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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Led Zepplin 2012. 4. 26. 11:49

 

 

  영화 <화양연화>를 만든 Stylist 왕자웨이 감독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대성하였다. 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한 사람답게 색과 빛 그리고 음악을 적절하게 배치하였으며 일반적인 고속 촬영을 탈피하고 Slow Motion과 Stop Motion을 사용하여 출연자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냈고 외로움의 상처를 안고 사는 젊은 군상들/ 동성애적 코드/ 화려하며 감각적인 Music/ Music Video Style의 Cinematography 등이 특기사항으로 더러는 이야기를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감각적인 서사구조 그리고 밝고 가볍게 넘어가는 Camera Work와 편집으로 각광받아온 감독이다.

 

1962년의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그 추억은 시작된다. 무역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리첸(장만옥)과 남편, 그리고 지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양조위)와 아내. 리첸의 남편은 사업상 일본 출장이 잦으며 차우의 아내 또한 호텔에서 일하는 관계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차우와 리첸은 가까워진다. 차우는 리첸이 아내와 똑같은 핸드백을 가지고 있으며 리첸은 차우가 남편과 같은 넥타이를 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들의 배우자가 서로 몰래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리첸은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슬퍼하고 차우는 그런 리첸을 위로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 <화양연화>는 가장 찬란했던 한때에 대한 추억, 옛사랑의 추억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문득문득 시계가 등장하는데, 서사의 전개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시계의 바늘은 서사와 함께 발맞추어 가지도, 어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다. 영화 속에서 시계는 바로 그 ‘관계없음’을 위하여 등장할 뿐이며, 추억이라는 것은 시간의 순서대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헤어져야만 하는 추억속의 운명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게다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임지훈의 발라드 노래가사속의 “시간이 오래 지나가서 내 모습도 바뀌었지만~ 그대와 함께했던 마음 지금도 한결같아요. 사랑했던 옛시간 속으로 하루라도 갈 수 있다면~ 당신과 못다 이룬 사랑 꿈이어도 사랑할래요.”는 그래서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장만옥이 출연하여 더욱 아름다운 <화양연화>에는 앙코르와트 사원의 시퀀스(Sequence)가 등장한다. 사랑이 끝나고 등장한 이 유적지의 시퀀스는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흘러간 사랑은 오래된 낡고 무너진 절터와 같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래서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도 ‘황성옛터’라는 노래에 공감했던 것일까... 화려하고 찬란했던 앙코르와트 사원의 기억은 돌무더기들로 이루어진 오래된 유적으로만 남고 말았다. 흘러간 옛사랑의 추억은 이렇게 지나가고 나면 돌 몇 개뿐, 그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뿐이련가... 누구에게나 사랑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있다. 아무리 아름답고 황홀했던 사랑의 시퀀스도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황홀하달지라도 왠지 쓸쓸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또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의미하므로, 뒤집어본다면 지나간 시간들과 사라지는 시간들에 대한 애틋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어를 곱씹어보자니, 과연 내게도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었는지..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 중에서 숲에서 살던 40대의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도록 외로웠던 시간들이 맞는 것 같지만, ‘아름답고 행복한’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앞으로는 있을까? 그건 더더욱 아닐 것만 같다. 어쩌면, 더 시간이 흘러 허리가 굽고 손등이 자갈마당으로 쭈글거릴 때쯤 아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언제쯤이라는 생각이 날 듯 싶다. 그 순간이 오늘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오늘 권태를 이기고 더 재미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어제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 올해 새로 핀 화사하고 아름다운 꽃들은 이미 지고 말았지만, 하늘은 년중 몇 번 안 될 쾌청으로 가슴 벅차게 빛나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여, 오늘을 부디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