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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잃어버린 미래

Led Zepplin 2011. 8. 6. 11:15

 

 

  고려의 조정은, 바야흐로 ‘친원나라파’와 ‘친명나라파’로 갈려 있었다.

‘친원파’는 최영(崔瑩)과 이인임(李仁任) 등 원로 보수파가, ‘친명파’는 이성계와 정몽주 같은 신진 개혁파가 그 핵심으로 자리했다. 포은 정몽주가 친명노선을 선택한 것은 명나라를 추종했거나 '친명파'의 면면들이 맘에 들었다기 보다는 국가의 안녕과 왕조의 중흥을 위한 방법으로서 좀 더 확실하고 안전한 외교정책을 펼치고저 함이었다.

 

우왕 12년(1386),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했다.

이성계는 회군의 여세를 몰아 최영장군을 죽이고 우왕도 몰아내고 창왕을 내세웠다. 정몽주도 처음에는 이성계의 쿠데타 명분에 공감하여 정국의 수습에 협력했다.

스스로 수상인 문하시중이 된 이성계의 밑에서 부수상인 수문하시중과 예문관 대제학을 겸임했다. 그러나, 이성계 부자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일당이 우왕에 이어 창왕도 몰아내어 참살한 뒤 공양왕을 허수아비 임금으로 내세우고 국정을 전횡하자 본인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신군부'일당들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성계가 사냥을 하다가 낙마하여 다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성계를 제거하려 문병하러 가려는데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래와 같은 시를 불러주면서 만류를 하였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랑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의 어머니는 간밤의 꿈이 흉하다고 하시면서 문밖까지 따라 나와 이 시조를 불러 주면서 정몽주가 가는 길을 말렸다. 단순히 어떤 예감이 있어서 쓴 시조라고 보기에는 그 뜻이 높고도 깊다고 하겠다. 80 노모의 사랑하는 아들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우국충정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인 거다.

 

은밀하게 시도되었던 이성계의 제거에 실패한 정몽주에게, 이성계는 그의 다섯째 아들 방원으로 하여금 정몽주를 다시 '친명파'의 편으로 포섭하라는 지시에 의하여 이방원은 자신의 심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하여가(何如歌)’를 지어 부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그러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서 고려왕조를 끝까지 섬기겠다는 굳센 충성심을 표현한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풍전등화에 놓인 고려에는 또 다른 충신이 있었으니, 성 삼문은 의(義)를 어기고 욕되게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죽음의 길을 택하여 늙지 않는 영원한 소나무처럼 푸르른 청춘과 절개를 지켜 세상과 역사를 비추는 몸이 되겠다는 결의를 다짐했다.

봉래산 중에서도 그 제일봉에 우뚝 솟아난 소나무, 그 소나무 중에서도 키가 가장 크고 위풍도 당당한 소나무가 되려는 자신의 이상(理想)이 표현 속에 두드러져 있고, 온 천하를 덮은 눈 위에서도 홀로 푸르겠노라는 싸나히의 비장한 결의는 괄목할만한 표현과 함께 이미지의 효과도 웅혼하고 높다. 흰눈 위에 우뚝 솟은 푸르른 소나무에서 오는 색조의 대비 효과는 절경이며, 금상첨화(錦上添花)로 모든 이들이 다 변절 훼손되더라도 나만은 홀로 유독 푸르리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얏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 하리라.

 

세종(世宗) 말년에, 중국에서 사신 예겸이 왔는데 시에 조예가 깊은 그를 대접할 인물이 없어 낭패했을 무렵...

성삼문과 신숙주가 접대역으로 선발되었는데, 중국어에 능통한 신숙주가 말상대를 하고 시는 모두 성삼문이 지었다고 한다. 이에 예겸은 크게 감동하여 두 사람과 의형제를 맺었으며 이때 고려의 학자들에게서 받은 시를 모아 <遼海片(요해편)>이라는 시집을 냈는데 시문에 모두 능했던 천재 성삼문이 발문을 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성계에 반대한 고려의 충신 성삼문은 결국 형장으로 끌려가며 그 수레 안에서 아래와 같은 시조를 지었다.

임의 밥 임의 옷을 먹고 입으며,

일평생 먹은마음 변할줄이 있으랴,

한번 죽음이 충의인줄 알았으니,

현능의 숭백이 꿈결처럼 아롱이네.

 

더러는,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하고 소리 높여 부르고 싶을 때도 있다. 나같은 천출이야 나이답쟎게 어울리지 않는 객기라고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하여 무작정 내달릴 수 있었던 저 푸르른 충절이라니...

호연지기라도 좋으니,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세계가 지금의 우리들에게 남아있기나 한 것인지 만수산의 무량사 절마당에서 비루맞은 강아지모냥 혼자 웅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