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Led Zepplin 2008. 3. 2. 21:48

 

  

 확률론을 체계화한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자신의 저서 ‘팡세(명상록)’에 재미있는 패러독스를 소개하고 있다.

독실한 카톨릭 가문에서 태어난 파스칼은,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 철학자로 칭송을 받게 되자 교만심에 빠져 교회를 멀리했다는 거다.

나이가 들어 중병이 걸리자 수도원에서 요양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거다. 천국과 지옥을 주장하는 교회의 교리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동전의 한 쪽 면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다.

교리를 믿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일의 경우에... 교리가 거짓이라면,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지만... 교리가 진실이라면,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또한, 교리를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교리가 거짓이더라도 손해 날 것은 없지만... 교리가 진실이라면, 그는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거다.

교리를 믿을 때의 이익은, 엄청난 반면에... 교리를 거부할 때의 손해 또한 무한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는...

미국 텍사스의 드넓은 모래 먼지가 휘날리는 황량한 벌판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슴 사냥에 몰두하던 주인공 모스(조쉬 브론린)는, 자신이 총으로 맞춘 사슴을 쫒다가... 총격전이 끝나고 시체가 즐비한 현장과 맞닥트리게 되는데...

그 피비린내나는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멕시코인과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물을 애타게 찾으며 죽어가는 남자와 200만불의 돈가방 사이에서 돈가방을 선택한 모스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래도 물을 애타게 찾던 그 남자가 눈에 밟혀, 새벽에 물통을 들고 그 사고의 현장엘 간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모스는 엄청난 총탄 사례와 자신을 뒤�는 추격자들과 마주치게 된다...

허겁지겁 일단 그 자리를 가까스로 모면은 했지만, 지금부터 영화는 끝없는 �고 �기는 자와의 긴장감있는 혈투가 연속된다...

 

어렵게 살아 왔기에 자신에게 찾아 온 행운을 절대 놓칠 수 없는 월남전에 두 번 참전의 경험이 있는 중년의 르롤린 모스...

자신의 동료마져 죽이며 돈가방을 찾으려는 냉혹한 살인 청부업자인 사이코패스 킬러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한 발 늦게 사고 현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발견하고 추격을 시작하는 관할 지역의 은퇴를 앞 둔 늙은 보안관인 톰 벨(토미 리 존스)의 추격전으로...

코엔 형제는 이야기하려는 거다...

영화는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 조연상/ 편집상/ 음향상/ 음향 편집상 등 주요 부문에 최다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 조연상까지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노인들은, 미쳐 날뛰고 있는 세상에 대하여 근심과 걱정을 하고 있으며 낯선 사람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사이코패스 안톤 쉬거는 이 노인들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주인공도 보안관도 사이코패스 청부업자도 노인들도 길을 지나가던 엑스트라도 모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는 현대인의 삶이란 이렇게 자신의 의지대로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현실을 아주 잔인한 블랙 유머로 보여주고 있는 거다.

 

살인마 안톤과 주유소의 노인이 벌이는 목숨을 담보로 한 동전 던지기 게임은...

가슴을 졸이는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시키는 장면은 코엔 형제의 전매특허인 거다.

광기 넘치는 안톤 쉬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금방 폭발할 것만 같은 폭력을 지연시키며,

긴장감을 배가시키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므로 웃어야 할 지 분노해야 할 지 판단을 내리기 힘든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현대의 사건 사고는 무척 지능적으로 변화하고 잔혹해지고 있는데,

코엔 형제는 노인이 과거와 비교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잔인무도한 범죄가 발생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따라서, 영화 후반부에는 살인 행위의 묘사 자체가 생략되며 관객의 상상에 맡긴 채, 살인의 의미를 곱씹으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보안관 벨은 영화의 말미에 두 가지의 꿈 이야기를 하는데, 인간이 희망과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암시하고 있는 거다.

 

영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인의 인간성과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는 엄청난 폭력 앞에 무기력 할 수밖에 없는 잔혹한 세상에 대한 코엔 형제의 한탄...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삶의 의외성과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 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키는 영화인 거다...

 

냉혹한 싸이코패스 킬러 역을 맡아 열연한 ‘하비에르 바르뎀(Javier Bardem)’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이토록 섬뜩해질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영화사상 가장 몸서리쳐지도록 잔인무도한 킬러 역을 소화해 냈는데...

돈 때문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에 원칙을 세워놓고 즐기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캐릭터이며...

무차별적인 총질과 냉혹한 분위기 / 재수없는 말투로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여 영화가 뛰어난 스릴러가 되게 하여준 일등 공신이라 하겠다.

게다가, 배경 음악과 효과음도 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는 주제가조차 들리지 않는다...

 

영화는 극도의 사실주의 영화이지만...

다른 스릴러 영화보다 훨씬 긴장감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코엔 브러더스의 내공을 느낄 수 있는 걸작 영화인 거다.

아쉬움이 있다면, 예전의 코엔 형제들이 보여줬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센스티브한 연출이 좀 무뎌져 보이는 것은 아쉬움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