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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떠나라

Led Zepplin 2013. 10. 15. 16:51

 

 

  바람을 잡을 수 없듯 계절 또한 붙잡을 수 없다. 시위를 떠난 화살도 잡을 수 없음이다. 어린 시절 시냇가에서 떠내려 보낸 종이배가 돌아왔다는 소문도 들은 적이 없다. 지나간 여름의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어떤 이에게는 기억도 하기 싫은 아픈 상처일 수도 있다. 아침 기온이 서늘해지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면서 출근길에 만나는 한 잎 두 잎의 낙엽으로 부터 불볕더위/ 에어컨/ 바캉스/ 폭염주의보 따위의 단어들은 이제 모두 과거의 단어가 되었다.

 

가을이 되면 나는 왠지 가슴 한 구석이 휑하게 서늘해지면서 어디론가 끝도 없이 떠나고만 싶어진다. 생각해보면, 해와 달도 영원한 가객이고 오고 가는 해 이 또한 나그네일 따름이다.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되어 차에서 핸들을 잡고 길에서 평생을 보냈거나 드넓은 바다에서 항해사가 되어 조타기를 붙잡은 채 나이 들어가는 사람은, 그날그날이 여행이기에 여행을 거처로 삼는다. 옛 선인들 중에는 많은 풍류객들이 여행길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여행과 죽음은 왠지 닮았다. 여행이 쾌락보다는 철학을 더 닮았듯이 말이다.

 

가을은 그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을비가 소리없이 며칠 내리고 나면, 언제부터인지 하늘 높이 무리를 지어 나르는 기러기는 가을을 알리는 전령(Messenger)이다. 가을바람이 불어와 추워지게 될 것을 알기에 기러기는 따뜻한 겨울을 위하여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기러기는 가을바람의 도래를 본능적으로 알지만, 사람은 가을이 왔음을 본능이 아닌 정서로 알아낸다. 그 정서란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운 마음과 싸늘해진 날씨가 결합하여 쓸쓸한 정서로 나타난 것이 바로 가을의 느낌이 아닐까싶다. 그리하여,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나는 떠나고 싶다.

 

거기 억새가 슬피 울며 흔들리는 영남알프스의 간월재도 아름다우며/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이라도 들리는 듯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무릇과 각양각색의 단풍이 황홀한 선운사도 좋으며/ 코스모스와 백일홍과 구절초가 소박하게 어우러진 어느 도시의 강변도로라도 훌륭하며/ 풍물패의 쾡작거리는 장단과 난장이 어우러진 시골 동리의 축제라도 흥겨우며/ 켜켜이 내려 앉아 밟는대로 낭만이 바스락거리는 오대산 상원사도 멋지고/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따라 걷는 해안 트래킹 코스가 훌륭한 부산의 갈맷길도 좋겠다.

 

   목하 수행중이다

 

   살을 째보기도 하고

   피를 철철 흘려도 본다

 

   말수를 줄여도 보고

   명상에 잠겨도 본다

 

   몸살을 앓아도 보고

   오만 별 짓거리를 다해본다

 

   허나 역시

   참 수행은

   길을 떠나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는 듯싶다

 

   길이 곧 깨달음의 스승이다

 

   다시

   길 떠날 채비를 해야겠다

 

                           -----   김낙필/ 여행(旅行)

 

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별도 나비의 날개도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그래서 해가 지거나 낙엽이 떨어질 때 홀로 걷는 건 그렇게 쓸쓸한가 보다. 그 눈이 부시게 고운 빛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 말이다. 소리없이 떨어지는 가을비와 함께 지는 나뭇잎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조각구름을 몰아가는 저 바람결에 이끌려 정처없이 방랑하고픈 생각이 끊이지 않아서 저 먼 어촌의 해변을 기약도 없이 터덕터덕 거닐다가, 골안개가 내려앉는 저녁이 되면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한 잔 술에 의존하여 추운 어깨를 추스르면서 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노래를 읊조리며 석양을 맞이하고 싶다. 밤은 두렵지 않다. 그윽한 달빛이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깊은 꿈속에서 나는 그대를 기쁘게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