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광복 70년을 맞아 펼쳐질 7만 국민 대합창의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저녁 8시에 방영하는 TV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1차 예비 노래 심사에 합격한 칠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한명씩 출연하여 2차 심사에 도전하는 거였다. TV를 잘 안보는 나는 처음엔 이게 무슨 프로인가 하여 무심하게 보았으나 나는 곧 그 프로에 빠져들고 말았다.
심사에 출연하는 할배와 할매들이 부르는 그들의 애창곡을 들으면서 나는 그 분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표정과 움직임에 주목했다. 동양학중의 하나인 명리학의 역술중 관상을 보고 상대의 운명을 점검하는 이들은 찾아온 이의 얼굴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대강은 짐작을 해낸다. 일정 수준의 단계에 오기 까지 그들은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 확인하며 자신을 수련했던 것이다. 나도 나름 수련을 한 얼치기 중의 한 명인 바 사람을 접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상대를 일단 점검하게 된다. 또한, 구태여 역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하여도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살펴보기 마련인 거다.
1945년생으로서 70년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이 최선을 다하여 부르는 자신의 애창곡에는 그 곡이 뽕짝이냐 가곡이냐 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애환이 분명코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처럼 자신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노래는 잘 부르느냐 와는 무관하게 그들이 부르는 바로 그 노래 한 곡은 그 자신의 이력서이자 본인 자신의 뮤직비디오인 거다.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삶은 감추려야 감출 수 없고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거다.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들의 노래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어떤 분의 노래는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 분이 노래한 그 곡은 이미 그 분의 몸에 육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종이 땡땡땡”으로 부터 시작하여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밥상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머리 빡빡 깎은 중/고등학생 시절 예쁜 음악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변성기의 그 민망한 목청을 다듬고 불렀던 “머나먼 저곳 스와니강~ 그리워라~ 날사랑하는 부모님 평안들 하신지~”/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그렇다. 눈물나게 그리운 그 꿈만 같은 시절이여. 당시에는 최고의 시인으로 여겼던 박목월선생의 시에 붙인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인 거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18번 즉, 애창곡이 있기 마련이다. 내 친구 영철이의 애창곡은 ‘땡벌’이다. ‘땡벌’.. 노래가 주는 박진감이 좋다는 거다. 그래. 누가 말리겠니. 땡벌이면 어떻고 남행열차이면 어떠하며 빙글빙글이면 어떠하리 저 좋으면 그만이지.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곳이 한두곡 정도는 생기게 되고, 일부러 18번을 위하여 그럴듯한 노래를 배우기도 한다. 누가 말리겠나 본인이 좋으면 그만인 거다. ‘18번’이 일본말이니까 사용하지 말라지만, 18번.. 재미있지 않나. 욕이 연상되어서 더 재미있다. 그건 그렇고, 트로트이면 어떻고 가곡이라고 해서 누가 알아주며 팝송이라고 해서 잘났다고 하리까. 꼭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나, 그것 또한 “너나 잘 하세요~ ”하며 개무시하면 그만이다. 내가 좋아서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며 내가 부르다가 죽을 노래이기 때문이다. 남 눈치 볼 일이 아닌 것이며, 내가 꼴리는대로 살다가 가면 족한 거다.
나는 본래 18번이라는 애창곡이 없었다. 그냥 대충 아무 노래이건 자리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불렀던 거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고 노래방기계가 생기다보니 노래 부를 일이 많아졌다. 술 마실 일은 왜 그렇게 많았던지 또 술 마실 일이 없으면 술 마실 핑계를 만들어서도 마시던 시절에 노래방을 즐겨 찾았다. 나는 혼자 노래방엘 가도 맥주 두세병 정도만 챙긴다면 옆방 사람들이 다 도망가건 말건 세시간 정도는 간단히 놀다가 나온다. 혀를 내두르며 가제의 눈으로 나를 보던 노래방주인은 자기 손으로 맥주를 내오고 나는 노래방비를 내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가 되었음은 당연지사이다. 간혹 노래가 잘되는 어떤 날은 옆방에서 합석 제의도 오지만, 꼴에 자존감은 높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살다보니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느 덧 애창곡이 생기게 되었음이다.
부평초처럼 불나비같은 삶을 허송세월로 눈 깜짝 할 사이에 살아오면서, 술과 담배와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오래 전에 자살하였을 것이다. 나는 좋건 나쁘건 어느 자리에 서건 노래를 불러야 한다면, Frank Sinatra의 ‘My Way’를 부른다. ‘My Way’는 이미 오랫동안 불렀던 탓으로 나도 모르게 나의 몸에 육화되어 있다. 또 다른 한 곡은, 배철수의 ‘빗물’... 나는 지금도, 때때로 마음이 심란하거나 우울할 때이거나 내게 주어진 어떤 프로젝트를 마침내 완성하였을 때면 나 홀로 조용히 이 노래를 부른다. “And did it my way! Yes, it was my w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