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강(江)가에서
짧은 겨울해가 서녘으로 지면서 석양(夕陽)은 서서히 어둡고도 푸르른 빛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 짧은 해가 그렇게 저무는 하루처럼 우리 또한 한 해와 함께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노을 앞에만 서면 저무는 동안의 노을을 물끄러미 오래 바라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안타까움과 눈을 뗄 수 없는 이름 모를 미련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태양도 구름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푸르른 날들은 그 시절로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태양도 구름도 될 수 없었지만, 등불이나 모닥불 또는 밤낚시배의 등(燈)촉 하나가 되어 있던 날들도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소중했습니다.
이제는 조용히, 저녁에서 밤으로 진화(進化)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어둠의 품에 몸과 마음을 묻어봅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 서서히 달이 차오르고 그 맑은 달빛이 강(江)을 천천히 물들이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고요히 눈을 감은 채, 강을 서서히 물들이시는 그 은은한 달빛으로 마음 깊은 곳에 지녔던 이름 모를 낮익은 아픔과 미움을 사루어 보려고 합니다.
태양도 되지 못했으며 바람도 되지못했던 고독(孤獨)과 절망(切望)조차도 모두 내려놓은 채 이제는 달빛 흐르는 강물을 차분히 바라보려 합니다.
나는 달빛을 받아 안고 일렁이는 작은 금물결 은물결이라도 되어 조그만 모래톱에서나마 흥겹게 출렁이다 떠나려합니다.
돌아보니 태양은 태양대로 꽃은 꽃대로 등불은 등불대로 그 얼마나 황홀(恍惚)하도록 아름다웠던가요...
또, 아침이슬 속에서 솟아오르던 두 쪽 새싹과 어미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까만 눈망울을 반짝거리던 새끼들은 얼마나 깜찍했나요...
이제는 더 이상 저 무심하게 흐르는 강(江)물 속에서 금도끼도 은도끼도 건질 수 없다 할지라도 출렁이는 물결소리를 열린 가슴으로 들어보려 합니다.
듣는 이 보는 이 아무도 없어도 한가로이 이 강(江)가에 머물며 피안(彼岸)의 모든 파도와 물결들을 회상하며 담담히 남은 삶을 맞이하려 합니다.
이 어둠의 끝에서 다시 먼동이 트며 햇살이 비친다면 고마운 일이겠으나, 설혹 끝내 이 어둠과 함께 남은 것이 사위고 만다 할지라도 나는 실망(失望)하지 않으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지만 어제와 오늘 온몸으로 재미지게 놀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노라고 짐짓 위로해봅니다.
해 저무는 오늘 지금까지 상처(傷處)받은 몸과 거칠어진 마음은 달빛 젖은 금물결 은물결로 곱게 곱게 씻어 내리며...
내일 다시 떠오를 뜨거운 해를 가슴 가득 뜨겁게 맞이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