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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스타 이영애, 다시보는 "친절한 금자씨"

Led Zepplin 2008. 2. 16. 20:43

 

 

   주변 사람들로 부터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의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금자(이영애)‘는 스무 살의 나이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된다. 어린 나이이지만, 너무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검거되는 그 순간에도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 세례를 받게된다.


   내가 여자 아나운서 중에 제일 좋아 하는 음성 김세원씨의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금자(이영애)는 ‘동부이촌동 박원모 어린이 유괴사건’의 용의자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다. 그녀 나이 꽃다운 스무 살 때.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기에 너무 어린 그녀의 나이에 놀랐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또 한번 놀라는거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순순히 자백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던거다.

금자씨, 그녀는 천사인가 아님 악마의 탈을 쓴 인간인가...

(다시 말해, 인간은 천사인가 악마인가...)

 

 

   13년 동안 경주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모범적인 수감 생활을 보내는 금자. '친절한 금자씨'라는 말도 교도소에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별명. 그녀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열심히 도와주며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무사히 마친다(마음속의 계획을 감춘 채).


  출소하는 순간, 그녀의 모범적인 수감 생활에 감동하여 그녀의 출소를 기다리던 목사님( 현대 사회에서 제대로 된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도덕 내지는 신앙)이 새출발을 축하하며, 감격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는 두부를 땅바닥에 툭 떨어트리며 금자는 목사에게 말한다... “너나 잘 하세요!!”라고( 이 장면은,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목사님이 설교하는 부흥회장에서 '거짓말이야'라는 김추자의 노래를 스피커로 크게 틀어놓는 장면과 매우 흡사한 의미라고 하겠다)... 그 녀가 지칭하는 너는, 바로 우리 모두임을...

금자는 그 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13년간의 복수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펼쳐 나간다.

그녀가 복수하려는 인물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백 선생(최민식).

교도소 생활 동안 그녀가 친절을 베풀며 도움을 주었던 동료들은 이제 다양한 방법으로 금자의 복수를 지원한다.

세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하고 인정을 베풀 가치조차 없는 백 선생에게 이제 복수를 시작하려 한다. 금자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었기에 금자는 결코 그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던거다.

13년 전, 금자의 아이를 볼모로 잡은 교활한 백 선생의 꾐에 빠져 유괴한 아이를 살해한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복역한 금자.. 그리고, 범인을 금자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업무를 간단하고 편리하게 진행했던 무책임한 경찰들(멍청하리만큼 뒤쳐진 개념없는 법과 규칙들)...

 

 ( 수족관을 배경으로 교복을 입은 금자의 모습은, 그녀가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임을 상징하고 있다..

어디 금자씨 뿐이겠나.. 우리 모두가 이미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인 것을... )

 

    금자씨는 출소 후, 교도소에서 배운 시궁창에서나 건져 올렸을 법한 재료들을 가지고 황제나 먹을 수 잇을 듯한 빵을 만들어 내는 제빵 기술을 이용하여 그녀의 실력에 탄복한 빵집에서 일하게 된다.

겉으로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욱 치밀한 복수를 준비하는 중.

드디어, 금자는 영어학원 선생으로 일하며 짱박혀 사는 백선생을 찾는데 성공한다.


   금자(이영애)를 복수의 화신으로 만든 백 선생(최민식)의 잘못은 이유가 없다. 백 선생은 그저 돈 때문에 --- 요트를 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 --- 아이를 납치하고 죽인다. 적당히 살을 찌워 출연한 백 선생(최민식 / 욕망으로 대변되는 명예와 물질등의 현대인의 표상)에겐 눈물이나 고뇌나 연민 주저함 따위가 없다.


   이영애가 연기하는 이금자는 어린 날 백 선생(최민식)의 꾐에 빠졌고, 한 어린이를 유괴·살인한 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에서 13년 세월을 보냈다. 백 선생에 대한 복수의 일념을 품은 그는 한쪽에서는 ‘친절한 금자씨’라 불리고, 다른 쪽에서는 ‘마녀 이금자’로 알려지는 이중적인 삶을 산다.

이중적인 금자.. 그건 바로 나를 지칭함이 아닐런지... 순수를 지향하나, 순수하지 못한 채 죄를 만들며 살아야만 하는 현대인...

<친절한 금자씨>는 또한, 국가와 법과 제도가 처벌하지 못한 악인과 관리들에게 우리가 취할 태도를 묻고 있는거다.

피해 당사자가 나라면, 백선생의 심장에 칼을 꽂을 것인가... 국가의 제도 또는 법이라는 우스꽝스러운 현대의 율법에게 맡겨 미루어도 되는 것인가...

개인적인 복수를 금기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질문은 위험천만한 것이겠지만, 특별한 의미는 있다고 하겠다.

왜냐면, 우리는 주변에서 수많은 유괴와 강탈, 방화 사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친절한 금자씨>는 그런 우리 스스로에 대한 조롱과 분노와 연민을 함께 보여 주는 부끄러운 영화인거다. 

 함께 포장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분노 그리고, 진한 페이소스가 뒤엉킨 탓에 <친절한 금자씨>는 제목 만큼의 친절한 영화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레이터는 무척 따뜻한 목소리로 어제와 오늘을 왕래하며 설명을 하고 있긴 한데... 막상 그 목소리를 듣는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건 현대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이 가장 웃기는 코미디로 변하는 걸 지켜봤을 때 느낀 혼란과 비슷한 것일 게다.

비극이 희극으로 유치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감독은 “받은 만큼 드릴게요”라고 답하는 게 아닐까.

박찬욱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순수와 결함없는 사회와 삶을 지향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일그러진 채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의 죄와 벌에 대하여 고뇌해야만 한다고... 우리 모두를 다시 돌이켜 봐야만 한다고...

스스로가 만든 하얀 케익에 얼굴을 묻은 채 질식으로 자살하는 금자씨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돌아 봐야만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거다.

박찬욱 감독과 금자씨에게 다시 한 번 새칠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