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하녀(下女) 그리고 시(詩)

Led Zepplin 2010. 5. 24. 02:28

 

 

하녀(下女)...

 

영화는 추락(墜落)으로 부터 시작(始作)되며 추락으로 마감한다.

부(富)와 권력(權力)은 수직적(垂直的)인 관계(關係)로 즐겨 표현된다.

‘하녀(下女)’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A와 B의 수직적인 관계를 예고(豫告)하며...

‘하녀’라는 비민주적(非民主的) 단어를 사용하여 비인간적(非人間的)인 상전(上典)의 등장을 암시한다.

감독 임상수는, 부자인 젊은 남자와의 섹스를 통하여 동반상승(同伴上昇)의 꿈을 꾸었던 어느 여자의 추락을 통하여...

자본(資本)의 꽁무니를 추종(追從)하여 행복(幸福)의 단 꿈을 꾸려고 하는 우리 시대(時代)의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를 냉소(冷笑)하고 있는 거다.

 

추락(墜落)에는 부자(富者)와 거지가 따로 없으며 권자(權者)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룹 현대(現代)의 왕자(王子)께서도 사옥(社屋)에서 추락했으며, 전직대통령(前職大統領)도 올빼민지 부엉인지의 바위에서 추락했고 ‘하녀’도 추락(墜落)했다.

자본의 왕자가 추락해도 전직대통령이 추락해도 ‘하녀’가 추락해도 세상(世上)과 우리 인간의 일상(日常)은 아무 것도 변화(變化)하지 않는다.

 

풍부(豊富)하고 화려한 색감(色感)의 영상(映像)...

자본의 기름끼가 자르르 흐르는 왕가위류(流)의 영화음악, 격정적(激情的)이고 매력적인 Beethoven Sonata.

Casting에 애를 쓴 흔적이 보이는 배우(俳優)들의 연기(演技)는 예상대로 원만(圓滿)하다.

그러나, 극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찾아든 결말(結末)은 당혹스러우며 아쉽다.

그 극단적 결말(結末)이 부여한 시각적 충격(衝擊)은 충분했지만, 설득력(說得力)은 부족하다.

이야기는 대략 일정한 구조(構造)를 갖기 마련인데,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필요할 터...

기승전결이 관념화(觀念化)되어있기는 하지만, 사건(事件)이 발생하게 된 이유(理由)와 과정(過程)과 그 결과(結果)에 우리는 익숙하다.

영화 ‘메멘토’처럼 결말을 플롯(Plot)의 앞에 설정(設定)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는 시공간적으로 순차적(順次的)인 플롯을 만든다.

물론, 플롯을 구성하는 방법은 작가나 감독의 재량(才量)이라지만...

 

좀 더 긴장감(緊張感)있도록 잔잔하게 끌고 가는 Storytelling의 탄탄한 구조(構造)가 정말 아쉽다는 거다.

그 아쉬움이 전도연을 앞장세웠음에도 Cannes에서의 어설픈 실적(實積)으로 돌아올 것으로 직감(直感)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우려(憂慮)일까...

 

 

시(詩)...

 

다리(橋)와 강(江)의 물소리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Long Take...

강변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 강물위로 여학생의 시체가 떠내려 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는 감독 이창동의 전작인 ‘박하사탕’의 Opening을 연상케 하며 어떤 의미의 연작임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도 강(江)의 물소리 가득 화면을 메운 채 Ending Credit이 올라간다.

‘박하사탕’의 Ending과 같은 회상(回想)의 방식이다.

이창동은 오랜 침묵(沈黙)을 깨고 '박하사탕'과 같은 방식의 시작과 끝을 보이며...

나이든 여자가 일상속의 어느 날 문득 시를 배우기 시작해서 마지막 수업(授業)에 시 한 편을 제출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창동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수작(秀作)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아마추어 시인들이 시낭송회를 마친 뒤풀이에서 어느 젊은 시인이 “시는 죽어도 싸”라고 내뱉는다.

