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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간이역에서

친구여, 눈이 오시는 날은 배낭을 챙겨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문득 떠나자. 더러는 바람이 불고 첫눈이 진눈깨비로 바뀌어도 좋겠다. 그리고, 이름 없는 어느 간이역(簡易驛)에 내려 눈발을 헤치고 산골 마을을 찾아가 보자.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보다는 그 단풍이 모두 져버린 초겨울이 나는 더 좋다. 늦은 가을 초겨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망실(亡失)의 우수(憂愁)가 나는 더 좋다. 망실의 우수가 수놓인 산하(山河)를 목적지 없이 천천히 떠돌다 만나는 저녁 석양노을이 좋으며 산허리를 굽이돌아 만나게 되는 산골마을의 시골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도 좋다. 그런 풍경을 만나면, 문득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리도 못내 자태 고운..

카테고리 없음 2021.12.26

다시 한 해를 보내며

바닷가 떠내려 온 난파선 하나 아스라한 그리움마저 잃어버리고 그 난파선에 갇힌 늙은 낙타 날개 부러진 갈매기마냥 파닥거리다 목 놓아 울다 부딪는 파도에 그 설움도 모두 보내고 속 텅 빈 소라껍데기 목 쉰 바람 소리만 애절하다 마침내 도착했던 머나 먼 바다 고래를 잡을 것만 같아 고래가 왈칵 반겨줄 것만 같았던 난파선 된 무모한 도전의 파편 조각들 다시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저녁 퍼붓는 굵은 눈발 속으로 부러진 추억 속 상처 도져오니 깨진 거울 속 멍들고 타버린 붉은 얼굴 지금 이 시간처럼 수백 번의 자정이 지나가고 이제 달랑 십여 차례의 자정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그렇고 그랬던 한해는 이렇게 다시 저물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사연으로 가득한 장편소설처럼 한장 한장 시간의..

카테고리 없음 2021.12.19

네가 왕이 될 상이냐

나는 젊어서부터 영화광인지라, 있는 건 시간뿐 백수인 요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빠져 지낸다. 재작년이던가, 넷플릭스에서만 개봉한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그 후임 교황인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를 다룬 《두 교황》과 내가 무쟈게 좋아하는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 그리고 금세기 최고의 연기파인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아이리시맨》을 볼 요량으로 ‘넷플릭스’에 가입하여 두 영화를 아주 맛깔나게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둘러보아도 보고픈 영화가 별로 없는 2류영화 일색이며 일도 바빴는지라 회원탈퇴를 하였는데 근래에 세계 최고의 화질이라며 유럽에서까지 호평인 고가의 와이드 대형 TV를 구입하여 이미 보았던 영화와 미드까지도 다시 보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과연, 요즘 4K의..

카테고리 없음 2021.10.11

키펀 러닝

오후 다섯 시 무렵 벌건 대낮이 한풀 죽어 아직은 서늘함이 깃들기 전, ‘이모집’에는 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오랜 안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순철이가 합성수지로 만든 지 벌써 삼십 년은 됐을 법한 오래되어 기름이 잘잘 흐르는 늙은 발을 들치고 들어서며 타박을 늘어놓는군요. “아니, 꼭 자기 집 앞이라고 혀서 자기 차만 대라는 법이 있는 거냐고. 지나가던 사람도 댈 수 있는 거고.. 누구든 간에 빈자리가 있어서 댈만 하면 댈 수도 있는 거 아녀? 촌놈들이 더 하다니께...” 30여 분 전에 먼저 와서 이미 이슬이 한 병을 까서 털어 넣고 있던 나와 광수가 반가움에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여. 요 옆집 슈퍼 그 슈퍼 쥔 놈이 차 댔다고 뭐라 허지? 하~, 그 놈 참 진상이라니께..

카테고리 없음 2021.10.02

일상의 주문 하나, 쫌쫌따리

그 시대에 통용되는 언어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기성세대인 우리와 달리 MZ세대 그들의 신조어를 들어보면 그들이 어떤 가치관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난해하기만 하다. 사투리인지 외계어인지 알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의 주역 이른바 MZ세대 그들의 신조어 몇 개를 우선 나열해 보자. ‘뷰세권’이란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을 말하며, ‘병세권’은 병원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 그리고 ‘몰세권’은 대형 쇼핑몰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을 뜻한다는 거다. ‘별세권’은 스타벅스가 인근에 있는 곳이며, ‘주세권’ 퇴근 후 술 한잔하기 좋은 곳이고 ‘초품아’는 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란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이해가 간다. '갑통알'이란 단어의 뜻은, ..

카테고리 없음 202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