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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년만의 외출

Led Zepplin 2007. 11. 2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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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4월, 경북 안동시 정상동의 택지 개발 사업 지구의 토지 개발 작업 도중에...

고성 이씨 이응태(1556~1586)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관 속에는, 출토 당시 한지에 곱게 싸인 미투리 한 짝과 정성스럽게 씌어진 한글 편지 한 통이 발견되었던 거다.

 

미투리는 마(麻)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짚신형 신발, 즉 마혜(麻鞋)이며 길이 23㎝, 볼 너비 9㎝가량이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는데... 죽은 남편을 위해 아내가 머리카락으로 짠 사실이 드러났던 거다.

함께 출토된 한글 편지를 쓴 사람은 이응태의 부인인 ‘원이 엄마’로 밝혀졌으며...

1586년 6월 1일... 가로 58.5㎝, 세로 34㎝의 한지에 한글로 쓴 편지로서...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환이 깊어지자 삼 껍질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신)를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기원했으나...

남편 이응태는 30세의 나이에 끝내 숨지고 말았던 거다.

 

무덤 속에서는 이응태의 형이 쓴 한시 '울면서 동생을 보낸다(泣訣舍弟)' 등의 글과 이불. 버선. 옷 등 모두 130점이 발굴됐으며...

현재 안동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실로 4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조선 시대의 한 여인이 남편의 죽음을 애도해 쓴 글로써, 남편과의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시공을 초월한 그 녀의 애틋한 사랑은 과연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바 눈물읎이는 읽을 수 없다고 하겠다.

 

420년의 세월을 뛰어 넘고 이 퇴폐의 시대에 전설처럼 부활한...

‘원이 엄마’의 애절한 러브 스토리는, 소설/ 오페라/ 현대 무용/ 국악가요/ 동상 건립/ 음악회 등의 이름으로...

‘420년만의 외출’ ‘능소화’ ‘원이 아버지에게’ 등으로 아름답게 이 시대에 재탄생하고 있는 거다.

또한, ‘원이 엄마’의 편지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 편지를 구입하고 있으며, 기업체의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어서...

안동한지(안동시 풍산읍)는 2000년부터 이 편지를 한지에 인쇄하여 판매하고 있고...

㈜안동간고등어(고등어중 제가 가장 즐기는 브랜드^^..)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상품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편지의 축소본을 보내 주고 있다는 거다.

또한, 118년 전통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잡지로써...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도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한 켤레를 주목했는데...

안동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의 사진과 사연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에도 실려...

조그만 한 한국 여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전 지구인의 심금을 애절하도록 울리고 있다는 거다.

 

삼가 애틋한 그 녀의 편지 전문을 옮긴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삼가 그 녀의 명복을 간절히 빕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