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春 夢

Led Zepplin 2007. 8. 14. 01:00

  K형!

이루어 놓은 일 이라고는 悔恨속에서 술잔만 비워 소주 값만 올려놓은 것밖엔 없거늘,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가고 또, 새 봄이 다가옵니다 그려.

또 다른 봄을 맞이하는 이 무렵엔 항상 핑계 삼아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되돌아 본 그 아쉬움과 그리움을 한 잔의 술 잔속에 털어 버리고 싶기 때문 아닐런지요.

 

K형! 

한 잔의 소주를 앞에 따뤄 놓고, 지난 시절의 노트를 펼쳐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읊조려 봅니다.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 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 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도 같이

짓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어 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


기억하시겠지요. 김규동 선생의 送年입니다.

부끄럽게도 創批에 도전하던 무렵, 先生의 詩 나비와 광장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며 신촌의 뒷골목 술집들을 헤매고 몰려다니다가 기어이 새벽에는 전봇대를 붙안고 행님 행님하며 울부짖던 그 시절... 그 겨울의 날은 차가웠고 달은 역시 아직도, 지금처럼 높다랗게 시리도아름다웠습니다.


  술잔을 앞에 놓고, 이렇게 앉아 있는 오늘 같은 밤이면 또 떠오르는 漢詩가 있습니다.

旅館寒燈獨不眠 : 여관 차가운 등불 아래 홀로 잠 못 이루고

客心何事轉凄然 : 나그네 속마음 무슨 일로 이리도 처절한가

故鄕今夜思千里 : 고향서도 오늘밤 먼 곳의 나를 생각하리니

霜鬢明朝又一年 : 서리 같은 흰 머리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고적(高適;707-765)선생의  제야음(除夜吟)입니다. 만리타향 해외의 客窓에서 송년의 달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달래야만 했던, 우리 비록 지금은 박제가 된 맹수처럼 초라해 졌지만  빛나고 아름답던 청춘의 시절들은 가끔 떠올라 그 눈부셨던 섬광이 통증처럼 단말마적으로  되살아나곤 하더이다.


K형. 

"우리 部族에게 이 大地의 모든 部分은 다같이 神聖하다.

모든 언덕, 모든 골짜기, 모든 平原과 숲이 이미 사라져 버린 날들의 슬프고 幸福했던 事件

들로 아로새겨져 있다. 最後의 붉은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얼굴 흰 사람들에게 우리 部族의

追憶은 하나의 神話로 남을 것이다."------ American Indian 스쿼미시族 시애틀 추장.


  하나의 神話로 남은 追憶을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이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마는.. 이 봄엔 유난히도 더욱 그립습니다...

새로운 世紀와 더불어, 神聖한 溪谷과 봉우리와 숲에서 �겨 갔던 純粹한 精靈과 피로 물들기 전의 天地의 神靈한 氣運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지난 世紀末에 만난 老子와 莊子는 제 삶에 새삼 새로운 慰安입니다.


物神이 떠나간 天地에서 붉은/ 하얀/ 까만 사람이 和睦하게 어울려 춤을 추며 노래할 수 있는 날이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EGYPT 王子로 映畵化한 모세의 神話보다 卒本夫餘를 建國한 해모수와 名詞로서 尊敬받는 神(GOD)이 아닌 形容詞로서의 神(하느님)을 �아 낸 최해월 先生과 컴퓨터의 帝王 빌 게이츠 보다는 숲을 노래한 쏘로우를 더 尊敬하며, 무슨 말인지 洋人들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며 만들어 낸 포스트모더니즘 보다는 부디즘에서 새로운 철학을 발견해 내고저 하며, 疫神마져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처용의 浪漫에 共感하며, 卵生說話를 꾸미며 새로운 秩序를 꿈꾸던 祖들의 純眞함을 사랑하며, 國民學校를 卒業하고 두 평 書店을 運營하는 사람의 삶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와서 비디오방 하는 사람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永遠이라는 時間 槪念속에서 담배 피우고 30년 살다 죽은 사람의 삶이 담배 안 피우고 100년 사는 사람보다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는 왜냐하면, 담배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짧은 人生의 貴한 慰安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이야기한 (深淵)을 즐겁게 맞이하기 위한 삶으로써 부여된 내 人生을 (不幸 中 多幸)이라고 感謝하며 이 아름다운 봄이 지나간 해와 하나도 다를 것 없을 뿐인 봄일지언정 새로운 느낌과 充溢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맞이하려고 합니다.


내내 健康하시길 빌며 이만 총총.


                               2007년 4월 25일 무렵   憔隱堂 AL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