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굿, ‘오구’...
그러나, 오히려 산 자들이 더 좋아하며 즐긴다.
‘오구’는 ‘오구굿’을 말함이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하여 하는 굿이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한을 풀어주고 죄업을 씻어주어...
극락 천도를 기원하는 무속의식인 거다.
동해안의 어촌이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오구’라 하고, 전라지방에서는 ‘씻김굿’이라 하며...
경기지방은 ‘지노귀굿’이라 하고, 함경도지방은 ‘망묵이굿’이라 한다는 거다.
젊은 날, 나는 연극보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떠나 해외를 떠돌다 어느 날 문득 돌아와선 신촌 일대와 대학로를 떠돌면서...
각종 문화 신인들과 어울려 지냈는데...
그 중에는 젊은 시인 서껀 젊은 연극인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과 어울려 한국의 르네쌍스가 어쩌구 하면서 술이나 마시면서 싸돌다가...
어찌어찌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명 연극 극단에 가입하였던 적도 한 시절 있었다.
각설하고, 그 시절 걸판하여 인상깊게 보았던 ‘진도 씻김굿’이 생각나서...
호암아트홀에서 벌어진 ‘오구’를 본 거다.
‘오구’는 재미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지극히 평범하며 일상적이다.
늙은 어머니(강부자 분)는 낮잠 속 꿈에서 죽은 남편을 만난 뒤론 저승 갈 준비를 하신다며...
가기 전에 굿 한판 신명나게 벌려달라고 또 떼를 쓰신다.
한 두 번이 아닌지라, 아들 탁이(오달수 분)는 ‘미신’이라고 뿌리쳤더니...
“후레자식~”이라고 욕만 한 바가지 얻어먹는다.
“아들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고 코를 풀며 우는 노모를 위해 마침내...
평소 알고 지내던 박수무당 석출이(중요무형문화재 68호/ 하용부 분)를 불렀다.
석출이는 어머니를 위하여 신명나는 굿 한판을 벌렸고,
어머니는 “나 갈란다~” 한 마디를 남기고 가버리셨다.
그러나, 유산문제 때문에 돈 놓고 옥신각신 싸움질 하는 자식들이 꼴 보기 싫으셨는지...
가셨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돌아오셨다.
아들 둘을 혼쭐을 내시고 시시비비를 가려주신 어머니는...
“나 이제 진짜 갈란다~ 이”라며 새벽 닭이 우는 시각...
어머니는 자식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먼 길을 떠나신다.
‘오구’는 나이든 부모님을 모시고 삼대(三代)가 같이 봐도 신명나는 가족극(家族劇)이다.
연극 ‘오구’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소재를 굿이라는 형식으로 풀어낸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작품.
‘연희단거리패’의 고정레퍼토리로 극단의 역사와 함께한 연극 ‘오구’는...
재주많고 노련한 연출가(演出家) ‘이윤택’...
그리고 ‘오구’의 대중화를 이끈 ‘강부자’와 초연부터 현재까지 ‘오구’를 지켜온 남미정...
명품조연 오달수/ 인간문화재 하용부/ 연희단거리패 창단멤버 배미향 등 예쁘고 잘난 최강멤버들로 북적거린다.
주인공 노모(老母) 역으로 출연하는 ‘강부자’씨는 올해로 일흔살이시다.
연기 인생 50년이니 어지간한 베테랑 배우도 그녀 앞에 서면 작아진다.
‘강부자’씨의 출연 이후로 ‘오구’는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연극 ‘오구’는 배우이자 스타인 ‘강부자’를 견고하게 지켜주는 필모그라피(filmography)이다.
이제는 모든 연국이 당연하듯이, ‘오구’는 배우가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객석도 무대의 일부로 사용함으로써 경계를 허문다.
‘오달수’와 ‘강부자’는 등장하여 관객들을 향해 “오셨냐?”“잘 들리냐?”며 인사를 하고...
저승가는 노잣돈 명목으로 치마를 만들어 여배우들이 객석을 한 차례 돌기도 한다.
2층 관객을 위하여 무대에서도 2층의 객석까정 길이가 부족함이 없는 기다란 대형 잠자리채를 준비했음은 물론이다.
관객들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지폐를 잠자리채에 넣는다.
흔쾌하게 연극에 참여하는 동시에 만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구복 역시 마음으로 비는 것일 터...
무대는 연극이라는 형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객과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볼 것을 권유한다.
우리의 한국적인 춤과 노래의 흥에 빠져 놀면서 중간에 휴식시간도 있다.
마침내, 그렇게 놀다 보면 눈물이 날 때도 있으며, 재미나게 웃을 수 있는 순간도 많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배우들은 출구에 나와 서서 이현의 “잘 가세요~ 잘 가세요~ ”를 왁자하게 합창해 준다.
죽은 자를 위한 굿 ‘오구’, 그러나 죽음의 불안도 공포도 눈물도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
유쾌한 밤이다.
복중(伏中)이지만, 밤공기는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