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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에 바치는 기도

Led Zepplin 2014. 12. 14. 02:36

 

 

  언제나 그렇듯이 노을을 만나면 저무는 노을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노을의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알 수 없는 안타까움과 눈을 뗄 수 없는 이름 모를 미련인 것만은 분명한 듯싶습니다. 오늘도 짧은 겨울해가 저물면서 석양(夕陽)은 서서히 어둡고 푸르른 빛으로 바뀌어 갑니다. 짧은 해가 이렇게 저무는 하루처럼 우리들의 삶 또한 한 해와 함께 그만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신화(神話)도 전설(傳說)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우리들의 푸르른 날들은 그 시절로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신화도 전설도 될 수는 없었지만, 작은 모닥불처럼 살아온 날들도 내게는 충분히 아름다웠으며 소중하였습니다. 숨 가쁘게 지나온 격정(激情)의 시간(時間)들을 마무리하고 지금 이 순간 저녁에서 밤으로 진화(進化)하는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따스한 어둠의 품에 고단한 몸과 마음을 묻어봅니다. 그리하면, 그 어둠 속에서 서서히 달이 차오르고 그 맑은 달빛이 강()물을 고요하게 물들이시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시는지요...

 

조용히 눈을 감고 겸허히 머리 숙여, 강을 서서히 물들이는 그 은은하신 달빛에게 마음 깊은 곳에 지녔던 이름 모를 오래 익숙한 아픔과 또 다른 미움까지도 모두 사루어 보려 합니다. 신화도 되지 못했으며 전설도 되지못했던 고독(孤獨)과 절망(切望)까지도 내려놓은 채 이제는 달빛 교교히 흐르는 강물을 무심하게 바라보려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달빛을 가슴 가득 받아 안고 일렁이는 작은 금물결 은물결이라도 되어 조그만 모래톱에서나마 흥겹게 출렁이고 일렁이다 기쁜 마음으로 떠나려 합니다.

 

숨을 모두고 다시금 뒤돌아보니, 태양은 태양대로 꽃은 꽃대로 나비는 나비대로 모두들 그 얼마나 황홀(恍惚)하도록 아름다웠던가요. 청량한 아침 햇살 아래에서 봉긋 솟아오르던 두 쪽 새싹과 어미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까만 눈망울을 반짝거리던 새끼들은 모두 얼마나 깜찍했던가요. 이제는 더 이상 저 흐르는 강()물 속에서 금도끼도 은도끼도 건질 수 없다 할지라도 출렁이는 물결소리를 열린 가슴으로 들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한가로이 이 강()가에 머물며 피안(彼岸)의 모든 파도와 물결들을 회상(回想)하며 버들피리 하나 꺽어 불며 담담히 나머지 삶을 가꾸려 합니다.

 

이 어둠의 끝에서 다시 먼동이 트며 햇살이 비친다면 고마운 일이겠으나, 설혹 끝내 이 어둠과 함께 남은 것이 모두 사위고 만다 할지라도 나는 실망(失望)하지 않으렵니다. 내일은 이미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지만, 어제 그리고 오늘 온몸과 마음으로 흔쾌하도록 춤추고 노래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노라고 짐짓 위로해봅니다. 태양이 곱디곱게 저무는 오늘, 지금까지 상처(傷處)받아 찢긴 몸과 거칠어 메마른 마음은 달빛 젖은 금물결 은물결로 씻어 내리며 내일 다시 떠오를 뜨거운 해를 가슴 가득 벅찬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하려 합니다. 사람과 우주(宇宙/ Cosmos)에 가득한 신()들 그리고 정령(精靈)들 모두 항상 즐거움 가득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