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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密陽), 그 용서(容恕)와 구원(救援)

Led Zepplin 2007. 9. 5. 01:31

 

 

  카톨릭 신부와 유태교의 랍비가 서로 야유 섞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신부가 먼저 말했다.

"내가 어젯밤에 가 본 유태인들의 천국은 왜 그리 더럽고 냄새가 나는지, 게다가 유태인들만 우글거리고 있더군요."

랍비도 질세라 말을 받았다.

"실망이 컸겠습니다... 사실은 나도 어젯밤에 카톨릭 신자들이 간다는 천국엘 가 보았죠... 참 훌륭했어요...

화창한 날씨와 잘 가꿔진 깨끗한 곳에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고,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표류당한 두 사람이 구명보트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한 바다뿐이었다.

한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다.

"신이시여, 만약 저를 구해 주신다면 저의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오히려 풍랑만 더 심할 뿐이었다.

"오, 신이시여,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제 재산의 3분의 2를 신에게 바치겠습니다."

다시 아침이 되어도 구원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하나님, 제발 저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제 목숨을 구해만 주신다면 저의 재산... "

그 때,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이봐~ 거래를 중단해, 저기 섬이 보인다!!! "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영화 ‘밀양’은 우리 시대의 뛰어난 작가 이청준의 유괴와 살인이라는 소재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며 2년 간격으로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를 발표한 깐느가 주목하는 뛰어난 영화감독 이창동이...

인간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인간의 존엄 질문을 던진 수작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깐느 영화제 60회 기념으로 세계적인 영화지 버라이어티가 영화제의 미래를 약속하는 핵심인물 60인’ 선정 발표했는데...

한국의 배우로서는 유쾌하게도 <밀양>의 전도연, 송강호가 독보적으로 언급되었다는 점도 반갑다.


영화는 맑고 청명한 하늘을 보여 주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온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가 아이와 함께 살면서...

“나, 불행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얼굴은, 애처롭게도 불행해 보인다.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하지만, 신애의 속마음은 애매모호하다. 남편은 죽기 전에 이미 그녀를 버린 듯 보이지만...

신애는 인정하기 싫다. 신애가 밀양으로 내려온 이유도, 부부가 결코 돌아선 사이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려던 것일 런지도 모른다.

최소한 스스로에게 만이라도...

그런 유치한 위안만으로도 살아가려고 하는 신애에게, 신(神)은 가혹하게도 유괴와 살해라는 틀을 만들어 아이까지 뺏어간다.

그래서 그렇게 울 기운마져도 없었던 신애는 고통속에서 헤매던 어느 날 환자가 병원을 찾듯... 배고픈 자가 식탁에 이끌리듯...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대성통곡하며 마음의 끈 / 빗장을 열고 이후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슬픔과 절망조차도 신(神)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신애는 종교 생활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평온해지기 위해선 아이의 유괴범을 용서해야만 했던 거다.

신애는 유괴범을 직접 만나고 용서를 하겠다면서 숭고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면회를 간다.

그러나, 유치장에서는 이미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용서받은 유괴범을 만나게 된다.

과거를 뉘우치긴 하지만, 황당하게도 이미 신(神)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받고 지극히 평온해진 유괴범을 만나게 된다는 거다.

신애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신이 그 유괴범을 용서하는 의식 그 자체인 거다.

자신이 웬수를 용서할 정도로 마음을 정리했고 신(神)의 뜻인즉슨 용서럴 받아들였음을, 자신의 스스로의 마음속에 각인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신은 자신과 상의 한 마디 없이 가장 고통 받았던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신이 먼저 본인의 웬수를 용서했음에 대하여...

완강한 원초적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째서 유괴범이 저토록 평온할 수 있단 말인가?"

신애는 유괴범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비판한다.

어째서 나와 상의하지도 않은 채 나에게 고통을 준 악인의 모든 것은 용서하고 독단적으로 천국을 약속할 수 있는지를...

