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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펀 러닝

Led Zepplin 2021. 10. 2. 03:22

  오후 다섯 시 무렵 벌건 대낮이 한풀 죽어 아직은 서늘함이 깃들기 전, ‘이모집에는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오랜 안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순철이가 합성수지로 만든 지 벌써 삼십 년은 됐을 법한 오래되어 기름이 잘잘 흐르는 늙은 발을 들치고 들어서며 타박을 늘어놓는군요. “아니, 꼭 자기 집 앞이라고 혀서 자기 차만 대라는 법이 있는 거냐고. 지나가던 사람도 댈 수 있는 거고.. 누구든 간에 빈자리가 있어서 댈만 하면 댈 수도 있는 거 아녀? 촌놈들이 더 하다니께...”

30여 분 전에 먼저 와서 이미 이슬이 한 병을 까서 털어 넣고 있던 나와 광수가 반가움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여. 요 옆집 슈퍼 그 슈퍼 쥔 놈이 차 댔다고 뭐라 허지? ~, 그 놈 참 진상이라니께. 나도 저번에 거따 대떠니 그 인간이 뭐라 허더라고... 씨벌, 2년 선배면 사실은 우덜이랑 거서 거여. 도시에서 만났으면 맘먹을 나인데도 여가 지방이라 어쩌겄냐 우덜이 참아야지. 그건 글코, 어서 앉아 한 잔 혀라.” “너는 마, 엉아가 왔으면 냉큼 그 자리를 비켜야지 거긴 항시 내 자리 아녀?” “씨불놈, 지랄허네. 아나.. 언능 앉기나 혀.” 광수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엉거주춤 앉은 자리를 내주자 순철은 특유의 쩍벌 자세로 자리에 앉으며 허리를 고추세우면서 ~, 한 잔 따라바라.”

그 때, 또 한 명의 술꾼 만석이가 들어선다. “일찍들 왔네. 덕구 아직 안왔냐?” “오자마자 덕구는 왜 찾는 거여?” 순철이가 만석에게 묻자, “~, 거시기.. 덕구네 배가 오늘 우리 배 옆을 지나는데.. 엔진 소리가 쪼매 거시기 허더라구...” “거시기 뭐.. 거시기는 마 귀신도 몰라.” “곧 오겄지. 만석아, 일단 한 잔 혀라.”하며 광수가 잔을 권합니다. 시비인지 농인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왁자거리는 사이에 소주병은 이미 여섯 병이 늘어서 있으며, 늦여름 초가을 저녁의 서늘함이 내항 앞 구시가지 거리의 두 평 주막집에 슬며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내 이름은 김성국입니다. 십 대 무렵부터 친구로 지내며 나이 들어 온 우리는, 퇴근하면 내항 부두 앞 이모집에서 술잔을 나누며 취해야만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이지만, 저는 젊었을 때부터 힘든 일을 많이 했습니다. 우덜이 젊을 때는 해외에 나가서 달러를 벌어오는 것이 애국이고 자수성가의 지름길이었죠.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십 대 국가에 든 것도 그 시절에 산업일꾼으로 죽어라 일하고 돈 벌었던 우덜의 공도 컸다고 봅니다. 뼈 빠지게 일하느라 육체가 고단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소주와 막걸리를 섞어 자주 마셨습니다.

젊었을 때 허리를 다쳤으며 술을 많이 마시고 막 살다 보니 나이가 들어 혈압도 높아 이렇게 저렇게 건강이 안좋습니다. 요즘은 몸도 안좋은데 아무리 일을 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으니, 일하다가도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자주 화를 낸다고 합니다.

 

여태껏 자식들과 아내만 바라보며 죽어라 살아왔는데, 살아남기 위하여 애를 쓰다 보니 거칠게 살아왔거늘.. 다 큰 우리 애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고 하나 있는 딸년은 지에미 말을 들어보면 엄마처럼 살기 싫어서 시집 안간다.”고 한답니다. 아들도 나럴 무서워하며 베랑 안좋아합니다. 헐 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다 내 팔자이겠지요. 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가족들의 이런 상황에 괜시리 서운하기도 합니다. 낼 모레가 칠십인데, 가족이라고 해바야 따신 맛이 없고 젊어서부터 마신 술만이 오직 취미이며 퇴근하여 만나는 오랜 친구이자 웬수인 그 인간들이 오로지 나의 벗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에게도 한 가지 낙은 따로 있습니다. 우덜이 젊었을 때는, 고고 춤이 유행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자취 집으로 가는데, 친구놈들과 어울려 술이 땡기는 날(땡기지 않았던 날은 별로 없었지만)은 밥보다는 김치 쪼가리 보시기를 앞에 놓고 소주나 막걸리 서너 잔을 돌려 마시고 나서 야전(포터블 야외용 전축)’을 틀어놓고 신나게 흔들어 대는 거였습니다.

당시 우리에게 빠지지 않는 필수품이 야전이었는데, 시골에서는 제법 큰 농사를 지었던 우리 고향에 방학때 가서 엄니에게 아버지 몰래 거짓말로 사고쳐서 돈이 필요하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고 비싼 돈으로 구입한 우덜 최고의 꿈이었던 야전을 샀던 겁니다. 물론, 중고죠. 당시 비행장 미군부대에 다니던 광수 아버지가 부대에서 빼 내온 미제 중고란 말입니다.

 

흔히 '야전'이라고 줄여 불렀던 '야외전축', 우리들의 시대 1970년대는, 이 야전에 '빽판'이라 불렀던 음반을 걸어놓고 미국에서 유행한다던 고고춤을 추는 것이 멋이자 흥이었던 겁니다.

우리들은 흥이 나면 밤늦게까지 흔들어대는 날도 있었는데, 더러는 당시 담이 낮은 이웃에게 시끄럽다고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킥킥거리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따라부르며 흔들어 댈 때는 스트레스가 풀어지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코로나가 대유행인 요즘에는 노래방을 가기에도 망설여지며 특히 늘 함께 어울리는 녀석들도 손자 손녀에게 옮길까 무섭다며 노래방 가기를 꺼려합니다.

자식들이 모두 미국으로 떠난 광수는 노래방에 가기를 꺼려하는 놈들에게 쫌보라며 거들먹거리지만 광수도 제 자식들이 우리나라에 놀러 온다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어찌 되었던간에 군대에 가서 휴식 시간에도 원양 상선을 타던 그 시절에도 필리핀에서 저 멀리 사모아에서도 나의 고고춤 솜씨로 날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몸은 예전처럼 말을 안듣고 힘들다고는 해도, 한 잔 술에 그 노래에 춤만 있다면 젊음이 회생한 듯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들의 최고의 음악은 키펀 러닝이었던 거였죠. ? 아니, 그 유명한 키펀 러닝을 모른다구요? 그 왜 있쟈나요~. 그거 왜 뭐시냐.. 거시기.. ‘딜라일라구린구린 구래스 홈을 부른 영국의 유명한 카수 톰 존스말여유.. 몰러유? 그 카수.. 최고의 히트쏭 키펀~ 키펀~ 키펀 러닝!’.. 알쥬?

우덜의 70년대 그 시절, 3공화국이 성장의 기치로 내세웠던 중단없는 전진과는 곡목의 의미가 일치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는 소문이 자자했거든요. 그래서 더욱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났던 화도 가라앉고 흥이 저절로 납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죽을똥 살똥 일하문서 돈 벌어 집으로 부쳤던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더욱 신이 나서 더 흔들어 대며 겁나게 돌아뿝니다. 키펀 키펀 키펀 러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