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담배에 대하여

Led Zepplin 2008. 3. 16. 22:59

 

 

“야... ‘다바꼬 니뽕 구다사이’가 ‘담배 하나만 주라’가 맞냐?”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반일감정이라는 게 심각했다. 나는 그런 연유로 일어 강의시간을 싫어해서 그 시간에 미국의 팝뮤직 잡지(나는 고2때부터 디스크 플레이어를 거쳐 디스크 쟈키를 했다 --- 나두 젊어서는 잘 나갔다우...ㅎㅎ)를 봤으면 봤지 일본어 공부를 안했다.

그래도, 훗날 일본을 수도없이 들락거리며 연수/ 출장/ 업무협의차 다녔지만 일본어 못해서 애로사항은 없었다.

물론, 당연히 취직하면서 일본의 업체와 기술/ 자본이 합자된 회사이므로 일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어려서부터 남달리 한자를 배웠던 것도 큰 몫을 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이던가... 형이 공부를 잘 했는데, 고대를 원하는 과에 장학생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 재수를 했다.

그런데, 밥만 먹으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는 거였다.

하루는 내가 형에게 “형, 그게 피우면 맛있어?”하고 물었더니..형은“그럼..그걸 말이라고 하니...맛이 없으면 내가 이걸 돈 들여가면서 왜 피우겠니?”하는 거였다.

'맛 있다'는 말에 왈칵 호기심이 땡긴 나는, “그럼... 그거 내가 한번 피워 봐도 될까...?”하고 형에게 물었던 거다.

형은 대뜸, “그래? 그럼 한번 피워 볼래?” “어떻게 피우는 건데?” “응... 그건...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어떻게 하는거야... 알려 줘 봐” “응... 그래... 자... 담배를 받아... 잡았지?...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만 하면 돼... 알았지?” “알써.. 말해 봐” “자... 입에 물고... 쭈~~~~욱 빨어... 많이... 됐지?... 그리고... 그걸 꿀꺽 삼켜...”

꿀꺽 삼킨 나는 글자 그대로 ‘죽~~는 줄’ 알았던 거다... 눈앞에 잔별들이 수도없이 번쩍번쩍거리고 뱅글뱅글 도는게... 한강의 모래사장 --- 지금의 여의도 --- 에서 타 본적 있는 커다란 회전그네는 저리 가라는 거였다. 놀란 사촌 누나가 뛰어 들어 와서 물을 마셔 봐라... 꿀물을 타온다... 소금을 씹어 먹어 봐라... 만약, 우리 아버지가 이 광경을 봤다면, 형과 누나는 죽음이였던 거다. 사랑시런 만득자(늙어서 얻은 자식)럴 다 큰 것들이 꼬실려서 댐배를 피우게 해 아럴 쥑일려구 작정을 했냐... 물론, 형도 아버지가 출타중이기에 벌인 장난이였던 거다...

형이 담배만 피우면, 방에 달랑 따라 들어와서는 '구름을 만들어 봐라' '도너츠를 만들어 봐라'등 귀찮게 한 징벌이었던 거다... 허나, 나에게는 호되게 가혹한 징벌이었다.

그날 잠자리에서, 나는 하나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형처럼 저렇게 대학도 들어가기 전에 어른들에게 들킬까봐 조심스럽고 치사한 도둑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그리고, 저렇게 지독스런 것은 너무 폼이 멋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절대 대학 들어가기 전에는 안피운다는 거였다.

그때까지는 참아야 하느니라... 아암, 참고 참아야 하고말고... 소년은 잠자리에서  허벅지를 꼬집으며 결심을 하였던 거다.

중학 2학년이 되자, 주변 친구 녀석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혹의 손길이 많았으나, 소년은 의연하도록 자신과의 고달픈 싸움에 임했던 거였다.

그렇게 고3... 가련한 인간덜을 구출허실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생일 날 밤...

거룩한 성인의 생신을 축하코저 모인 우리 악동들은, 초저녁부터 걸판지게 취기가 낭자하였으니... 그날이야말로 나의 처녀흡연의 날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던 거였다.

그날 밤, 친구 녀석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나의 처녀흡연 모습에 놀라워 하며... 너무 자연스러워... '사기 당했다''진작부터 우리 몰래 숨어 피웠던 거 아니냐'고 항의가 빗발쳤다. 하긴, 나도 놀랬으니까...

