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 만큼 나이를 먹는다

《타르(TAR)》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초 여성 지휘자이며 이 영화에 주어진 가상 주인공의 이름이며 영화의 제목이다.
《타르(TAR)》는 또한 제95회(2023년) ‘아카데미’ 6개 부문 노미네이트/ 제80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의 명작으로 주연 ‘케이트 블란쳇’의 명품 연기가 볼만하다.
“오케스트라”는 대략의 경우 ‘교향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주하는 장면은 때때로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로 비유하기도 한다. 한 명의 지휘자와 여러 연주자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노력하며 조율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회상과 닮아있다는 거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기기 위해서도 소속된 연주자의 자리 배치를 참고해야 하는데, 각 연주자의 자리 배치는 “오케스트라”의 이상적인 음향을 위한 형태이다.
일반적으로는 소리가 작고 움직임이 많은 현악기를 지휘자 앞의 전면에 배치하고, 소리가 부드러운 목관악기 그리고 소리가 강한 금관악기/ 타악기의 순서대로 둥글게 배치한다.
그 중앙에는 지휘자가 그리고 각 연주자의 위치는 그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차등의 서열을 갖춘다. 같은 악기군 내에서도 서열이 높은 연주자가 지휘자와 더 가깝게 배치된다. 그리하여, “오케스트라”의 구조는 완벽을 추구하는 음향의 하모니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오케스트라”는 구조적으로 권력의 엄격한 피라미드를 형성한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여기에는 지휘자가 음악만을 위한 지휘봉 대신 개인적인 욕망의 카리스마를 손에 쥐게 될 때는 한 명의 지휘자에게 간단하게 장악될 수 있는 커다란 취약성이 내재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타르(TAR)》는 ‘토드 필드(Todd Field)’ 감독의 2022년 작품이며, 얼핏 음악과 예술 그리고 동성애에 관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살펴보면 음악과 예술로 설명하는 권력의 폭력에 대한 영화로 읽어진다. 아니,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곡절 많은 인생 삶에 대한 영화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주인공 ‘리디아 타르’가 민속음악 학자이자 작곡가로서 인생의 목표인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최초의 젊은 여성 지휘자의 권좌에 오르면서 그 지위에서 얻어진 권력의 왜곡된 욕망으로 인하여 몰락해 가는 과정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준다.
영화 《타르(TAR)》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제5번’이다. 불혹을 넘긴 ‘말러’가 새로운 기악 교향곡의 첫 작품인 ‘교향곡 제5번’에서 고도로 다양하고 세련된 작곡기법을 구사함과 동시에 전통적인 교향곡의 구성을 살짝 비틀어 특유의 음악적 풍자와 냉소를 좀 더 세련되도록 보여준다.
영화에서 지휘자 ‘리디아 타르’는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을 녹음하여 전무후무한 역사를 결국 이루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우며 우아하고 기품있게 슬픈 그 ‘교향곡 제5번’은 부분부분 영화의 전편을 끌고 가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이다.
‘토드 필드’ 감독은 말합니다. “권력이 부패했더라도 인간 타르마저 완전히 부패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는 결말을 말해주지 않고 결말을 열어둔 채 우리에게 해답을 선택하고 관찰하도록 권유한다.
영화 《타르(TAR)》를 보면서 미국의 여성 지휘자인 ‘마린 알솝(Marin Alsop - 우리에겐 《2022년,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으로 우승한 ’임윤찬‘을 협주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임윤찬‘의 손을 높이 들어주고 감격적으로 포옹해 준 여성 지휘자)’이 떠오르지만, 커밍아웃을 선언한 그녀가 반드시 영화의 모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영화 《타르(TAR)》는, ‘케이트 블란쳇’을 위한 ‘블란쳇’에 의한 ‘블란쳇’의 영화이다. 그녀의 필생의 역작이 과언이 아니며 ‘케이트 블란쳇’의 미친 듯한 광기의 연기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와 ‘교향곡 제5번’을 이야기하면서 ‘알마 쉰들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말러’는 작곡가 지망생인 19살 어린 ‘알마 쉰들러’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제5번의 ‘아다지에토’를 작곡하고 보여주며 기쁘게 결혼하게 되지만 그 사랑의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현재 우리의 안목으로 보는 ‘알마’ 그 여자의 얼굴로는, 그닥 예쁘다고 아름답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평범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숱한 천재들을 물팍 꿇리고 사랑을 베풀었던(?) 그래서 최종적인 이름이 ‘알마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첼(1879~1964)’이었던(3명 말고, 실제로는 최소한 서너명 정도는 더 연결해야만 맞다고 보는데) 교활한 탕녀이다. ‘말러’가 하늘에서 통곡했다고 본다. 그래서 참~, 사랑은 묘하여 알 수 없다고 하겠다.