시(詩)가 죽어가는 이 시대(時代)에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意味)인가..

비논리적(非論理的) 무의식(無意識)의 언어인 시(詩)가 “죽어도 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억울하게 죽은 여학생에 대한 넋의 위로를 외면한 채...

오히려 진실(眞實)을 은폐(隱蔽)하고 가해자가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우리 시대(時代)에서 시가 할 수 있는 역할(役割)은 과연 무엇일까...

 

이창동은 시가 죽어가는 우리 시대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소리내서 절규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강(江)물의 물결만큼이나 잔잔하다.

영화의 Opening에서 강물에 떠내려 오는 여중생 시체 옆에 ‘시’라는 제목이 쌩뚱맞도록 큼지막하게 적힌 것은...

쓰~ 벌, 여중생으로 대변되는 소중한 것들이 시체가 되어 둥둥 떠다니는 이 시대에...

시(詩)가 존재(存在)해야 하는 의미(意味)가.. 문학(文學)이 무엇이며 법(法)이 과연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준엄(峻嚴)하게 묻는 거다.

 

대저(大抵), 예술(藝術)에 대한 추구(追求)는 아름다움(美)에 대한 추구이며 본인이 소유한 재능(才能)의 표현(表現)이기도 하겠지만...

그 역시도 일상(日常)으로의 탈출(脫出)이어서 결국 권태(倦怠)에 대한 몸부림이기도 한 거다.

현실(現實)을 견디기 위하여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시를 쓴다.

어떻게 하면 시를 쓸 수 있는가 하는 늙은 여주인공(女主人公) 미자의 절박(切迫)한 물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만 하는 것인지를 간절(懇切)하게 되묻는 거다.

 

영화에는 6편의 시가 등장한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5공탄압(彈壓)이 극성으로 치닫던 1980년대의 어느 날...

지명수배(指名手配)로 인하여 도피중(逃避中)이던 황지우 시인(詩人)이 불과 5분만에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썼다는 전설같은 시(詩)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기다림의 절실한 심정(心情)을 평범한 일상어(日常語)를 통하여 절묘하게 형상화(形象化)하고 있으면서도 쉽지만은 않은 깨달음을 만나도록 한다.

우리가 삶에서 그토록 절실(切實)하게 기다리는 것은 그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소중(所重)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현재(現在)에는 부재(不在)하는 소망(所望)의 그 어떤 대상(對象)이라고도 하겠다.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너’를 기다리는 행위(行爲)는...

실현(實現)되지 않을 미래(未來)에 대한 기대(期待)라는 점에서, 대단히 비극적(悲劇的)이고 절망적(絶望的)이다.

그러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기대와 설레임이 있기에 그 망할 ‘기다림’은 고스란히 내 삶의 의미(意味)이며...

절망(絶望)스러운 현재(現在)로부터 희망(希望)의 미래로 발(發)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긍정적(肯定的)이다.

그리하여, 인간(人間)의 구차한 삶은 부족(不足)와 상실(喪失)이라는 절망적 순간(瞬間)에서도 희망을 건져 올리려 용을 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런지...

 

  싹을 티워내는 정수박이

모질게 잘라버리고

허연 살점 게슴츠레 훔치며

불 위에 올려 놓는다

잠시 뒤면

몽실몽실 부풀린 몸

얌전히 식탁위에 오를 일만 남은 것

늘 뜨거워야 하는 것은

누가 만들어 준 운명인가

너의 생에는

땅을 밟고 일어서는 순간

호사스런 나비로 여름 한 철 꿈이라도 꾸었던가

 

아물지 못한 촉수는

자꾸만 땅을 그리워하며

맨몸으로 부화하는 나비의 꿈을 꾸지만

암만 봐도 한물간 불량감자

차가워지는 이 한 철에도

화씨220도의 가슴으로

태워야 하는 너는 뜨거운 감자

 

                             -----  감자를 삶으며 / 조영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