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Pieta’들에게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Venice Film Festival)에서 우리나라 김기덕 감독의 영화 ‘Pieta'가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Golden Lion for Best Film)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백년의 대경사인 거다. 김기덕 감독은 중졸의 어설픈 전문가로 저평가된 아웃사이더 감독이었다. 그런 김기덕 감독의 수상은 그래서 더욱 값이 높다. 우리나라 각계의 주류들로 부터의 소외와 질타/ 혹평으로 살아온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그런데, 문화인으로 유명한 어떤 인간이 그 영화를 본 소감을 아래와 같은 시작으로 글을 써 찬물을 끼얹고 있다. “나는 귀가 얇다. 영화에 관한 한 특히 그렇다. 남들이 좋다고 하면 본다. -이하 생략-.” 그냥 모르면 모르는 대로 구구로 구경하고 가이소리 안했으면 좋을 뻔 했다. 그가 문화인이라기에, ‘그런가?’라고 의아심을 평소에 갖고 있었는데 그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 읽고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라는 게(개?^^) 겨우 이런 수준인가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그가 표현방식을 지적한 ‘피에타’에 묘사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방식”은 대기업들과 부자배급사가 투자한 나홍진 감독의 ‘황해’ 이거나 곽경택 감독의 ‘친구’ 또는 거룩한 계보/ 우아한 세계/ 말죽거리 잔혹사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들에 비하면 ‘피에타’는 상징성만 있을 뿐 약한 정도일 뿐이다.
“그걸 믿고 영화관에 갔다가 실망한 경우” 운운 또한 자신의 무식의 소치를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실망스런 작품으로 매도하는 몰상식은 이 무식한 시정잡배가 볼작시면, 저명한 지식인의 자세가 ‘저지경인가’ 하고 보여 진다.
더구나, 아연실색하게 하는 발언으로는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는데.. “관객 없는 영화가 무슨 소용인가” “대중과의 소통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츠암 나... 대중이 ‘트로트’ 가요를 좋아한다고 해서 ‘클래식’은 무용지물이며, 햄버거와 핫도그가 대중에게 입맛에 맞으니 식단에서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없애야만 하는 것일까??? 핫도그 많이 잡수셔요...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중의 감독인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만든 명작중의 명작인 영화에 “희생(The Sacrifice, 1986)”이 있다. 모르고 보면 증말 졸립다. 그럼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은 망발을 한 인간의 말마따나 안만들어야 될 작품을 만든 것일까? 관객이 안 들 것 같은 영화를 만들면 아니되고 대중의 입맛에 맞을 영화가 아니라면 만들지 말라는 그 작자의 망언은 자기 자신을 하루아침에 지식인에서 망나니로 곤두박질치도록 만들었다.
지식인(知識人)이란,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교만한 지식인보다는 초라한 지혜인(Homo sapiens)이 그리운 현실이다. 세계적인 명성의 일본의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에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를 보면, ‘하울’과 ‘캘시퍼’라는 유성이 등장한다. 그 둘은 특별한 사이로서 하울이 캘시퍼에게 심장을 준 날로부터 그 둘은 항상 같이 다니게 되는데 그 둘은 엄청난 마법사로 거듭나게 된다. 스승인 설리번에게도 맞설 만큼의 수준인 거다.
이 환상의 마법사는 결국 지식인을 의미한다. 지식인이 대단한 것인 양 우쭐대지만, 제도권내에서의 지식인이란 그 또한 오직 학문적 출세주의가 주된 목표이며 전문적 직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전문가일 뿐인데 영화는 그 전문가의 엉뚱한 나르시즘을 비웃고 있음 이다. 우리 모두 눈여겨 감시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언필칭 지식인들의 나르시즘이 추구하는 잘못된 언행과 리딩(Reading)을 눈 크게 치켜뜨고 응시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