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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지 못한 편지

Led Zepplin 2020. 12. 13. 13:29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S!

코로나 바이러스/ 마스크와 함께 어처구니없는 한 해가 저물어 가네. 여학생의 시신이 강여울로 떠내려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2010년에 이창동 감독이 만든 윤정희 주연의 영화 〈시〉에 등장하는 이창동의 시 ‘아네스의 노래’일세.

 

영화 〈시〉는 시와 같은 영화라기보다는 소설같은 영화에 가깝지만,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렵다.”라는 대사는 어쩌면 삶이란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를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는지.

 

윤정희가 등장하고 ‘시’라는 단어가 영화에 채용됨으로 하여금 선입견으로 시적인 아름다움을 상상했던 관람객의 긍정적 이미지를 처음부터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 떠내려가는 여학생의 시신과 꽃말이 ‘고통(苦痛)’인 붉은 꽃의 등장으로 인한 나의 유추라네.

 

마스크와 함께 이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이창동의 영화 〈시〉가 떠올랐으며 노을이 지는 끝에 다가온 어둠과 차가운 저녁공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한 웅큼의 눈물같은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가 오버랩으로 생각났나 봐.

 

S!

어느 날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지. "인생(人生)이란 무엇입니까?" 그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사과나무숲으로 데리고 갔어요.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숲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며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만 골라오도록 했으며, 그 결과를 제자들에게 물었지만 제자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네.

 

소크라테스가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다시 한 번 더 고를 수 있는 기회(機會)를 달라고 하였으나,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 번의 선택에서 결정나는 것이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選擇)의 갈림길 앞에 마주 서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한번뿐.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책임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뿐이지. 또 한 해를 보내게 되니, 새삼 그 동안 내가 생각없이 스쳐 지나쳐 온 그 크고 달달했을 과일들이 떠올라 아쉬움이 많거든. 그러나 어쩌겠나. 그 것이 어리석은 나인 것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 사과를 차지하고 행복(幸福)해 할런지는 못내 자신이 없다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S!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나 경우’가 ‘기회’라고 적혀있거든. 우리가 놓친 그 기회들은 지금 어디쯤 누구의 품에 안겨 그 사람에게 행운과 즐거움을 주고 있을는지. 돌이켜보니, 세상을 떠돌며 살아온 지 어언 60년이 제법 지났네그려. 규각(圭角)이 없어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이에 따르는 관록도 없으며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탓으로 소위 만종록(萬鍾祿)도 없을 뿐 아니라 한 시절 재기(才氣)로 번뜩이던 눈빛도 떠돌이 배가본드의 장난스런 긍지와 치기(稚氣) 그 또한 모두 사라졌으니 만 가지 기회를 놓친 아쉬움만 나이만큼 가득 남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부분 모든 것이 돈이 만능키인 신산(辛酸)한 세상에서 돈을 위하여 새장속에서 노래를 불러야 함에도 새장을 박차고 뛰쳐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훗날의 어느 날 변방의 나무그늘아래 고요히 잠든다 하여도 나만이 간직한 그 나름의 이슬은 반짝이는 햇살아래 새로운 빛으로 거듭 날 것이라는 생각이야.

 

주체할 수 없는 허무와 현실로 부터의 탈출을 위한 우리 젊은 날의 무전여행도 겨울이었지. 몇 푼의 알량한 돈을 쥐고 떠난 우리들의 그 겨울은 무척 추었다네. 그래도 우린 그 겨울을 우리들의 온기만으로 눈 내린 산야를 웃음으로 떠돌았던 거지. 기차표 없이 몰래 탄 죄로 붙잡혀 역의 사무실에서 역무원에게 단체기합도 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이로구만.

 

다시 지나간 한 해의 그 여로를 생각하면, 요즘의 하루는 무척이나 짧으며 옷깃으로 스미는 차가운 바람으로 더욱 허전하고 외로워 떠나는 한 해가 유난히 신산스럽네. 조석으로는 날이 제법 차갑군. 항상 죄송한 마음뿐인 어머니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고, 연말이니 술 조심하시며 새로운 해에는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게.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