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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Led Zepplin 2012. 7. 19. 13:21

 

 

  나는 멜로드라마를 싫어한다. 내가 겪었던 나의 멜로들도 영화 못지않을만큼 충분하기 때문에 굳이 극장까지 찾아가서는 안본다는 거다. 그러나, 더러는 예외도 있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며,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도 오버랩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장점은 스토리텔링이 확실하여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강하다. 어쩌면 그래서 '클래식'보다 두배의 흥행을 몰고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시대가 지나치게 드라이하고 계산적이기 때문에 아나로그적인 사랑타령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건축학개론'의 강의실에서 처음 만나 시작된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모두 어눌하다. 그러나, 그들의 연기가 어눌해도 결코 흠이 안된다. 우리들 첫사랑의 경험들도 모두 어눌했고 어설펐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누구에게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첫사랑의 이야기이건 평생 잊지못할 추억의 이야기이거나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잊지못할 첫사랑의 이야기일 때 우리는 더욱 더 애절하고 아련해진다. 내친구 영식이는 녀석의 자취방에서 라면 먹다가 대판 싸우고 그녀와 헤어졌다. 그래서 영식이는 지금도 라면을 먹을려고 하면 첫사랑 그녀가 떠오른단다. 번듯한 의사 부모의 아들이 라면 먹다가 라면국물 때문에 여자와 대판 싸우고 헤어진 바로 그 녀석이 내 친구라니.. 쩝... 부끄럽거나 쑥스럽거나 쪽 팔리고 민망할지라도.. 쌍년 쌍놈이라 욕하며 헤어졌을지라도 나만의 그 이야기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것은 그 이야기가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단연코, 첫사랑의 추억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우째~ 살았길래, 남들은 다 있는 그 달콤하거나 애절하거나 가슴 쓰리거나 애틋한 추억도 없단 말이고...

 

인생은 추억이다. 우리들 삶의 그 모든 것들은 우리들 기억의 페이지에 접혀져 추억이라는 네이밍으로 저장되었다가 먼훗날 오롯이 펼쳐볼 수 있도록 전개되는 것이다. 첫사랑 그 추억속 이야기의 시절은 누구는 중딩이고 누구는 고딩이며 누구는 대딩이고 누구는 직딩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중딩은 빠르고 직딩은 늦었더냐? 첫사랑에 시기는 없다.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면 대개는 강이거나 바다가 등장하거나 아름다운 찻집이 떠오르거나 비가 오시거나 눈이 내리거나 햇볕이 유난히도 눈부시게 화창하기 마련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대개는 자연과 함께 그렇게 추억된다. 그럴 때, 우리들 인생의 추억은 더욱 더 아름답다.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눈을 감으면 또 네가 떠올라/ 이젠 숨쉴 때마다 네 모습이 너무나 커져/ 이젠 나의 사랑은/ 항상 너와 웃으며 이 밤을 그리워하며 하루를 아쉬워하며/ 또 너를 기다리겠지~" 요즘 한창 떠오르는 샛별인 '버스커버스커'의 '첫사랑'은 애타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가슴 너무 떨렸어요/ 그때 이미 예감했죠/ 사랑에 빠질 것을/ 그대의 몸짓 그대의 미소/ 다정스런 그대 목소리/ 나 어떡해요 숨이 멎을것 같아/ 그대에게 빠져버렸어요/ 하루 온 종일 그대 생각 뿐이죠~" '장윤정'의 '첫사랑'은 여자라서 그런지 '버스커버스커' 보다 더 애절하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영화의 구성은 '번지점프를 하다'를 떠올리게도 한다. 우리들 첫사랑의 잉태 그리고 숙성 뒤를 잇는 좌절을 겪으면서 우리들의 사랑은 성숙한다. 최루탄과 유신과 데모와 하드락과 쏘주& 막걸리로 연상되는 우리들 첫사랑의 풍경들은 장년의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고 영혼의 애절하고 아련한 상흔으로 남아있다. 우리들 상처와는 다르게 '건축학개론'의 마무리는 수채화를 연상시킬만큼 깔끔하다.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OST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