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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풍경(風景)

Led Zepplin 2009. 11. 9. 22:38

 

 

"알았습니다. 오전중 납품에 문제없도록 미리미리 준비해 주십시요."

"아니, 한 벌만 좀 작은 걸루 M 말고 S 없냐구요?"

"사장님은 내일 제주도에 세미나가 있어서 일찍 나가셨습니다. 네, 연락이 오면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방의 도어를 잠구고 통화 소리가 있는 직원들 사무실의 통로를 지나며 내가 손을 흔들자, 그들은 내 왼쪽 어깨에 대고 소리쳤다.

"수고하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요."

 

바람이 차가웠다.

정시보단 조금 늦게 회사를 나섰을 뿐인데, 이미 밖은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몇 걸음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에 실내에서는 느끼지 못한 잊었던 아픔이 불현듯 가슴을 훓어내렸다...

차에 올라 시동을 켜자 놈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잠시, 녀석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그 원인모를 외로운 순간들...

차내는 서늘했고.. 밖에는 낙엽이 바람에 휘날렸다.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지만, 텅 빈 오피스텔로 들어가긴 조금 싫었다.

"제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작년에는 제가 술을 좀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나, 약 복용을 마치는 한달간은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아셨죠?"

지난 달에 했던 담당 닥터의 말이 생각났다.

위에 상처가 좀 있기로 술을 아예 마시지말라고 하다니... 무정한 인간같으니라구...

 

어딘가로 가고는 싶었는데, 내 차는 우물쭈물 달려가더니 그냥 오피스텔 주차장에 우두커니 정차하고 말았다.

차창밖으로 차들이 생각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직장인인 듯한 여자 몇몇이 옹송거린 채 동동거리며 차곁을 스쳐 지나갔다.

때때로 낙엽 몇 장들이 휘리리 날려 떠다녔다.

 

마른 잎들이 매달린 나무가지 사이에 걸린 달이 창백하게 떨고 있었다.

그 달빛과 나뭇가지 사이의 어둠속으로 새 한 마리가 높은 소리로 울면서 멀리 날아갔다.

갑자기 나는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파도소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던 바닷가의 그 민박집이 생각났다.

그 허름한 민박집에서 당신의 몸을 생각하는 일은 아주 참담했다.

당신의 그 화창하도록 경쾌한 웃음은 더욱 슬펐다.

한 때는 당신의 몸 속에서 만경강에 몰려 들어오던 들물을 떠올리기도 했으며...

비온 뒤 산하에 걸려있던 안개가 흐르고 달빛속에 끼륵거리며 기러기가 지나고 청명한 신새벽 숲속에서 맡았던 그 향기로운 솔내음...

갈대밭의 눈부신 흐느낌과 그 금강하구둑에 까맣게 내려앉으며 명멸하며 번득이던 수많은 비늘의 새떼 그리고 새떼들... 

 

오늘 달빛이 이처럼 고운 밤.

부는 바람에도 아픔을 참고, 제가 누군가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나를 기억해 주시겠나요.

언젠가의 저녁처럼 바람이 불던 그 바닷가 방파제, 멀리서 명멸하던 불빛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웠던 그 바닷가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고운 밤 보내시옵소서.

당신의 평온하고 달콤한 꿈을 위하여 당신 곁에 은은하고 따스한 촛불 하나 두 손 받쳐 밝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