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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그 분분한 낙화(落花)의 추억

Led Zepplin 2014. 2. 21. 14:28

 

 

K형!

무엇에 그리 미련이 많아서 이리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입춘 우수가 지났음에도 봄소식은 없고 늦은 겨울에 폭설에 대한 소식만 있습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막바지 떼를 쓰며 기승을 부리며 동해엔 바람이 몰아쳐 출항을 못한 배가 다수랍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추위와 바람은 아직 겨울이 떠날 마음이 없음을 느끼게 하지만, 남쪽엔 어느 새 봄바람으로 설레이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 봄의 시작은 동백꽃입니다. 남도는 이미 장렬한 낙화로 유명한 동백의 그 붉은빛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남녘에는 바닷바람에 날라 온 소금기를 잔뜩 머금고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선 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시간, 다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동백은 세 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떨어져 땅위에서 한 번 더 피고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한 번 더 꽃을 피우는 동백꽃. 붉디붉어서 더욱 처연하도록 슬프게 보이는 진홍빛깔 꽃. 동백꽃이 진다고 슬퍼해야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맑은 하늘아래 따사로운 봄볕속에서 청순한 소녀의 입술처럼 붉은 꽃송이를 만나면 잠시 이유모를 슬픔이 몰려와도 좋겠습니다.

 

'혈서 쓰듯, / 날마다/ 그립다고만 못하겠네/ 목을 놓듯,/ 사랑한다고/ 나뒹굴지도 못하겠네/ 마음뿐/ 겨울과 봄 사이/ 애오라지 마음뿐/ 다만, 두고 온/ 아침 햇살 탱탱하여/ 키 작은 섬, 먹먹하던/ 꽃 비린내를 못 잊겠네/ 건너 온/ 밤과 낮 사이/ 마음만 탱탱하여' 박명숙(1956~ ) 시인의 '지심동백'이라는 시입니다. 키 작은 섬 지심도에 두고 온 그리움이 생생하게 가슴을 적십니다. 그 그리움은 사랑이라 불러도 좋겠으며 애절한 추억이라 불러도 좋겠나이다.

 

소박하게 아름다운 동백꽃은 바람에 날려 언젠가는 땅위에 떨어지고 맙니다. 마치도 우리네 인생을 닮았습니다그려. 동백꽃은 언제나 한 잎 두 잎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 채 통째로 문득 땅에 떨어집니다.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화려하게 떨어지는 그 꽃은 사나이처럼 살다 죽고 싶은 저의 마음을 닮아있습니다. 높은 곳에 피어있었지만 꽃송이 그대로 땅바닥으로 추락한 꽃은 그 고고함을 잃지 않습니다. 꽃은 지고 말았지만 진정 그 꽃의 넋은 아름답습니다.

 

K형!

나이 어려서부터 들었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히트송인 ‘동백아가씨’는 그렇게 슬프고 구성지게 우리들의 마음을 적셨습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크게 벌어지지 않고 수줍은 듯 벌어지다가 덜컥 떨어지고 맙니다. 다 피기도 전에 지는 꽃, 그게 동백입니다. 마치 채 피지도 못하고 이름 모를 병으로 죽어야만 했던 사촌누나의 주검처럼 어쩌면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송창식의 노래 ‘선운사’는 후렴처럼 따라붙는 코러스가 촌스럽지만, 싸나히답게 쿨하게 헤어지지 못한 채 그렇다고 승질을 내지도 못하고 맥짝없는 동백꽃 눈물 타령을 하며 찌질하게 매달리는 제 친구 녀석 병석이를 닮았습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의 ‘동백꽃(선운사에서)’은 이별이 아쉬워 못내 아쉬워 울음우는 그 여자의 속내입니다.

 

K형!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시인의 ‘선운사 동백꽃’은 돌아서 울음우는 못나빠진 저의 모습 그대로 판박이입니다. 아닌가요? 시인은 그까짓 사랑 때문에 울었겠나요, 맨발로 건넌 발이 시리고 아려서 울었을 겝니다.

 

전남 강진의 백련사 주변에는 동백나무 1천5백여그루가 장관을 이루며, 충남 서천의 춘장대에 피는 동백도 바다와 어울러져 아름답지만, 전북 고창의 선운사 대웅전 뒤편의 동백숲은 500년 이상된 아름드리 동백만 모두 3,000여 그루로써 매화가 지고 난 4월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리죠. 안목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광양의 옥룡사지에 숲으로 흐드러진 동백도 아름답지만, 섬으로는 거제 지심도와 내도/ 여수 오동도/ 거문도가 유명합니다. 선운사는 가을 단풍이 천하절경이지만, 4월에 피는 동백꽃과 벚꽃/ 진달래꽃이 한데 어우러져 흐드러진 장관이 일품입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라고 동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해남 두륜산의 대흥사의 산자락 수백년된 동백도 유명하고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우는 월출산은 동백꽃과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역시 장관입니다. 이 봄, 그 어딘가 동백꽃 흐드러진 언덕으로 향하여 아름다운 산하를 즐기시기를 권합니다.

 

K형!

푸르고 푸르러 짙푸른 잎에서 그토록 붉은 꽃이 맺힐 줄 누가 알았겠나요. 잎은 우리의 산하를 바라보며 컸을 터이고 꽃은 태양을 보고 자랐겠지요. 짧은 여행에 추억은 길더군요. 우리네 삶도 동백꽃처럼 소박하지만 진하게 붉고 푸르러 신산한 나그네의 여행길같은 삶이나마 아름답게 한세상 살다가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봄이 온다고는 하오나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내내 강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