그날 이후, 담배는 내 인생의 훌륭한 동반자가 되었다.

학생 주제에 돈이 떨어지면 잘 사는 동네나 유흥가에 꽁초 헌팅(우리 식으루 말한 다면, 꼬바리 사냥... 그때 송창식의 '고래사냥' 노래가 대유행이었으므로...)을 수시로 당번정해서 다니기도 했다. 그렇다고 돈이 여유가 있어서 담배를 사다가 재어놓고 피울 때는 아껴서 피웠냐 하면 그건 또 아니였다.

꽁초 주어다 피우던 얹그제를 생각한다면 아껴 피워야 할 터인데두  불구하고, 온갖 폼을 잡아 가면서 대초를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튕겨 버리곤 했다.

운 좋게도, 재능이 좀 있는 편이어서 주변으로부터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함이 가시지 않았고, 삶은 욕망과 이성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미진함은 담배와 술로 위로받기가 간편했다.

최고 하루 3갑까지 피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욕조에 물을 받고 몸을 데우는 시간에도 한 손에는 담배 그리고 한손에는 술잔을 들고 몸을 데웠으니...

아직도 중학때 부터 배워왔던 키타를 칠 때면... 서유석의 ‘담배’라는 곡으로 악기의 음율을 조율한다.

       두 손가락에 끼어 끼어

      삶과 주검의 허무를 가르쳤다. 삶과 주검의...

      두 입술에 물려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 사랑과 미움의...

      멍히 들창 밖을 내다 보는 버릇이

      너 함께 너 함께 이루어 지던 날

      내 삶은 색동 저고리를 벗고 벗고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하얀 소복을 입었구나.

내가 엄청 좋아하는 노래다... 울면서 소리 쳐 부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닐진저...

남루한 색동 저고리를 벗고 벗고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우화할 수 있는 언젠가의 행복한 날을 기다려 본다.

더러 담배 안 피우는 타인들이 “건강에도 안 좋은 그 담배 좀 끊을 수 없냐”고 지청구를 한다.

그 때마다 나는 “하버드 유학 갔다 와서 노래방하는 인간보다, 중학 2년 중퇴하고 2평 짜리 헌 책방하는 사람이 더 아름다울 수 있듯이... 담배 안 피우고 100년 살다가 죽은 인간보다 담배 피우고 30년 살다가 죽은 사람이 덜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담배야말로 그 인간에게 신산스런 이 세상을 살아내게 해준 엄청 소중한 친구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고 항변했던 거다.

그렇게 나는 담배를 좋아 했다.

그러던 2001년 초겨울의 어느 날 밤... 평소처럼 대청마루에 나와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채 달을 구경하며 담배를 피우던 나는, 문득 “내가 세상에 와서 온갖 못된 일은 책임지고 다해 본 것 같은데... 돈 덜 들이고 고생 덜하고... 남들에게 좋은 일 한 가지 할 것이 없을까... 내가 담배만 안피워도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덜 끼칠게 아닌가 ...” 하는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오른 거였다. 아뿔싸... 나는 성격이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생각되면 즉각 실행해야만 한다.

그날 밤 나는 불행하게도, 떠오른 생각을 어쩌지 못하고 실행을 위한 준비 단계에 이미 접어 들고 있었다.

먼저 인터넷에 들어가 담배와 금연에 관한 온갖 정보를 수집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이리 저리 생각해 본 후, 결론을 내렸다.

‘금연초’라는 가짜 담배와 은단 그리고 사탕과 껌으로 한방 / 일사불란 / 일발필도 / 일사불퇴 / 낙장불입(아..이건 아니쥐)에 끝장을 보리라고...

좌우지당간에, 그러구러 한방에 끝장낸 나의 금연은 6년여가 흘러가고 있다.

지금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담배 피우기를 권장하는 바는 아니지만, 꼭 피우겠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줘서는 절대 안될 것이며, 또한 그 사람이 담배 피우고 30년 살다가 죽은 그 사람이 꼭히 불행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왜냐하면, 담배야말로 고독한 이 세상에서 죽은 그 사람을 아무 말 없이 도닥거리며 위로해 줬던 삶의 소중한 동반자였을런지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