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감동의 명작 다큐멘터리는,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사'의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늙고 병든 소 한 마리가 있습니다.
소의 수명은 평균 15년 그러나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 소는 최노인의 최선의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입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하게라도 소의 '워낭(소나 말의 목에 매어 단 방울) 소리'만은 귀신같이 알아 들으며...
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서라면 매일 산과 들로 나섭니다.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도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습니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 그 둘은 삶의 마지막 석양을 안타깝도록 직전에 두고 함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충격같은 선고를 듣습니다.
오로지 소를 이용해 농사짓는 천연기념물 같은 팔순의 농부 최원균 할아버지.
기계를 쓰면 더 많이 수확하고 편한 것을 알지만, 매일 묵묵히 소에게 리어카를 매달아 타고 논으로 밭으로 나갑니다.
10년을 같이 살 줄 알았던 소와 30년을 함께 산 것도 기적이란 걸 알지만, 소가 그를 떠난다는 걸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진: 스튜디오 느림보)
삶이 힘겨운 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약한 노인은 봉화읍내의 병원엘 자주 다녀야 합니다.
"어르신, 이제 그만 일을 쉬셔야지 더 일을 하시면 큰일 납니다"하는 의사의 충언에도 노인은 늘 하던대로 일을 나갑니다.
소 또한 묵묵히 노인이 가자는대로 충직스럽게 데려다 줍니다.
논이면 논이고 밭이면 밭이고 병원이면 병원, 사진관이면 사진관...
주인과 함께라면 차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다만, 차의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어느 장날 술 마시고 소 뒤에 매달린 리어카에서 잠이 들었어도 읍내에서 산골마을의 집까지 저혼자 알아서 주인을 모시고 온 소...
(사진: 스튜디오 느림보)
사람은 자기가 아끼는 동물에게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주인에게 자기의 전부를 바칩니다.
노동으로 함께 늙어간 소는, 소가 최노인이자 최노인이 바로 우리 자식들의 소입니다.
노인은 소가 탈날까 두려워 날마다 꼴을 베어 소에게 먹이고 한겨울에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쇠죽을 정성으로 직접 끓여 소에게 먹입니다.
당연히 농사에도 농약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행여 밭이나 논에 함께 다니는 소가 농약을 친 풀을 먹을까 우려한 때문이죠.
이처럼 소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 하는 것은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런지요.
농사를 지어도 좋은 것은 자식들에게 미리미리 챙겨 보내고 두 노인은 그 나머지 찌시래기로 삶을 영위합니다.
(사진: 스튜디오 느림보)
최노인은 어린 나이에 침을 잘못 맞아 한 쪽 다리를 제대로 못쓰시는 장애가 있습니다.
소 없이는 논이건 밭이건 거동이 불가능하죠.
노인이 중년에 만나 함께 동거해온 이 소는 노인과 함께 최후의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짐을 싣고 언덕을 걸어 오르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의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전통 농법으로 농사에 힘겨워하는 화면속의 노인도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수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더니...
소는 제 몸도 가누기 힘든 몸으로 그 겨울에 땔 엄청나게 많은 나무까지도 다 해 놓고 마침내 노동으로 평생을 보낸 한많은 생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영화 '워낭소리'는 육체적 노동을 통하여 전통적 농법 그리고 전래되어온 '일소(일하는 소)' 기르기로 평생을 사신 우리 아버지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시(獻詩)입니다.
4년여간 촬영해온 영화는 순수하고 따스한 수채화 같은 장면과 주인공들 실제의 모습으로 감동을 잔잔하게 안겨 줘 영화가 끝나도 일어나기 어렵게 합니다.
빼놓을 수 없는, 눈물도 나고 빼꼽도 빠지게 하는 주인공이 한 명 더 있습니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영감님을 헐띁고 소를 미워하는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
논에 모내기를 하면서도 힘들다고 왜 우리는 남들 다하는 기계로 농사를 안짓느냐고 영감님에게 지청구를 합니다.
늘 하시는 말씀이 "저 놈의 소가 어서 죽어야 내 팔자가 펴고 고생이 끝날낀데..."
"18살에 80리를 가마타고 시집와서 영감을 저렁거럴 얻어 가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
늘 리어카에 매달고 다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고장나자 "영감도 고물, 소도 고물, 라디오도 고물"이라며 킥킥 거리시고...
영화를 들었다 놨다 하는 할매가 있어서 영화는 끝까지 긴장감을 이어 갑니다.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타리 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적 영화제 '선댄스영화제'에 한국 최초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 초대.
감독 이충렬은, "워낭소리는 우리들 기억속에 화석처럼 잠들어 있는 유년의 고향과 아버지와 소를 되살리는 주술과도 같다. 삶의 내리막길에서 빚어낸 어쩌면 이 시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소와 아버지의 아름다운 교감과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고단한 노동으로 평생을 보낸 우리의 아버지와 인간에게 전부를 바친 소에게 이 부족한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