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지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어둠이 차분하게 내려앉으며 간간이 바람소리와 함께 후드득 거리며 내리던 비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로 거친 바람과 함께 폭우로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세차게 창을 두드렸다. 한 밤 열두시를 넘긴 지금 장마 비는, 더러는 속삭이는 비단결 스치는 소리처럼 때로는 유리창을 열고 지난 시절에 당신이 함부로 내던진 거친 추억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지듯이 세차게 내리치고 있다. 그렇게 추궁하는 빗발 속으로 초대하지 않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이 저벅거리며 찾아든다. 지난 시절, 중학 2학년의 나이에 아버지의 주검으로 문득 만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머뭇거리며 구하기도 전에 연속적으로 이어진 진학과 학업/ 사회의 진출과 적응/ 해외로 떠도는 자에게 주어진 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