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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五臺山)에서 길을 묻다

Led Zepplin 2008. 10. 21. 18:00

 

 길은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었는가...

먼 길을 떠나며, 나그네는 다시 길을 묻는다...

 

일요일 06 : 30

진부터미널에서 오대산의 월정사(月精寺)행 시내버스는 출발하였다.

낡은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리며 그러나 쏜살같이 내달렸다.

어젯밤 객지(客地)에서 마신 술이 다시 오르는 기분이다.

일요일 새벽인지라 신작로에 오가는 차는 없었지만, 사고가 난다면 대형사고임은 당연하므로 버스기사와 나는 전생의 인연처럼 함께 죽을 것이다.

오대산을 오르는 먼 길은 그처럼 거칠게 시작되었다.

버스는 월정사 주차장 마당에 토하듯이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인연(緣)을 찾아 또 다시 미친듯이 달려 내려갔다.

용인의 송담대학 버스가 덩그러니 혼자 주차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뿐, 아직 신새벽인지라 인적은 드물었다.

신라의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월정사는 절 뒤쪽의 동대산 만월대( 滿臺)에서 떠오르는 달빛이 밝고 청명하다하여 월정사라 명칭하게 되었다 한다.

절의 입구와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잘 다져진 흙길가에는 수령 400~500년의 전나무가 길을 호위하듯이 길게 도열하여 늠름한 위용을 뽐내지 않고 보여주며,

언듯언듯 뒤로 보여지는 계곡사이로 아름다운 홍단풍이 지나가는 길손의 눈길이 부끄러운 듯 전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08 : 35

상원사 입구에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오르막을 오르자, 자갈길가에는 작은 토종 다람쥐들이 수 없이 들락거리며 길손의 가쁜 숨길이 힘들지 않도록 즐겁게 하여 준다.

강원도 평창군의 월정사에서 출발하여 홍천군 내면의 명개삼거리까지 이어지며 오대산을 횡단하는 이 비포장도로는,

특별히 기약했던 바도 아니지만 우연스럽게 단풍철 무렵마다 월정사쪽에서 넘어가던지 명개리 편에서 넘어오던지 연례행사처럼 차량을 이용하여 넘나들면서

언젠가 걸어서 한 번은 넘어 보려던 나의 막연한 계획은 역시 또 특별한 계획없이 이렇게 어느날 문득 배낭을 매고 길을 떠나게 되었던 거다.

상원사에서 오대산의 고갯마루까지 오르는 자갈길은 고통스러웠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커브길은 삶이 언제나 그렇듯, 

지금 만난 커브길만 지나면 마루에 오르기를 나그네는 고대하지만 오르막길은 다시 또 하나의 커브길을 만나게 할 뿐이다.

마침내 고갯마루 정상...

깊은 산 특유의 차가운 일기임에도 비오듯 흐른 땀을 닦으며 오이 하나를 물어뜯듯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세상에 와서 오이가 이렇게 맛있는 야채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등산시에 항상 먹던 그저 갈증을 가셔주는 고마운 오이가 오늘은 생경스럽게 맛있다.

새벽에 사온 김밥 한 줄을 마져 먹고 가볍게 비스킷 몇 개를 먹었지만 그 흔한 비스킷마져도 오늘은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 있다.

시장기와 극심한 갈증과 청명한 공기가 선사한 기쁨일 터...

 

지금부터 홍천군 내면쪽의 오대산 입구 관리사무소까지 더러는 자갈길이지만 그래도 길은 내리막이다.

길손은 산과 계곡에게 길을 물으며 단풍숲을 도반()으로 묵묵히 걸을 뿐이다.

 

 

 

 

 

 

 

 

 

 

 

 

 

 

 

 

 

 

 

  

14 : 30분경

오랜 길을 구비구비 돌아서 드디어 오대산 반대편 내면의 관리사무소에 도착하였다.

관리사무소앞에 묶여있는 황구 한 마리가 "그래, 길은 찾았나?"하는 표정으로 고단한 길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이 길은 여기서 끝났지만 새로운 길은 다시 시작된다, 인생(人生)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