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라는 노래는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흥이 절로 나는 여름노래이다. 노래를 부른 키보이스는 한국 최초의 그룹사운드이며, 노래를 발표하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장안의 스타로 등극했고,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의 맨 앞줄에 기록되었다. ‘해변으로 가요’는 사실 일본 노래의 번안곡이었는데, 1966년 일본 밴드인 아스트로 제트(Astro Jet)의 리더이자 재일교포인 이철이 ‘고히비토타쓰노 하마베(해변의 연인)’를 작곡했다는 거다. 이철은 1967년에 한국을 찾아 공연하면서 다른 이에게 부탁하여 이 곡을 한국어 노랫말로 바꾸어서 불러 들려주었으며, ‘해변의 연인’이 은근 맘에 든 키보이스는 자신들이 이 곡을 부르기로 작정하고 그 허락을 구하여 대히트를 기록한 거다.
어찌 되었거나, 누구나 무심하고 지겨운 여름이었다가도 ‘해변으로 가요~’라는 이 노래만 들으면 괜시리 가슴이 뛰고 바다가 그리워지는 것이 나만의 심사는 아닐 것이다. 70년대 우리의 여름 대천해수욕장/ 변산 해수욕장/ 만리포의 밤은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경비를 갹출하여 바닷가로 캠핑을 떠난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낮에는 무더운 텐트안에서 잠을 자고, 더우면 일어나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몸을 식히며 라면 한 봉지를 끓여 후룩후룩 들여마시고는 담배 한 개피를 맛나게 피운 후엔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들고 했지만, 그 뜨겁던 여름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어스름해지면 어제 마신 술로 떡이 되어 잠에 빠져 낮잠으로 하루해를 보낸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모래사장에 무릎을 고이고 앉아 해변의 물(?)을 점검하는 거였다. 당시의 우리는 야생화가 따로 없고 불나방이 따로 없는 질주의 아니 폭주의 나이였던 거다.
잠이 덜 깬 눈으로 오늘 해변의 물을 대충 점검한 우리는 각자 알아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나면 그 날의 당번이 삼발이가 달린 놋쇠로 된 석유 버너에 불을 붙이고 바람막이를 두르고 삼층밥을 한다. 콩나물에 이미 더운 날씨에 시어터진 김치를 우겨넣고 끓인 국은 재료와 솜씨를 무시하고 시원하고 칼칼하여 언제 먹어도 죽여준다. 삼층밥을 만든 당번친구를 구시렁거리며 탓하고 욕을 하며 다른 친구가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더 먹을까봐 우거우거 양껏 밥을 먹은 각자는 다들 슬그머니 밥 먹은 자리를 뒤로 하고 모른 체 돌아 앉아 담배를 피워댄다. 대개는 내가 아니라면 가장 나중에 누룽지까지 훓어 먹은 친구가 “ 야 야 돌아 앉아 이 강도들아, 어서 가위 바위 보 해~ ” 하며 욱박지르면 헐 수 없이 못이기는 체 돌아 앉아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코펠의 설거지 담당을 가려낸다.
설거지가 끝나고 화장실까지 다녀온 일행들은 잠시 텐트안에서 휴식을 취하며(진종일 자빠져 자고도 피곤하다) 해가 완전히 지기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여기저기에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기타소리가 들리고 야전(야외전축/ 사각형의 포터블 전축)을 틀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우리들도 서서히 오늘 밤 광란의 축제를 준비한다. 우리들의 축제에는 요령이 있다. 캠프파이어는 그날 해변에서 가장 크게 불을 피울 것. 큰 불을 피우되 헌팅이 끝날 때까지 유지할 것. 야전의 음악은 어느 팀들보다 최신곡으로 선곡하여 가장 신나는 음악을 연속적으로 틀어대서 해변을 장악할 것. 경비가 빈약한 우리는 몸으로 때우기 위하여 가능한 한 가장 현란하고 요란하게 기성을 지르며 춤을 출 것. 대여섯곡의 음악과 춤이 끝나면 로맨틱하고 우수 어린 기타곡으로 연주하여 춤을 멈추고 쏘주 마실 시간을 만들며 그날 해변의 아릿따운 아가씨들이 호기심을 갖고 구경올 수 있도록 그럴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춤곡과 기타의 연주는 밤새 로테이션된다. 춤은 키가 큰 윤경이가 제일 볼만하며 기타 연주만으로는 현철이가 기타와 노래의 솜씨로는 내가 괜찮았고 문홍이는 마스크와 몸매를 주로 한 비쥬얼로 한 몫 했으며 곰은 덩치와는 다르게 눈치가 빨라 적절히 알아서 이것저것의 뒷수발을 잘했다.