“‘말러’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는 그는, ‘교향곡 제5번’에 어떠한 표제도 없지만 슬픔 가득한 장송행진곡으로 출발하여 밝고 경쾌한 5악장까지 마무리하여 죽음의 위기와 결혼의 행복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비극적인 음악에서 환희의 음악으로 마무리되는 전개 방식은, ‘어둠에서 광명까지’ 향하는 독일 교향곡의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말러’는 ‘교향곡 제5번’ 여러 군데에 본인의 가곡에서 따온 선율을 암시하며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루키노 비스콘티’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가 1971년에 제작한 작품으로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있다. ‘구스타프 말러’가 실제의 모델이며, ‘구스타프’라는 죽음을 앞둔 어떤 작곡가가 ‘베니스’의 ‘리도’라는 섬에서 휴양을 와서 우연히 ‘타지오’라는 미소년의 모습에 매료되어 이렇게 저렇게 극을 이끌어간다.
10대 미소년 ‘타지오’와 노년에 접어든 자신을 견주어 보면서, 인간은 육체의 소중함을 아는 때가 육체가 쇠락하기 시작했을 때이며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때는 죽음에 이르러서다. 결국 이 영화는 삶과 육체에 대한 너무 늦은 깨달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죽음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전편을 이끌어 가며, 이 영화를 통하여 실제 클래식 마니아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는 계기가 된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탐미주의 3부작’ 또는 ‘죽음의 3부작’ 중 한 편으로 불린다.
감독 ‘비스콘티’는 죽기 전까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겼는데,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자전적인 이야기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으며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우리는 딱 느끼는 만큼 나이를 먹는답니다.”라고 말한 뒤 이발사는 구스타프의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고 얼굴은 하얀 분칠을 하며 빨간 립스틱을 발라준다. 그 얼굴은 분장한 ‘가부끼’ 배우의 얼굴과도 같다. ‘타지오’의 바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구스타프’는 의자에 앉은 채 숨을 거두며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말러’의 ‘교향곡 5번’이 흐른다.
‘구스타프’의 독백: “아버지 집에도 저런 모래시계가 있었어. 처음에는 모래가 빠져나가는 구멍이 너무 작아서 위쪽에 든 모래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모래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때는 오직 마지막뿐이야. 그때까지는 생각할 가치가 없지.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그때가 되면 더 이상 시간이 없어.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은 거야.”
거장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Adagietto)’가 삽입된 영화에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있다.
영화는 산에서 벌어진 변사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추락 사망한 자의 아내이자 용의자인 ‘서래(탕웨이)’와 만난 후 짙어지는 의심과 깊어가는 관심을 느끼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부터 듣기 시작하면 4악장이 끝나갈 무렵 산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5악장을 듣고 내려온다.”는 사내는 산 정상에 다가가는 동안 4악장을 들으며 황홀경을 느낀 직후 ‘서래’의 남편은 정상에서 추락하게 된다.
따라서, ‘4악장 아다지에토’는 카타르시스인 동시에 죽음을 의미를 나타낸다고 하겠으며 ‘아다지에토’는 〈‘아다지오’보다는 다소 덜 느리게〉라는 의미이며 ‘4악장’은 ‘아디지에토 악장’이라고도 불린다.
‘아디지에토 악장’은 관악기 없이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특징이 있으며 사랑의 다양한 감정인 달달한 맛 쌉쌀한 맛 매운 맛 슬픔 등을 리드미컬하게 현의 긴장감과 풍성함으로 사랑의 줄다리기와도 같이 표현하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기존 영화에서도 클래식 곡을 종종 삽입하여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여러 장면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삽입되어 ’말러리안(Mahlerian/ ‘말러’의 음악에 심취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후반부에 ’서래‘가 말하는 “당신이 나를 사랑 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나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라는 말은, 여자가 말하는 사랑의 결심이 어떠한가를 의미심장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4악장 아다지에토‘는 2014년 ’코오롱 스포츠‘의 ’안타티카‘ 브랜드의 겨울 패딩 광고 음악으로 나왔으며, 더 오래전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 때에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도 연주하였다.
생각해 보면, 나이 들어가면서 만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종일토록 들어도 싫증 나지 않는 이렇게 저렇게 늙어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훌륭한 음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