신애는 그 신에게 저항한다. 저항의 방법으로 물건을 훔치고, 장로의 남편도 유혹하고, 자해까지도 자행 한다.

신애는 이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정말로 자신을... 우리 인간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를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는 거다.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스스로 침몰해 간다.


이창동은 영화에서 종교적 용서(容恕)와 구원(救援)에 대하여, 물고 늘어지며 이야기한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고통은 찾아온다. 고통은 싸워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고 참아내야만 하는 거다.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거나 신이나 종교에 의지한다고 해서 고통과 절망이 사라질 수도 없는 거다.

거기에는 뭔가 우리 삶의 숨은 그림 같은 비밀이 있다는 거다.

"고통(苦痛)은 누구에게 치유 받을 수 있으며, 구원(救援)은 어디로 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이창동 감독은 깐느에서 진지한 자세로 “나는 종교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눈부신 하늘의 햇살로 시작한 영화가 농약 병이 뒹구는 마당 한 모퉁이의 누추하고 지저분한 땅을 비추는 장면으로 끝난 것에 대해서도...

우리 인간의 의미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의 땅에 있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반기독교적인 안목"을 갖고 있다 라기보다는, 인간이란 존재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 와는 상관없이...

결국 인간 자신들에게서 힘을 얻어야존재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며 끊임없이 자라나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희망조차도 신의 손길이 아니라...

결국 우리 곁의 누군가가 거울을 들어 보여줄 때... 그러한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잘라낼 수도 키워갈 수도 있다는 거다.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놓친 것은 안타깝다.

기독교도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좀 더 노골적으로 집요하게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물고 늘어 졌더라면...

상업 영화이기를 포기할 수 없음이라면 왜 그토록 지루하도록 길게 끌고 갔는지...

시대의 절망을 더 세밀하고 리얼하게 직설적으로 이끌어 내거나 진지하고 날카롭게 풍자로 표현되지 못한 결핍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밀양’이란, 실재하는 소도시이지만 종찬(^^*...송강호 분)의 말처럼 어느 곳이건 다 밀양이며 동시에 인생(人生)의 밀의(密意)에 대한 은유로 작용했다.

이창동은밀양(密陽) 으로 빛이 무엇인지를, 그 빛을 어떻게 찾아 가야 하는지를...

마지막 장면에서 숭고하다는(?) 하늘이 아닌 바로 내 곁의 누추한(!) 땅과 우리 인간들에게서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을...

한 인간이 맛 볼 수 있는 최대한의 아픔(고통)과 함께 지긋한 화면으로 따스하게 보여 주고 있는 거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당신은 그냥 그 곳에 머물러 계시옵소서

우리도 이 헐벗은 땅에 머물러 살겠나이다.

 

땅은 때때로 이토록 아름다우니

뉴욕의 신비와

파리의 신비가 있어

삼위일체의 신비보다 못하지 아니 하오며

우르끄의 작은 운하

중국의 만리장성

모를레의 강

깡브레의 박하사탕이 있는가 하면

태평양

뛸르리 공원의 두 분수

착한 아이들과 못된 신하도 있사옵나이다.

 

이 세상의 온갖 신기한 것들과 함께

그것들은

그냥 이 땅 위에 널려 있어

스스로가 신기한 존재임을 놀라워 하지만

정작 스스로의 신기로움을 모르나이다.

알몸의 처녀가

제 아름다운 알몸을 드러내지 못하듯이

이 세상의

그 흔한 끔찍한 불행들은

그들의 용병

그들의 고문자들

이 세상의 두목들과 함께 있사오며

그 두목들은 그들의 사제 그들의 배신자

그들의 용병과 함께 하옵고

사계절과

해(年)와 함께

아름다운 처녀들 늙은 병신들

대포의 강철 속에서 썩어가는

비참한 지푸라기도 있사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당신은 그냥 그 곳에 머물러 계시옵소서

그러면, 우리도 이 땅에 남아 살겠나이다.


                                                 -----   쟈크 프레베르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