이 광란의 해변을 위하여 우리는 가장 소리가 좋고 누가 봐도 뽀대가 나는 야전을 구하기 위하여 이미 몇 달 전부터 주변을 물색하여 물건을 찍어두고 대여의 흥정 끝에 마련된 야전이며, 선곡에 동원된 디스크들은 ‘Eagles' 'C.C.R.' 'KC & The Sunshine Band' 'Deep Purple- Smoke on The Water' 'Ventures- Wooly Bully' 'Key Boys- 해변으로 가요’등이 있었으며, 춤으로는 ‘트위스트’부터 ‘소울’ ‘알리’ ‘고고’까지 두루 섭렵하였던 거다. 기타곡으로는 ‘신중현의 봄비/ 기다려주오’ ‘Al Green- For The Good Times' 'Tom Jones- Green Green Glass Of Home' 'Johnny Horton- All For The Love Of a Girl' John Lennon- Imagine' 'Simon & Garfunkle- Bridge Of Troubled Water' 'Animals- The House Of Rising Sun' 불멸의 기타곡인 ‘로망스’ ‘어니언스- 편지/ 저 별과 달을/ 외기러기’ ‘이장희- 한 잔의 추억’등등 이었던 거다. 당시의 텐트는 지금처럼 고가가 아니었으며 좀 우중충했지만서두 싸면서도 튼튼하고 비바람을 막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캠핑은 주종이 뒤바뀐 장보기 위하여 말을 타는 것인지 말을 타기 위하여 장에 가는 것인지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곁을 지나가며 구경을 하거나 지나치는 척하며 유혹을 기다리는 썩 괜찮은 여자들에게는 과감하고 정중하게 합석을 요청(?/ 강요?)한다. 대개는 못이기는 체 하며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날 밤 그 해변을 우리가 장악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합석시키면 아껴둔 맥주를 가져온다. 우리들은 주로 쏘주로 흥을 돋우고 여자들에겐 맥주 공세를 퍼붓는다. 행여, 우리들 중 어느 누가 여자가 권한다고 하여 맥주를 마시기라도 할 경우에는 그 인간에게 우리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불화살이 일제히 날아간다. 다음날 낮에 점심을 먹으며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고초를 당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아~, 고맙습니다만 저는 맥주보다 쏘주가 더 좋더라구요^^;” 하며 비싸게 구한 맥주를 피하여 쏘주를 마셔야 하는 거였다. 음악과 춤과 여자와 술이 있었던 우리들의 광란의 밤은 뿌옇게 동이 터오며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끝이 났다. 헌팅에 성공한 친구는 열락의 시간이 남아있었으며 헌팅이 성공하지 못하여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우리들의 새벽은 즐겁고 흥겨웠다. 왜냐하면, 오늘 밤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휴가를 맞이하여 느릿느릿 서해안의 바닷길을 따라 내려가며 부안의 격포해수욕장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바닷물에 몸을 담구니 나도 모르게 젊은 날의 호연지기와 열정이 온 몸을 휘감아 활력이 솟구쳤다. 해변에서의 광적인 흥겨움으로 즐거웠던 추억과 한시절 5대양 6대주를 누볐던 선박생활의 고독과 아픔들도 한꺼번에 몰려와 아련한 회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 우연히 튼 라디오에서 추억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연인들에 해변으로 가요~ 사랑한다는(사랑한다는) 말은 않해도(말은 않해도)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