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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

Led Zepplin 2010. 8. 29. 20:57

 

     

 

 지난 27일 오후,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에 관하여 청와대 지시에 따르던 한나라당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의 향배가 김 후보자와 청와대 그리고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움직이자 일단 주춤했다. 뿐만 아니라, 당 이곳저곳에서 예상밖의 이상 기류도 감지되었다.

 

본회의의 무산에 따라 9월로 미뤄진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진통을 다소 겪겠지만 결국 처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허나, 의외로 사안은 당의 내부 문제를 넘어 ‘당청 관계’ 문제로 비화했으며 김 후보자에 대한 인준 문제가 결국 집권 후반기를 맞이한 한나라당에게 '시험지'가 되어 돌아온 거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정해진 의사일정에 따라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노골적으로 당을 압박했으며, 청와대 쪽에서도 "총리 후보자를 교체할 경우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통과를 적극 요청하자 당 지도부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나빠지자 당내부에게 제동이 걸렸다. 홍준표 최고위원 등 당내 비주류를 포함한 소장파들이 김 후보자를 ‘부적격’이라고 판단하며 반발했다. 심지어, 유정현 의원은  "식당에서 식탁을 닦는데 더러운 행주로 닦으면 냅킨(휴지)으로 다시 닦아도 안 지워진다. 손님이 다 떨어진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시간은 급박하게 흐르게 된다.

문제는 9월 정기국회에서 동의안이 처리될지도 미지수이며, 당 지도부가 의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60% 이상의 의원들이 김 후보를 ‘부적격’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 그대로 ‘날~ 샜다’는 거다.

 

이 대통령이 임명을 철회하거나, 김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는 시나리오가 정치적 파장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청와대의 강경한 자세로 봤을 때는 ‘택두 없는’ 거다.

 

후보자에 대한 표결 처리가 미뤄짐에 따라 월말로 예정된 당 연찬회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질 추세이며, 우유부단 어영부영 하는 중간에 여론이 더욱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진퇴양난 그 벼랑의 끝에서, 김태호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총리직 사퇴회견을 마치고 트위터(Twitter)에 글을 통해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미묘한 소회를 남겼다.

 

김 전 후보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에 나오는 “티엔야오샤위 냥야오지아런 요우타취(天要下雨, 娘要嫁人, 由他去)”를 인용했는데, 마오쩌둥이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린바오(林彪)가 쿠데타의 모의가 발각되자 소련으로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말릴 수 없다. 갈테면 가라”는 의미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강조한 해석이며 일반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통용한다.

 

이 글은 후보자가 청문회의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과 말 바꾸기에 따른 사퇴의 압박 속에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심경을 표현했다고 생각되며, 후보자는 회견에서 청문 회의 과정에서 잦은 말 바꾸기 등으로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 까지도 사퇴 불가피론이 나온 것에 대하여 “각종 의혹에 대하여는 억울한 면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더는 누가 돼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오늘 총리 후보직을 사퇴하고 백의종군 하겠다”고 피력했다.

 

김 후보자의 이와같은 심경은,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 등 여권에서도 불거져 나온 사퇴 압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진 사퇴를 선택해야 했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막힌 곳을 뚫어내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고 호방하게 자신을 토로했던 김태호 전 후보자는 아쉽게도 이렇게 추락하고 말았다.

 

김태호 국무총리 전 후보자는, 경남 거창에서 농림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농대에 진학해 교육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농민의 아들이다.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성실과 도전으로 극복해 도의원, 전국 최연소 민선 군수에 당선됐고, 42세에 도지사 선거에 당선됐으며 연임에 성공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로 꼽혔으며 그러한 부분이 청와대가 김 전 지사를 파격적으로 국무총리에 발탁한 중요한 배경으로 알려졌다.

 

후보자 자신 스스로도 “저도 농민의 아들로 소 장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 장사의 아들로서 돈도 권력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는 제가 용기와 도전으로 바닥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건, 대한민국이 기회의 땅이고 용기와 도전을 가지고 뛰면 할 수 있다는 걸 20대와 30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었다.

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현안들을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해결했으며, 진솔한 리더십으로 민중의 복지와 행정을 일선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엉성한 선정기준과 어설픈 판단으로 한창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젊은 도지사를 낙마시켜 김 후보자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맛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더 허탈감을 느끼게 해 준 아주 나쁜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결과인 목표를 위하여 과정은 무시해도 된다는 대한민국만의 목표지상주의가 만든 또 하나의 실패작인 거다.

 

김 전 후보자의 사퇴 발표 후,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자의 사퇴의사를 전달 받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면서 하지만 국민들의 뜻을 따른 것으로 이해한다며 받아들였다고 밝혔지만 이는 아직도 청와대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는 증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광복절 축사에서 이야기한 “모두가 정직했으면 좋겠다” “공정한 사회”에 대하여 대통령 자신이 진심인지.. 진심이라면, 대통령의 가신들이 진지하게 수행하지 않고 있음이다.

 

청와대 인사팀은, 우선 인사검증의 실패를 자인하여 국민과 김 전 후보자 개인에게 엎드려 정직하게 사죄해야 마땅하며 향후 엄격하고 치열하며 공정하게 인물을 선택하여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임을 국민에게 앞짐으로 조아려 약조하여야 한다는 거다.

그것은 인사검증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 인사팀이 국민의 공복으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세라는 것을 그들은 아직도 절감하지 못한 채 안이하게 뒷짐지고 국민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거다.

 

시집간 어머니가 홀가분하고 행복해야 할 터인데, 가슴을 치며 아파할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민초 나도 오늘밤 마음이 편하지를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