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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의 여름

Led Zepplin 2008. 9. 2. 21:15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   9월의 시 / 문병란

 

 

 

   물드는 감잎처럼 고운 하늘이

   서서히 기우는 해거름

 

   한들대매 손흔드는 강아지풀의 청순함으로

   샛노란 달맞이꽃이 피는 언덕

 

   구석구석 숨어서

   사랑을 구애하는 풀벌레의 호소음으로...

 

   환청으로 들리는 노래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

   애오라지.

 

   월장성구의 시구를

   나의 선생이시여,

   이 가을엔

   낭낭히 들려 주오소서.

 

   그의 존재가

   속울음 삼켜야하는 가장이라서

   거짓으라도 용감해야하는 남자라면

   따스한 가슴 같은 언어로

   주저앉은 그대의 손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한사람을 그리워함이 시려서

   갈바람처럼 방황하는 새가슴의 여인에게

   한소절 위로가 될수 있다면...

   날개 휘날리며 달려가

   연민의 그대가 되고 싶습니다.

 

   한 잎 두 잎

   눈물 같은 낙엽이 내리고,

   또 그렇게

   세상의 소망이 여물때까지

 

                  ------ 박해옥 / 9월의 詩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김현승 / 가을의 기도(祈禱)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 터에 물 고인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조지훈 / 낙화(落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