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의 송악 톨게이트 인근에는 "필경사(筆耕舍)"라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은 다름 아닌 소설가이자 영화인이였던 소설 "상록수"의 저자 심 훈 선생께서 말년에 사시던 집이다.
우리의 초가집 양식과 선생께서 일본 유학시절에 거주했던 편리한 일본의 건축양식을 적절히 혼합한 건물인 거다.
이쁘고 아담하여 언젠가의 미래 나의 노후에 내가 다시 짓고저하는 나의 시골집 기본모델로 눈여겨 본다.
그 집의 면면을 돌아다 보자.
남향집인 바,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오전부터 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차고 한겨울에도 낮에는 보일러가 필요없으며 반소매로 생활이 가능할만큼 따뜻하다.
내가 시골살던 시절 40대 초반에 지었던 집은 내가 직접 설계하고 주관하여 건축하였는데, 측면 2칸 정면 4칸으로...
정면 중앙의 두칸은 합쳐서 뒷면은 주방으로 남향인 정면은 이중창인 통유리를 설치하여...
툭 터진 자연을 내려다보며 조망하기 좋도록 넓은 거실로 사용하였으며...
나는 약간의 경사가 있는 지역인지라 일곱 계단을 올라서는 집으로 지었던 점이 약간 다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에게 황토로 지은 초가집이 주는 아늑하고 편안한 정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집은 초가집이 주는 왠지 모를 답답함을 시원한 창을 설치하므로서 시원한 개방감을 주고있다.
심훈 선생님의 집을 축면에서 바라다봤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집인데...
지금 보이는 측면의 뒷쪽은 욕실이고.. 앞쪽은 해우소이다.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설치하였으나, 겨울에는 우환을 해소하는 동안 춥겠다^^...
습기로 부터 주택을 보존하기 위하여 바닥을 올려짓은 모습은 귀엽고 집이 안정감이 있도록 보여준다.
거실 창문앞에 내달린 테라스이다.
얼마나 소박한 테라스인가...
나는 이보다 더 소박한 테라스를 본 적이 없다.
창문에 그려진 구름을 바라보면 어디론가 두둥실 떠올라 가는듯한 아련함에 빠진다.
심훈선생의 아기자기하며 소박한 성품을 엿보이게 한다.
창문앞의 테라스를 보면 떠오르는 나에게는 잊지못할 풍경이 잇다.
어린 시절, 종로구 인사동에서 2층에 테라스가 잇는 한옥과 일식 절충형의 2층집에서 자랐는데...
친구들이 나를 불러내려면 2층 테라스 근처에 내 방이 잇었으므로 테라스 아래에서 나를 불러냇으며...
친구들이 테라스 아래에서 떠들고 놀면 당연 나를 불러내는 소음이었던 거다.
그 테라스에는 원래 어머니의 화분이 놓여있었으나, 작은 형이 진돗개를 구하여 데려온 이후의 어느 날 부터 내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앗다.
왜냐하면, 백구 녀석이 그 테라스에 올라앉아 밖을 관망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한, 녀석이 나를 기다릴 때에도 그 테라스에 올라앉아 나를 기다리곤 했던 거다.
내가 학교를 마치거나 외출에서 돌아 올 때는, 골목길을 꺾어들어 그 테라스가 내 눈에 들어오면...
나와 눈이 마주친 백구가 그 순간 펄쩍 뛰며 테라스를 뒤로 하고 뛰어내려 2층 계단이 부셔져라 하고 달려 내려와서...
집 현관문을 앞발로 벅벅 긁으며 낑낑거리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를 넘어지도록 올라타고 꼬리를 내두르며 얼굴을 핧고 난리부루스였던 거다.
국민학교 5학년 무렵...
고려대를 다니던 작은 형(백구를 집으로 데려온 장본인, 그러나, 백구가 자신이 주인임에도 자기보다 나를 더 잘 따르는 것에 불만이 많은 눈물없는 싸이코^^..
항상 본인이 주인임을 유독 나에게 강조하며 심부름 강요 내지는 나를 핍박하던 자)이...
본인의 술값을 마련할 요량으로 불쌍한 백구를 팔아넘긴 어느 날 나는 울고불며 이틀간 학교 안가고 단식투쟁을 하였으나...
백구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비정한 날들이었다.
심훈 선생의 안방 겸 집필실이었던 방의 툇마루에서 바라다 본 풍경.
원래는 이렇게 쳐다보면 한진포구 바다가 내려다 보여 문득 심경이 답답하시거나 외로우실 때에 툇마루에 나와 바다와 포구를 바라다 보셨다는데...
지금은 선생이 뒷마당에 심었던 대밭이 집의 옆면까지 둘러쳐 자라고 번져있어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선생이 지으신 당호는 "필경사(筆耕舍)"이다.
논밭을 경작하는 심경으로 작품을 갈고 닦으시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게한다.
선생이 갖고계신 두 개의 벽걸이형 괘종시계.
이제는 낡고 고장나서 시간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선생의 안목을 엿보게 한다.
시계의 태엽을 감으시고, 마른 걸레로 먼지를 닦으시며 시간에 대하여 묵상하셨을 고인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나 또한 저 시계를 바라본 한 명의 인간으로 언젠가 시간속으로 흘러가 버릴 한 명의 군상임을 생각해 본다.
심훈선생이 집필실로 사용하시던 방이다.
"옛 것이 좋아서 때론 깨어진 비갈(비석)을 찾고 경전 연구로 몇 일은 시를 못 읊도다"
추사께서 흥선대원군을 위하여 쓴 글이다.
어둠에 갇힌 1930년대와 햇살이 밝고 춘설이 보이는 2010년의 정원입니다.
그 어둠속에서 심훈선생이 울부짖은 시 "그 날이 오면"을 다시금 읽으며...
우리가 과연 선생이 그토록 갖고싶었던 그나라 그 민족인지를 부끄럽게 돌이켜봅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같이
종로의 인경[人定]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고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