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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의 아쉬움

Led Zepplin 2010. 7. 16. 20:22

 

 

  스릴러(Thriller)와 미스터리(Mystery)의 차이는 무엇일까?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하기는 사실 어렵다.

잔잔한 스릴러를 좋아하는 나도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차이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을 못 보았기 때문이다.

 

본 콜렉터(The Bone Collector/1999)를 쓴 스릴러계의 거장인 제프리 디버(Jeffery Deaver)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A suspense/ thriller novel asks the question, ‘What's going to happen?’ A traditional mystery novel asks, ‘What happened?’ In other words, the mystery is a puzzle that the hero (and reader) seek to unravel. A thriller is a carnival ride with the hero (and reader) in the front car.”

"미스터리가 던지는 질문...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스릴러가 던지는 질문...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미스터리는 독자들에게 퍼즐을 던져준다.

스릴러는 독자들을 롤러코스터의 맨 앞차에 태운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마을에 도착하며 시작하는 원작 만화와 다르게...

영화는 ‘삼덕 기도원’이라는 배경 그리고 젊은 천용덕(정재영 분)의 형사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영화 <이끼>는 원작을 따르지만 중반부분 부터는 원작과는 다른 길을 간다.

위트와 유머가 추가되고 스토리도 천용덕 이장과 류해국 두 사람의 대결구도 못지않게 ‘영지’라 불리는 여자의 비중도 중요하다.

원작과 영화의 다른 흐름을 비교하다 혼란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작과의 비교보다 작품의 초반부터 전개되는 상황에 집중하며 결말을 예측하는 것이 좋다. 많은 부분을 원작과 맞추기도 했지만...

영화의 결말을 위해 추가하고 다르게 해석한 부분도 많다.

 

주인공인 젊은 사내 류해국(박해일 분)은 깐깐하고 의심이 많다.

그는 검사를 지방인 어촌으로 쫒아나게 만든 집념의 남자이다.

사사로운 개인의 시비가 커다란 사건으로 변질되어 가정과 직장을 잃으면서도 끝장을 본 남자라는 설명이 부족하여...

아버지의 사인을 의심하며 끝까지 집착하는 영화의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는 부실하다.

중요하지만 표현이 까다로운 캐릭터 이장 천용덕을 연기하는 정재영은 힘든 변신을 통하여 새로운 이장의 느낌을 적나나하게 연기했다.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의 성격이 더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머리에 만화처럼 강렬한 눈빛으로 마을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잃지 않고 있다.

 

만화 “이끼”가 그리는 세계관은 대단히 크며 미쟝센 역시도 강렬하다.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개성 있어서 생동감이 넘친다.

이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점 때문에 영화 “이끼”가 보고 싶어지는 거다.

만화의 무거운 분위기를 영화에서 재치 있게 유머로 다듬어 낸 공신 주요 인물이 유해진이다.

원작보다 뛰어난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으니 기대해도 좋다.

주 조연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뛰어난 연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다.

드라마에서 얼굴만을 팔던 유준상(박민욱 검사 분)마져도 밥값을 했으니 말이다.

‘유일한 여자’인 영지라는 여자를 만화와 다르게 장치하면서 최종결말을 반전으로 뒤집었다.

그녀만의 외로운 투쟁을 설정하여 원작에서 영지(유선 분)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했던 면을 해소하여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 산골마을은 좀 더 음산해야 하고 이장은 더 추잡하고 사악했어야만...

 

강우석은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아깝게 낭비했다.

영화가 구원과 신앙 그리고 인간의 죄와 악마성을 다루므로...

구라를 치기에는 제법 멋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배경이 산골과 어촌임에도...

드라마보다도 못하게 그럴싸한 풍경이나 아름다운 전원의 장면 한 컷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여 참으로 아쉬움이 크다.

더구나, 진실을 향하여 진행되어 가는 과정의 재미를 잔잔하게 가슴에 부어줘야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인데 영화는 지루하고 뻔~ 하다.

만화에서 제법 인상적이었던 인물들도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어정쩡해 보인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영화가 속된 말로 ‘잔잔한 재미’가 없다는 거다.

이건 영화가 그 긴 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서 그런 거다.

앞에 뭔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인다면 그 게 뭔 재미가 있겠나...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면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출발함이 마땅하거늘...

돈이 될만한 원작을 모범답안으로 설정하고 적당히 빼고 더하였는데...

주제가 버거운데다가 말 못하는 사람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이야기는 늘어졌고...

스릴러의 특징은 ‘긴장’인데.. ‘이끼’는 긴장이 절대부족이다.

관객들은 주인공이 코너에 몰리거나 쫒길수록 더욱 더 손에 땀을 쥐게 되고 안타까워지며 목이 타들어 가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는 거다.

 

무모한 도전이었던 거 아닐런지...

‘공공의 적’ 어떤가?

좀 투박하지만 사회정의를 말한 거다 그 거 좋다 적당하다 거기까지만 말이다.

‘투캅스’?

좀 무식하지만 재미있다 웃자고 만들었으니 웃으며 극장문 나섰다.. 거기까지...

안되면 좀 더 공부하고 하자, 돈은 벌었쟌아 공부할 수 있을만큼...

돈을 좀 벌었으니 교만해진 걸까?

아니지, 돈을 좀 벌었으니 이젠 좀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뭔가 그럴 듯한 흉내.. 어거지 말고.. 표티 난다.

 

영화는 음식이다.

잘 만든 영화는 잘 차려진 음식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 뒷맛이 감칠맛이 있어야 한다.

‘이끼’는 강우석 최고의 작품이기에는 실패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을 분수령으로 강우석 감독은 새로운 거듭나기에 도전해야만 한다.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야만 그동안 영화를 봐 준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거다.

마치 ‘서편제’를 만든 임권택 감독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