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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노래

Led Zepplin 2021. 5. 15. 11:37

 

  낙타는 4500 만 년 전 ‘북아메리카’에서만 존재했다. 당시, ‘북아메리카’의 대초원은 기름진 초원과 풍성한 먹이사슬로 모든 동식물의 낙원이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기름진 초원과 풍부한 먹이조차도 쫒고 쫒기며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경쟁에서 밀리면 그대로 죽음일 뿐인 거다.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180만년전의 빙하기를 맞이하여 보다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대이동을 하였으며, 낙타는 ‘아프리카’ 그것도 웬만한 동물들은 생각하기도 싫은 사막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수천만 년 동안 살아온 초원을 뒤로 하고 선택한 ‘아프리카’ 그 머나먼 신대륙은 타는듯한 무더위와 강추위가 무한 반복되는 기회의 땅이 아닌 죽음의 땅이며 이제 더는 먹힐 염려가 없지만 먹을 것도 그 외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 땅으로 이름하여 사막. 모든 것을 태울 듯한 땡볕에서 태양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된 자세가 당장은 뜨겁지만, 몸이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다는 어처구니없는 막다른 깨달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슬퍼하지 않는다. 낙타는 함부로 소리를 내지 않으며 울지도 않으며 웃지도 않으며 그냥 뚜벅뚜벅 걸을 뿐이다. 눈앞에 오아시스가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낙타는 열광하지 않으며, 물이 있으면 마시고 오아시스가 안 보인다고 초조해하지도 않으며 뛰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주어진 숙명처럼 뚜벅뚜벅 걸어가는 거다.

 

‘사막의 배’라고 지칭하는 낙타는 동물의 뼈이건 씨앗이건 가시덤불이건 신문지/ 마른 나무조차도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도록 변화된 식성과 가시를 뜯어 먹어도 멀쩡한 고무같이 질긴 입과 소화기관. 41°C까지는 땀도 흘리지 않으며 오줌조차도 농축해서 누고 하루 200L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걸어 다니는 물탱크. 열 손실을 막기 위하여 여분의 지방이라도 생기면 등의 혹에 저장하며 살아낸다. 아무리 갈증이 심할지라도 오아시스가 더러는 눈앞에 나타나도 함부로 달리지 않으며, 쓸데없이 헐떡거리지도 않는다. 원래부터 달리기 능력이 뛰어남으로 하여 달릴 수도 있지만, 결코 낙타는 달리지 않는다.

 

그렇다. 낙타는 울지 않아도 그 눈은 항상 젖어있다. 울지 않는다고 하여 슬픔조차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낙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아름답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남모를 슬픔이 있어서 낙타의 눈은 더욱 아름답다. 낙타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머나먼 사막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 얼마나 스스로 용기를 북돋았으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었을까. 또 그 머나먼 길을 뚜벅뚜벅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아름다운 꽃과 열매 만발한 곳에서 생생한 기쁨 인화하며 살아가지 않은 채 뜨거운 태양과 바람과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낙타는 다만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아간다.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신경림/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