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색(色)은 공(空)한가

Led Zepplin 2013. 6. 21. 13:57

 

 

당(唐) 정원(貞元) 6년(790) 조주(潮州)지방에 자사라는 직책으로 당대의 유명한 문장가 한유(韓愈·한퇴지·韓退支·768~824)라는 관리가 부임하였다. 그런데, 그는 극단적인 배불사상가로서 사람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영산(靈山)의 축융봉(鷲融峯)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법(法)을 펼치고 있는 태전선사(太顚, 732~824)를 시기하여 불교를 말살하려 하였다. 한퇴지는 태전선사가 주석하고 있는 사찰에 홍련이라는 관기를 보내 시중을 들게 하는 흉계를 꾸몄다. 여인의 유혹을 통하여 태전선사를 파계시킬 요량이었다.

 

뛰어난 미모의 홍련은 갖은 몸짓과 교태로 선사를 유혹했으나 오직 수행으로만 일관하는 선사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약정한 3개월안에 유혹하지 못하면 한퇴지에게 처형당할 운명인 홍련은 기간이 다되어 가자 죽음을 앞두고 목 놓아 울게 되었다. 한 밤중에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은 선사는 홍련에게 그 사연을 듣고 그녀의 치마폭에 편지를 적어주었다. 이튿날 절을 내려온 홍련은 한퇴지에게 선사의 글월을 보여주자, 한퇴지는 스스로 자신의 무례를 뉘우치며 선사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홍련의 치마폭에 적어 주신 태전선사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鷲融峯) 십년을 축융봉에서 내려가지 않고

관색관공색즉공(觀色觀空色卽空) 사물을 보되 공으로 관하니 여색도 곧 공이더라.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 어찌 조계의 한 방울 물로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붉은 연꽃 한 잎을 적실 것인가.”

 

천주교도였던 불초소생(不肖小生)이 어느 순간 불심이 일어 불법(佛法)에 매료된 지 어언 20여년, 이런저런 인연으로 당대의 도인 몇 분을 알현하고 공부한 바 있는데 성철((性徹) 큰스님의 상좌(上佐·제자)들이시고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개척하신 선구자이시며 이미 입적하신 맏상좌 원명(圓明)스님을 비롯하여 아직도 성철큰스님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백련암에 계시는 원택(圓澤)스님과 수행자로서의 정진 이외의 세속적인 삶의 가치를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수좌이자 한국불교를 개혁한 모임의 장소가 되었던 고귀한 봉암사를 지키시는 원타스님/ 어딘가의 선원에서 선원장으로 주석하실 단아한 선비같은 원유스님 그리고 금오대선사의 제자분들이신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따뜻한 송월주(宋月珠)스님과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지내시며 대종사(大宗師)이신 사천왕 같으신 용모의 월서(月棲)스님이 계시다. 그 외에도 아둔한 본인을 깨우쳐 주시려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스님들의 바다와 같은 은공에 항상 송구스럽다.

 

상기 태전선사의 게송은 오늘까지 이판승(理判僧·수행에만 전념하는 승려)과 사판승(事判僧·사찰의 행정이나 살림을 맡는 승려)을 오가며 한 시절을 호령하셨던 월서스님께서 때때로 자신을 가다듬을 필요가 생기면 암송하시는 게송이다. 월서스님이 20대 무렵에 여자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스승인 금오선사께 여쭈었다는 거다. “스님은 그 생각이 없으십니까?”고.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야, 이놈아! 나도 사람인데 어찌 그 생각이 없겠느냐. 참고 견디는 것이지...”라 하셨단다. “관색관공색즉공(觀色觀空色卽空)이라, 사물을 보되 공으로 관하니 여색도 곧 공이더라.” 과연 여색도 공한가. 이 못난 천출에게는 나이가 든 오늘도 그 공안(公案)은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