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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늦으리

Led Zepplin 2021. 4. 26. 00:57

  맑게 고운 소복으로 청초하던 목련꽃은 벌써 떨어졌으며 벚꽃도 이제는 지고 말았다. 며칠 비가 내리고 미세먼지가 지나가고 어제는 바람도 없이 날씨가 좋았다. 전형적인 봄날인 거다. 며칠 트래킹으로 무겁게 걷기만 하였는지라, 경쾌하게 내달리고픈 드라이빙의 욕구를 해소하며 바닷바람을 가슴 가득 폐부에 드링킹할 요량으로 새만금 방파제를 내달려 내변산 국립공원월명암을 목적지로 집을 나섰다. 모처럼의 산행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고통이기보다는 즐거운 힘겨움이 되었다.

 

이른 봄 바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반짝이는 연두로 살랑거리는 잎사귀들은 청량하면서도 신비롭다. 월명암에서 동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내변산 산악의 웅혼하고 때 묻지 않은 귀한 자태는, ‘대한민국의 국립공원으로서 부족함이 없었으며 미국 서부 애리조나주의 세도나 국립공원이 부럽지 않을 지경이다. 월명암의 애견 삽살이들과 잠시 눈을 맞추며 쓰다듬어 주고 법당을 들러 참배를 마치고 경내를 둘러본 후 하산하여 귀가하였다.

 

서해의 김제부안에 위치한 내변산외변산을 합하여 칭하는 변산(邊山)’은 살며시 서해로 솟아난 반도형 지세이며, 조선 시대에 민간에게 유포되었던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서 말하는 전쟁을 피하여 숨어 살기 좋은 자리라는 십승지(十勝地)’ 그 중 한 곳이다. 그럴 만큼 길과 산세가 험하여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은 사통팔달로 도로 상태가 좋아졌으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전라도에는 호남 5대 명산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 바 '지리산(智異山)' '내장산(內藏山)' '변산(邊山)' '천관산(天冠山)' '월출산(月出山)'이니 가히 '변산(邊山)'의 위상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음이다. ‘변산월명암남여치(藍與峙)’에서부터 올라가는 길이 지름길로써, ‘남여치남여라 함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들의 탈 것인 의자같이 생긴 것으로 지붕이 없는 가마를 말함이다. 조선 말기 이완용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적에 이 고개에서 쌍선봉의 낙조를 보러 올라갔다고 해서 붙여진 고개 이름이라는 거다.

 

월명암은 스님이 아닌 재가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지었다는데, '부설(浮雪)'은 이름(법명)이고 거사(居士)라 함은 스님이 아닌 남자 불교 신자를 지칭한다. 신라 '선덕여왕'때 경주에서 태어난 부설은 스님으로 불국사에서 도() 닦는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도반(함께 도 닦는 사람)'능가산(楞伽山/ 현재의 변산’)‘에서 수행을 하였다. ’부설께서 지금 월명암의 자리에 도반들과 함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공부를 하던 중, 셋이 함께 오대산의 상원사로 향하던 때에 김제의 어느 집에서 잠시 비를 피해 쉴 수 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그때, 그 집에는 '묘화(妙花)'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이 부설을 사모하여 혼인코저 간청하였으나 스님의 신분이라 거절하니 묘화가 자살을 시도하여 결국 스님의 신분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던 거다. 그러나, ’부설은 본의 아니게 법명 뒤에 '거사(居士)'를 붙이고 혼인을 한 뒤에도 도 닦는데 게을리하지 않아 인도의 '유마(維摩)거사' 중국의 '()거사'와 함께 세계 3대 거사(居士)로 추앙받게 되었던 거다.

 

부설(浮雪)거사열반송은 아래와 같다.

 

目無所見無分別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으며)

耳廳無聲絶是非 (듣는 바가 없으니 시비가 일지 않는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 시비 모두 내려놓고)

但看心佛自歸依 (내 마음은 부처님께 귀의할 뿐.)

 

삶의 한 시절 작정한 바에서 문득 방향을 달리하였으나, 도를 향한 일편단심을 잃지 않았고 때를 미루지 않았으며 초지일관으로 대도를 이룬 선사의 열반송이 내용은 평이하지만 그 뜻은 심오하다.

 

생각해 보면, ’은파호수에 흐드러지게 피는 찬란한 벚꽃의 꽃비는 그 며칠 아니면 또 지루한 한 해를 버텨야만 즐길 수 있으며 남쪽 바다의 자연산 봄도다리도 봄 한 철 그 타이밍이 아니면 먹을 수 없듯이 만사에는 모두 때가 있음이다.

갯가 어시장에 흔하게 널부러져 있는 주꾸미는 초봄 그 짧은 한 철 그때를 놓치면 태국산으로 우리 주꾸미의 싱그러운 감칠맛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는 없는 일이며, 고등학생 시절 그 잘난 자존심으로 떠나보낸 그녀도 돌이켜보면 모두 다 그립기만 할 따름이다.

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러하거늘 나이 들었거나 젊었거나 청춘(靑春)이여 오늘을 즐기고 오늘 결단하자. 오직, 내일이면 늦으리. 때는 늦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