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어느 봄날 오후, 할머니 세 분이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충주 할매 : 저 뭐시냐, 그 예수~라꼬 허는 사람이 대체 누구랴?
밀양 할매 : 으응~ 내가 들은 적이 있는데, 뭐 대못에 찔려 죽었다등가 허는 그 냥반 아녀...??
군산 할매 : 그럼 그렇지.. 맨발벗고 돌아댕긴달 때 내 그럴 중 알았다니께...!!
다시 충주 할매 : 츠암~, 이런 말을 해얄지 말아얄지 몰겄네 증말... 우리 며느리가 혼자 중얼거리며 허는 말로는 뭐 지땜에 죽었다꼬 그러던데??
밀양 할매 : 그랴? 아니, 내가 듣기로는 우리 며느리가 즈덜 방 벽에다 대고 병든 달구새끼마냥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버지~ 아버지~” 해싼는 거로 바서는, 우짜면 내하고 사둔관계인지도 몰겠더라고??
군산 할매 : 오모~ , 글타문 새칠로 말혀서.. 자네 사돈이 맨발로 쏘댕기다가 대못에 찔려 죽었다능 거시기 긍게 그 예수가 맞다 이 말이여???
우리 시대 베스트 필모그래피의 거장 감독 앞에서는 ‘수퍼 히어로’도 한낱 평범한 사내일 뿐이다. 명감독 마틴 스콜세이지(75)와 멜 깁슨(60)은 가면을 쓰고 빌딩 숲을 날아다니던 앤드루 가필드(34)를 이 땅에 발 디디고 사는 보통 사람으로 변신시켰다. 가필드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시리즈를 거치면서 수퍼 히어로의 아이콘이 된 젊은이들의 우상과 같은 존재이다.
영화 〈사일런스〉와 〈핵소 고지〉는 두 명의 명감독과 한 명의 주연배우 앤드루 가필드가 만났다는 것 외에 매력적인 소재의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었으며 한 인간의 종교와 신념을 관찰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이지만, 두 감독이 영화를 다루는 방식은 완전 다르다. 스콜세이지 감독의 〈사일런스〉가 진지하고 묵직하다면,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는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며 끓는다.
스콜세이지 감독의 〈사일런스〉는 ‘인간이 처한 고난의 순간에 신은 진정 어디에 계신가?’라는 종교적 딜레마를 아프게 긁어댄다. 가톨릭의 박해가 극에 달한 17세기의 일본에서, 실종된 스승(리암 니슨 분)을 찾아 일본에 이른 로드리게스(가필드 분) 신부는 선교 활동을 하다 막부 정권에 붙잡힌다. 예수를 새긴 목판화를 밟고 배교(背敎)하라는 강요를 받지만, 신부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일본인 신자들이 고문과 학살을 당하는 참혹한 광경 앞에서 신부는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지만, 신은 침묵으로 일관한 채 응답이 없다. 스콜세이지 감독은 종교인이자 동시에 한 인간인 로드리게스 신부가 종교적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 외통수의 거친 소용돌이에 처한 처절한 그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집요한 시선으로 잔인할 지경으로 추격해 낸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그들이 종교인이었지만 그들 또한 땅을 밟고 사는 인간이었음을 묵묵히 보여준다.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일본의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A급영화라고는 할 수 없는 갱스터영화로 명성을 쌓은 스콜세이지 감독은 여러 차례 “나의 최종 목표는 『침묵』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린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을 제작한 이후, 30여년 만에 고대하던 꿈을 이룬 노감독은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묻고 싶었다.”며 소회를 털어놨다.
멜 깁슨 감독의 활화산과도 같은 전쟁영화 〈핵소 고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오키나와의 전장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미국의 전쟁 영웅 위생병 데즈먼드 T. 도스의 실화를 화면으로 옮겼다. 예수의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를 신조로 살아가는 예수재림교회의 신도 도스(가필드 분)는 양심적 집총 거부자다. 그는 자진 입대하였으나, 모진 핍박과 왕따의 외로움 속에서도 결코 총을 잡지 않고 훈련을 마친다. 군사재판 결과, 의무병이 된 도스는 핵소 고지(일본 오키나와)의 전장에 투입된다.
영화 〈사일런스〉의 신부들과 마찬가지로 〈핵소 고지〉의 도스 역시 종교적 시험이 거듭된다. 그는 집총을 거부해 휴가를 못 가고, 장교로부터 “적이 전우를 죽이면 어떻게 할 건데, 성경으로 적을 때릴 텐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전장에 투입된 뒤엔, 무기 없이 적에게 포위돼 최후를 맞는 악몽마져 꾼다.
영화 〈핵소 고지〉는 귀청을 찢을 듯 울리는 포성과 총성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의 신념에 주목하는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참으로 각별하다. 멜 깁슨은 영웅을 전쟁터로 소환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도스가 신념을 굳혀 가는 과정을 영화 절반을 할애해 보여준다. 부분적인 종교적 이유와 독자적인 불굴의 신념과 철학이 그날의 기적을 만든 것이다.
마지막 전투 도중 자신이 부축하던 부상병이 사망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도스는 “주님,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지만, 주님의 구원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타인의 생명을 구한 도스의 결연한 희생정신은 지극히 순수한 인간애라 아니할 수 없다.
더러 혹자는, 이러한 장면에서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거나 주님의 은총을 떠올렸다는데 그것은 오히려 친절한 사람 데즈먼드 도스의 순수한 인간애를 예수라는 오래된 성인에게 공을 돌리려는 어불성설이요 자기 논에 물대기라는 아전인수이며 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데즈몬드 도스는 신실한 종교적 감화로 인하여 엄청난 선행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영화에서 나온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일 뻔 했던 죄의식 탓과 더불어 어린 시절 형과 싸우다 벽돌로 형의 머리를 때려죽일 뻔 했던 일에 대한 반성과 그 두 사건에 대한 충격의 탓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융단폭격에도 본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어 ‘천황의 신민’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일본군과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그 보다는 순수한 인간애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려는 데즈몬드 도스는 지극히 대조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간의 신념과 삶의 목표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일본이 저지른 태평양 전쟁에서 팔과 다리에 중상을 입고 결핵까지 앓게 된 데스몬드 도스는 종전 후 1급 장애 병사 판정을 받았으며, 5년의 치료과정에서 갈비뼈 다섯 개와 폐의 한쪽을 잃는다. 미국의 조지아주에서 평범한 농부로 살던 도스는 20여년 뒤인 1966년, 보이스카우트 소년들과 인솔 교사가 동굴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하자 동료들과 함께 유독가스가 가득 찬 동굴에서 일곱 명의 어린이와 어른 한 명을 구조해내는 기적으로 다시 한 번 더 우리를 감동시킨다.
***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출판/ 드라마 등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작품 제안이 있었지만 도스는 유명세보다는 조용한 삶을 소망하였으며, 2006년 87세로 세상과 결별하기 직전에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는 데 동의하였다는 거다. 신앙보다 더 치열한 인간승리라고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