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세자(思悼世子)...
나는 그가 아프리카의 콩고이거나 케냐이거나 에서 우리나라에 온 꼬시랑 머리칼에 얼굴 까만 사람일지라도 영화 ‘사도(思悼)’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면 그는 한국인으로 귀화시켜도 전~ 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들의 한(恨)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단어로 정(情)을 이야기하지만, 정(情)이 한국인의 육체라면 한국인의 영혼은 한(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恨)이란, 타인/ 사회의 제도/ 역사/ 환경 등으로 꿈 또는 욕망이나 의지가 좌절/ 파멸당하여 입게 된 상처와 아픔 등의 타(他)에 의한 타상(他傷)이거나 원망하고 후회할 행위를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스스로 낸 상처와 아픔인 자상(自傷)의 결과물인 응어리이며 고(罟, 罛)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DNA에는 오랜 그 질긴 역사(歷史)를 통하여 축적된 한(恨)이 있다고 본다는 생각입니다.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라는 어떤 여자가 카피 번역하여 재미를 본 바 있는 지중해의 소국 중 한 나라였던 로마가 엄청난 영토를 차지한 대제국으로서의 흥망성쇠를 대하드라마로 소설화하여 ‘로마제국쇠망사’를 집필한 영국의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역사는 바로 인류의 범행/ 우행/ 행운의 등기부이다.”
또한,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를 수행한 ‘에드워드 카’ 교수는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인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죠, 과거의 등기부를 오늘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대화하며 이해하려 노력해서 오늘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화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王)이어야 했던 무수리의 아들/ 형을 죽이고 왕이 된 자/ 노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떳떳하지 못한 결함으로 왕이 된 아버지 ‘영조’와 그런 결함으로 인하여 떳떳하고 당당한 세자를 원했지만, 아버지의 지나친 조급함으로 그 바램에 따르지 못했으며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사실은 정에 굶주린 인간적인 만득자 세자 ‘사도’의 이야기를 조선의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왕가의 가족사 이름하여 8일간의 ‘임오화변’ 그 비극적이고 참혹한 속살을 민낯으로 조명한 슬픈 영화입니다.
왕가(王家)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엄청난 권력(權力)을 가지고도 예법(禮法)과 도(道)라는 틀과 독(毒)안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군웅(群雄)들의 모습이 묵직합니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하며 절규하는 세자의 부르짖음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픕니다.
영화 《사도》는, 이미 오래 전에 흘러갔지만 우리 민족의 내밀한 곳에 감추어둔 속살을 저며내는 아픔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공부에 열중하며 성장하여 가는 어린 세자를 바라보며 밤늦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만들 글을 쓰는 영조에게 신하가 “전하, 침소에 드실 시간이 지났습니다!”하고 고하자, “어느 아비가 아들을 생각하며 책을 만드는데 자네 같으면 잠이 오겠는가?”하고 대답하는 영조에게는 아들 세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십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사랑에 목마른 그러나, 세자로써는 금지된 기행(奇行)으로 아버지의 눈길을 끌려는 한이 맺힌 아들 세자에게 실망한 영조는 “왕가에서는 아들을 원수로 생각한다.”고 냉혹한 말 한 마디로 일갈하며 정을 끊으려 하자 세자는 혼잣말처럼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소.”하며 탄식합니다.
사도세자인 ‘유아인’이 어린 세자(훗날의 정조대왕)를 데리고 활터에서 활을 쏘며 그 중 한 발을 허공에 쏘아 날리면서 “허공을 향하여 날아간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는 아비 사도세자의 혼잣말 또한 영민한 어린 정조대왕의 가슴과 못난 관객 저의 가슴에 못질이 됩니다.
중국의 고전에는 훌륭한 책이 많습니다만, 『노자』가 5천자 『논어』가 1만2천자 『맹자』가 3만 5천자 『장자』가 6만5천자라고 합니다.
