의 의지를 실현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일본은 못 다 이룬 자신들의 야욕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을 제물로 삼고저 극도로 대척적이고 중국은 일대일로 제국주의의 허황한 미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은 국운이 상승세인 지금이야말로 서둘러 내실을 다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방정책에 헛발질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고 있음입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박물관을 나와 돌아오는 차안에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태평성시도〉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