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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디포 길들이기

Led Zepplin 2012. 1. 31. 13:27

 

 

  영국의 소설가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1-1731)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의 흑인 노예가 등장한다. 유소년기를 통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이 오래된 소설에는.. 바다에서 표류중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가 식인종들에게 희생될 처지에 빠진 섬의 원주민 청년을 구출한 뒤 자신의 종으로 부리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크루소는 그 원주민 청년에게 문명(文明)을 가르쳐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식사하는 법/ 옷 입는 법/ 말하고 읽는 법과 주인님을 모시는 법 등 원주민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나름대로 훈육(訓育)한다. 그리고 그 흑인을 구해온 날이 금요일임에 착안하여 이름을 ‘프라이데이’로 명명(命名)한다.

 

‘프라이데이’란 그 원주민의 존재(存在)는, 작가 대니얼 디포를 비롯한 당시의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이 정복한 식민지인들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선명하게 표현했다. 크루소에게 절대복종(絶對服從)해야만 하는 대니엘 디포의 프라이데이는 18세기 당시의 양인(洋人)들이 갖고 있는 식민주의 시대 양인들의 편견을 정확하게 구현해 내고 있는 매개체 바로 그 것이다.

 

우울하게도, 양인 대니얼 디포를 복제한 18세기의 원주민 프라이데이의 망령(亡靈)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대부분의 우리가 섬기고 있는 그 몹쓸 ‘주인님’의 본질(本質) 즉 로빈슨 크루소에게 훈육된 원주민 프라이데이가 복종했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문명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의 우리들에게 훈육된 것들 예를 들면, 입시 경쟁/ 취업 전쟁/ 성공을 위한 투쟁/ 남들만큼 또는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현대인이라고 대변되는 양인들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및 교양 있는 도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온갖 것들...

 

현대의 샐러리맨들이 매달 맞아야하는 모르핀주사와 같은 월급 또는 월수입, 회사라 통칭되는 조직(組織)/ 집과 가정이라는 굴레/ 이데올로기(Ideology)/ 자동차와 문명적이기(利器)들 그 모든 것들과 함께 굴러가는 삶 자체까지도 모조리 대니얼 디포로부터 주입된 자취(Vestiges)이다. 삶의 주인이지 못한 불안(不安)과 보이지도 않는 뭔가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초조함의 근원 역시 프라이데이의 망령, 어려서 부터 양인들의 스타일로 주입당한 노예근성인지도 모른다.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도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먼 곳의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물리적인 원근감을 뛰어넘었으니 우리는 진정 더 행복한가...

우리의 삶이 로빈슨 크루소를 만나기 이전의 본래진면목(本來眞面目)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의 습관과 내가 아끼고 가꾸었던 현실에서의 온갖 귀한 것들 그리고 소중하게 가꾸었던 모든 꿈들까지도 거부하고 내려놓고 잊어야만 하는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떠나며 거부할 용기(勇氣)와 당위(當爲) 그리고 명분(名分)을 찾지 못한 우리는 지금 여기 나의 삶을 단단히 붙잡은 채 아무리 뿌리쳐 봐도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우뚝 버티고 있는 대니얼 디포의 망령을 거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 그를 떠난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지 찬바람 부는 저 광야(廣野)를 향하여 떠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질책하며 우리 모두는 오늘도 하루를 엮어나갈 뿐이다.

 

삶이 헛되고 헛됨을 알고 있지만,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고 믿고 있음이 후회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자. 그리고, 제국주의자 대니얼 디포의 망령을 두들겨 패 쫒아내지는 못할지라도 그 몹쓸 망령을 길들이면서 더 유쾌하고 재미있으며 게으름의 여유를 잃지않는 ‘생활속의 자유인’으로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