그 중 제가 좋아하는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어느 불구자의 자기성찰이 있습니다. 불구자인 산모가 깜깜한 밤중에 혼자서 아기를 낳은 후에 그 고단한 몸으로 급히 불을 켜서 자기가 낳은 아기의 몸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그 경황없는 산고의 아픔을 참아가면서도 황망히 불을 켜고 아가의 몸을 살펴보는 것은 유공기사기야(唯恐其似己也)라 하여 자신의 아기가 혹시나 불구인 자신을 닮을까 두려워하여서 입니다. 불구인 자기를 닮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모정인 거죠.
‘시인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이라는 시에서도 서해의 어부에게 잡혀 간장게장으로 담겨지기 직전의 꽃게는, 차곡차곡 잠긴 저장용기 속으로 시커먼 간장이 부어져 내려오자 어미 게가 어린 새끼 꽃게들에게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하며 죽음앞에서도 자식을 다독거리는 모습에서 지극한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의 반어가 미움이라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미움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런지요...
영화 《사도》로 인하여, 완벽하게 물이 찬 ‘감독 이준익’은 최고의 감독 반열의 자리가 당연하게 되었으며 ‘송강호’가 왜 최고의 배우인가를 다시 한 번 더 입증한 영화였으며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얼치기가 아니라 진정한 스타임을 증명한 바야흐로 지금부터 반짝거리는 신성으로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확실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준 최고의 시대극입니다.
특히, 신성 ‘유아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 《베테랑》만으로는 '유아인'이 누구인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연기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신성 '유아인'의 필모그라피에 자랑스럽게 올릴 영화가 된 것입니다. 나어린 젊은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실체속에 아무도 모르는 뜨거운 한(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져도 일으키는 명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준익 감독’으로 말미암아 향후 100년간 사도세자 언저리의 영화는 어떤 감독도 건드릴 수 없는 역사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열어주며 잔칫상 앞에 서서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재롱 한 번 부려보지 못했으니 그 춤을 보여주겠다며 천천히 선무(禪舞)같은 춤을 보여주는 한 많은 군왕 정조대왕(소지섭) 그리고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는 한 많은 일생을 살아 온 혜경궁 홍씨에서 나는 참았던 눈물 끝에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자제하느라고 가장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좋은 영화는 두 번 세 번을 거푸 즐겨보는 나에게 그런 영화가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음입니다. 마침 이번 추석 연휴, 어느 조조시간이거나 밤늦은 심야시간에 한 편 잔잔하게 즐김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영화 《사도》의 주인공이었던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홍씨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의 능이 수원에 가까운 화성에 있습니다. 이름하여 융/건릉인데..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된 융릉과 조선 22대 임금 정조대왕과 부인 효의왕후 김씨가 합장된 건릉을 일컫는 말입니다. 참혹한 역사를 갖고있기는 하지만, 융릉과 건릉은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융/건릉은 ‘화성팔경’ 중 제 1경으로 꼽힐 만큼 자연이 수려하고 조용하여 그 풍광을 즐기려는 식자들의 은밀한 탐방지입니다. 사도세자의 무덤이 왕의 무덤을 일컫는 '능'(陵)이라 불린 건 고종 때이며, 사후 서울 휘경동 인근에 묻혀 '수은묘'라 불렸고 이후 경기도 양주로 옮겼다가 다시 화성으로 옮겨졌습니다.
‘융릉(隆陵)’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조(莊祖, 1735~1762)와 혜경궁으로 알려진 헌경황후 홍씨(獻敬皇后 洪氏, 1735~1815)의 합장릉이며, 정조대왕께서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는 것)하셨으며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지극한 효성이 빚어낸 작품입니다. ‘건릉(健陵)’은 정조대왕과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입니다. 융릉에서 15분 남짓의 거리인 한 울타리에 있으며, 효심이 지극한 바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곁에 묻히고저 한 바램처럼 건릉은 융릉과 닮아 있습니다. 봉분을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 둘러싼 것 외에는 규모와 형식이 융릉과 매우 흡사하여 얼핏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그늘을 자랑하며 조용하고 고즈넉하였으나 영화 《사도》의 일진광풍(?)이 지나가면, 다시 본래의 조용한 은자(隱者)들의 휴식처로 돌아올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