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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한 사회의 목민관(牧民官)

Led Zepplin 2010. 9. 11. 11:52

 

 

  동양의 현자(賢者)에 묵자(墨子)가 있다. 묵자의 사상(思想)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 나누는 정치적 평등(平等)과 경제적 평등이며 철학의 핵심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이다. 겸애는 서로 사랑하자는 뜻으로 정치적인 평등의 요구였고, 교리는 서로 이익을 나누어 갖자는 의미의 경제적인 평등의 요구이다. 그러나, 겸애가 이루어지면 교리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묵자는 겸애란 자기를 위하듯 타인을 위하고, 내 부모를 위하듯 타인의 부모를 위하는 것이라 했다.

묵자는 억압과 수탈을 일삼는 지배계층을 향하여 평등하게 사랑하라고 외침으로써 정치적 평등을 확보하려고 했고, 서로 나누어 갖자고 주장함으로써 경제적 수탈에 대항한 묵자의 사상은 이상사회에 대한 갈망(渴望)과 꿈이다. 요즘 우리사회의 화두(話頭)는 ‘평등(平等)한 사회(社會)’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지난 8ㆍ15 경축사(慶祝辭)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평등한 사회’를 언급했을 때, 여느 때처럼 국민들은 모두 그 말을 그저 말하기 좋은 정치적 수식어(修飾語)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人事聽聞會)에서 후보자들의 위장전입이나 투기 내지는 탈세 등이 드러났을 때에는 그것은 그저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실수로 판단하는 것이 통례(通例)였으나 공교롭게도 광복절 직후에 김태호 총리 후보/ 장관 후보 두 명과 유명환 외통부 장관까지 이대통령이 언급한 ‘평등한 사회’의 말씨에 딱 걸려 줄줄이 사탕으로 물러나면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거다. 그러므로, 이번만큼은 우리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靑瓦臺)에 제대로 힘찬 박수(拍手)를 보내주자.

이명박 대통령이 남은 집권후반기(執權後半期)의 통치이념(統治理念)을 ‘평등한 사회’로 결정하고 단호한 의지(意志)로 밀고 가는 것이야말로 가뭄에 단비처럼 즐거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현안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다”라는 국민들의 불만과 절망(絶望)이 폭발 일보 직전의 뇌관과 닮았다는 점이다. 소득 교육 이념 등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그 양극화보다 심각한 ‘불공정’에 대한 인식의 심화와 확산을 주시해야만 한다.

 

광복절(光復節) 경축사에서 이대통령이 말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자.

“ ... 우리가 둘로 나누어보았던 자유와 평등, 민주화와 산업화, 성장과 복지, 민족과 세계를 모두 상생의 가치로 보자는... ”

“ ... 국가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위민(爲民)의 국정 철학’입니다.”

“ ... 우리는 사회적 약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따뜻한 자유주의’를 추구합니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중시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저의 오랜 소망입니다.”

“ ...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합니다.”

“ ... 합리적 절차를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추구합니다.”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정책 기조는 이명박 정부 내내 실천하고, 대한민국이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할 방향입니다. 정부는 경제가 좋아져도 가장 늦게 혜택이 돌아갈 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습니다.”

 

공직자 즉 목민관(牧民官)의 자세를 언급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관(牧民觀)’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선생은 청렴(淸廉)에 세 가지의 부류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 정확히 봉급 이외에는 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불의와는 타협을 모르는 직업관이 투철한 공직자.

둘째, 봉급 이외에도 적당히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가리는 자로서 양심에 거리낌은 있으나 이것쯤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썩은 목민관.

셋째, 정당하지 않은 것도 돈이라면 타협하고 챙기는 자로서 다만 나쁜 관계는 스스로 만들지 않는 썩은 관리(官吏).

