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 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 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니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영화 '박하사탕'을 촬영했던 군산의 나룻터 그 자리... 장항을 오가던 연락선들은 별빛에 잠들고...
내 찾아왔다, 밤바다
세상일이 온통 지우고 싶은 파일(file)일 때
세상 크트머릴 지지는
물소리를 찾아왔다.
이 세상은 그저 숨쉬기엔 너무 갑갑한 곳
흐린 밤이면 섬도 어화(漁火)도 물소리 밖으로 나간다.
----------- 황동규의 '밤바다' 중에서
가을날 비올롱을 이야기하기에는 잎이 아직 푸르다...
그보다는, 일제가 자신들의 휴식 공간으로 영원히 즐길 요량으로 만들어 놓은 군산의 '월명공원'
공원의 정상 수시탑을 오르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멘트 계단은, 그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이렇게 굳건하다니...
'수시탑'에 오르니... 멀리 장항의 갯벌과 고깃배가 그림처럼 고즈넉하게 누워있고...
떠나는 청춘이 아쉽고, 다시 지나가는 여름이 서글퍼서 수시탑에서 바라보는 꽃은 더 아름답다...
개발되어 산업화하여 예전만 못해도... 군산에서 건너다 보는 장항은 아직도 따사롭고 안온해 보인다...
집에서보다는
길에서 가고 싶다.
톨스토이처럼 한겨울 오후 여든 두 살 몸에 배낭 메고
양편에 침엽수들 눈을 쓰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눈
길을
(중략)
.......
예수도 미륵도 매운탕집도 없는 시간 속을
캄캄해질 때까지 마냥 걸어.
황톳길은 언제 봐도 정겹다...
어린 시절, 집 마당에서 휘돌아치던 여인네들의 춤사위와 요란스런 풍물소리도 들리는 듯 하고...
시골 작은 집 마당 동네 어르신들의 복을 비는 사물놀이의 왁자함도 떠오르고...
황톳길에는, 지리산을 내달리던 생부의 말발굽 소리도 들리는 듯...
새 나라는 자본과 자유라던 아버지의 장터 유세 마이크 소리 금속음이 들리는 듯...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 새재는 웬 고개인고
구비야 구비구비가 눈물이 난다
............
가버렸네 가버렸어 정들었던 내사랑
기러기떼 따라서 아주 가 버렸네
저기 가는 저 기럭아 말을 물어보자
우리네 갈 길이 어드메뇨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노다 가세 노다나 가세
저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춥냐 더웁냐 내 품안으로 들어라
베개가 높고 야차믄 내 팔을 비어라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어기 여차 어야 디어라 노를 저어라
*** 시절의 아픔 그리고, 삶의 고달픔조차도 이제 다 잊고...
황톳길 한복판에서 그저 어깨춤으로 덩실덩실 맺힌 한을 풀었으면 할 따름...
여행으로 이 여름은 그 마지막을 고하고...(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