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Lethe)’의 강(江)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忘却)의 강’이다.
그리스 신화(神話)에서, 사람이 죽으면 여러 강을 거쳐서 저승세계로 가는데...
‘타나토스’라는 저승사자가 죽은 이의 영혼을 첫 번째 강으로 인도하게 된다.
그 첫 번째 강이 ‘아케론(슬픔)의 강’, 여기서 영혼은 슬픔을 버리고 가게 된다.
이 슬픔의 강을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배로 태워서 강을 건너고...
저승사자 ‘타나토스’는 영혼을 저승세계의 길로 계속 안내를 한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나오는 곳이 망각의 강 ‘레테(Lethe)’이다.
레테의 강을 건너고 나면 비로소 전생(前生)에 있었던 모든 인연과 번뇌(煩惱)가 사라지고...
저승세계의 인물이 된다는 거다.
'79년 <사람의 아들>로 약관의 나이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문열의 대표적인 명작 <레테의 연가(戀歌)>.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結婚)은 하나의 ‘레테’다.
우리는 그 강(江)을 건넘으로써 강 이편의 사랑을 잊고 강 건너편의 새로운 사랑을 맞이한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오직 그 새로운 사랑만으로 남은 삶을 그 꿈과 기억들로 채워가야 하는데...
인연과 사랑에는 어떤 깊은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있는 것일까...
여름이 되면, 잘 아는 회장님 중에 한 분과 보신탕집을 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
나는 예전에 보신탕을 즐겨 먹었다.
70년대에 말이다, 60년대에는 돈이 없어서 못먹었고...
잘 나가던 7-80년대에는 안양 박달동 계곡과 성남 남한산성(南漢山城) 뒤의 계곡이 아주 좋았다.
직원 또는 친구들과 그 곳에서 밤새 쏘주와 개고기를 뜯다가 새벽에 바로 출근하는 날도 있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삶이 웃긴다고 생각한 나는 헨리 D. 쏘로우(Henry David Thoreau)의 뒤를 따라 서울을 버리고 숲으로 몸을 옮겼다.
어렸을 적, 작은 형이 내 개를 팔아 없앤 뒤의 소망(素望)대로 나는 남녘의 진도에 가서 눈처럼 하얀 강아지 두 마리를 사와서 그 숲에서 함께 살았다.
신념(信念)이랍시고 숲에 파묻혔지만, 문득 문득 또 다른 현실(現實)의 꿈은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꼴값 떨지 말라”고...
그럴 때는 갑자기 내 자신(自身)을 주체하지 못하여, 벌건 대 낮에 현관 앞 계단에 주저앉아 김치조각에 깡쏘주를 들이부으며 멍하니 앞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럴 때면, 백구 녀석이 슬그머니 다가와 내 옆구리에 몸을 찰싹 붙이고 앉아 앞을 바라보며 문득문득 생각난 듯이 내 얼굴을 핧으며 나를 위로했던 거다.
백구 녀석과 나는 전생(前生)에 어떤 인연(因緣)이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숲에 살던 날, 사람이 그리워 도시(都市)에 나가면 친구들이 숲에서 풀만 먹고 살고 있다 하면서 사 준 보신탕을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보신탕의 그 국물 속에 우리 백구 녀석과 진주 년의 눈망울이 거기에 또록또록 반짝빤짝 눈이 부시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는 멍멍탕을 끊었다...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흐르고 숲 밖의 저잣거리에도 도(道)는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시로 나온 뒤의 생활인(生活人)으로 보신탕을 거부할 수만은 없었다.
에고~ , 이야기가 헛나갔다.
그 회장님이 예전 잘나가던 젊은 시절에, 인근의 공무원(公務員)으로 도청(道廳)엘 자주 드나드셨던 모양이다.
회장님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대형오토바이를 몰고 다니셨는데(지금으로 야그한다면 할리 데이비슨/ Harley Davison)...
대다수의 뭇여성들이 그 오토사이클의 뒷자리에 제법 타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청에 근무하며 그 당시 도청의 메이퀸(May Queen)으로 날리던(?/ 지금 내가 볼 땐 별로 더만...) 미모였던 그 여직원은...
회장님의 은근한 꾐에도 “흥~ ”하며 모터사이클의 뒷자리를 시답쟎게 여겼던 모양이다.
그 수 십 년 후, 회장님은 번듯한 업체의 회장님으로 변모하였으며 콧바람을 팽팽 날리던 미모의 그 녀는 예상 밖으로 그 도시 주먹의 여자가 되어...
풍진 세월(歲月)을 보내고 오늘날 보신탕집 여주인이 되어 손님들 안주상에서 손을 호호 불며 뜨거운 고기를 찢어주고 있었던 거다.
그 탕집에 갈 적마다 회장은 큰소리를 치며 농으로 말한다.
“ 아~ 글쎄, 그 때 내 오토바이 뒤에 달랑 올라탔으면 지금 더운데 이 고생 안하쟌나... ”라고 농을 청하면...
“그러게 말여요~ , 그 땐 뭘 알았어야죠”하며 웃고 만다.
간발(間髮)의 차이로 비행기이거나 기차를 놓치는 일을 우리는 왕왕 당하기도 한다.
그 찰나(刹那)의 순간(瞬間)으로 사고(事故)를 당하거나 사고를 피하는 경우를 신문기사에서도 본다.
‘순간의 선택(選擇)’이 이렇게 중요(重要)한 것인지...
그 순간(瞬間)에 인생(人生)은 뒤바뀐다.
인연(因緣)이란 것이 그런 거다.
해서, 인연(因緣)이란 우연(偶然)을 가장한 필연(必然)은 아닐런지...
오랜 세월동안을 마음속에 품고 새겼던 청순(淸純)한 여인(女人)의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애잔하게 싸나히의 가슴을 울려서...
인간과 일상(日常)에 대한 따뜻하고 애틋함이 전해져 오는 글에 그 유명한 수필 ‘인연’이 있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隨筆) ‘인연’은 세월과 함께 비록 빛은 바랬으되...
그래서 더욱 소중히 간직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흑백조차 색(色) 바랜 스틸 사진(寫眞)과도 같다.
가을은 아직 멀었지만, ‘인연(因緣)’이라는 이야기에는 왠지 바람이 전하는 말과 함께 가을의 향기(香氣)가 애절하게 묻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인연(因緣)〉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