오늘날 우리나라 공직자의 사회가 어떤 유형의 공무원들일까 한 번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각 국(局)과 실(室) 그리고 동(洞) 별로 편성된 예산(豫算)의 지출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그 예산이라는 것은 시민과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피와 살’인 거다. 그래서, 이를 ‘혈세(血稅)’라 한다. 오늘의 우리 목민관들이 이런 작은 마음자세라도 다듬으며 백성을 위하여 집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갑작스럽게 행시를 축소하고 5급 공무원의 50%를 전문직 등에서 특채하겠다는 정부안에 대한 찬반론이 시끄러운 가운데 홀로서기를 해도 충분할 30대 중반인 외무부장관의 딸에 대한 특채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자 국민의 여론이 격렬해졌다. 전문직 특채는 결국 기득권층 자녀들이 독식하게 되고, 돈도 빽도 없는 민초의 자녀들은 행시를 통하여 관료가 될 수 있는 기회마져도 배제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 벗어난 우리나라는 산업화(産業化)를 통하여 그야말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달성(達成)했다. 결과로, 국민은 고달픈 굶주림에서 벗어났고 민주화는 자유와 평등을 약속했으며 국제사회에서는 세계화의 일원으로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는 자긍심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할수록 소득의 격차는 심각해지고 소득의 격차와 함께 교육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 말은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하여 계층 이동을 한다”는 말을 하면 바보 비엉~ 신 취급을 받으며 그 따위는 가수 이용의 가사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으며,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절망이 민초들의 썩어문드러진 가슴속에 앙금으로 차곡차곡 고이고 있다.

 

‘다문화사회(多文化社會)’ 어쩌구 하며 민초(民草)들을 제외시킨 채 아시아와 아프리카까지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여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한 제품들을 판매하여 이익을 챙긴 기업주들의 두툼한 주머니와 만족을 모른 채 부유한 국부(國富)는 과연 지금 백성을 위하여 쓰여지고 있는 것인지...

돈과 권력과 지식을 가진 기득권 세력은 그들의 자식들을 기득권층으로 확고하게 안정시키기 위하여 쪽방촌까지 사들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편법 탈법을 불사하며 양심(良心)이라는 단어 따위는 고문서(古文書)에서나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하버드대 철학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지 몇 달 만에 30만부가 팔려 저자가 깜짝 놀랐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떴다. 하버드대 1학년들이 듣는 교양 강의를 정리한 책이 이 불황 속에도 그토록 많이 팔렸다는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불타는 갈증이 그만큼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현실을 주목해야만 한다는 거다. 정의롭지 못한 장관생활을 탓하며 “한 대 맞고 시작하자”던 최종원 의원은 결국 유인촌 장관을 차마 때리지는 못했다. 소심한 정의파인 나도 주먹이 운다.

 

우리나라는 OECD 평균자살율보다 2.5배로 국민자살율이 높으며, ‘4억명품녀’가 있는가 하면 바다에 투신한 ‘흑진주아빠’도 있다. 필리핀으로 바람쐬러가 도박을 하다 빚에 빠진 개그맨에게는 온갖 관심을 보이면서도 철강공장에서 일하다 끓는 용광로(鎔鑛爐)에 발을 헛디뎌 빠져 청년이 죽었어도 쉬쉬하는 방송미디어(Media) 역시도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과거 오랜 야당이었던 진보세력들이 10년 동안을 집권하면서도 어벙하여 공평 타당한 사회를 위한 의미있는 건축물을 구축하지 못했다. 보수세력 역시 한 때 정권을 빼앗겨 뼈아프게 얻었던 교훈을 쉽사리 망각했다. 공정사회(公正社會)로 가는 길은 당연 멀고도 험하다. 기득권세력(旣得權勢力)들과 힘든 전쟁을 치루어야 하고, 편법과 탈법에 빠질 수 있는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만 하며 우리 사회의 양심(良心)과 양식(良識)을 꾸준히 키워나가야만 할 것이다.

 

대한민국헌법(大韓民國憲法)의 전문(前文)에는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想起)해 본다.

“ ...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