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가 날마다 교회의 새벽기도에 나와 “예수님, 저는 행복한 결혼을 위하여 신랑이 꼭 필요합니다. 제발 저에게 좋은 남자를 보내주세요~”라고 간구했다. 그러나 노처녀의 애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선 그녀에게 신랑감을 보내주시지 않으셨다. 그런 어느 날, 노처녀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신 목사님이 조용히 그녀를 불러서 충고했다. “자매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부모님이나 이웃을 위하여 기도를 해 보세요. 그러면 자매님의 뜻이 더 잘 전달될 것입니다” 목사님의 충심어린 조언을 듣고 “맞아, 바로 그거야~”하며 깨우친 노처녀는 다음날부터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예수님, 저의 부모님의 행복을 위하여 정말로 꼭 좋은 사위가 필요합니다. 부디 저희 부모님의 행복을 위하여 좋은 사위를 보내주세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라베더’는 어릴 때부터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돈이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다고 굳세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하여 노예처럼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들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결국 그는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라베더’는 “하와이에서 오랜 시간 머물면서 호텔 등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 돈을 보고 친절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긴 시간 동안 정말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남미와 아프리카도 여행했는데, 나의 부와 그들의 가난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죄의식을 느꼈으며.. 나의 소비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을 편하게 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털어놨다. 마침내, 그는 자기의 사업체/ 자택/ 별장/ 고급 차를 모두 팔아 제3세계를 돕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라베더’는 “인간은 경제적인 성공에 집착할 때 인간다움을 해칠 수 있으며, 나는 자신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을 소비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백만장자인 ‘칼 라베더’는 최근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고 지금은 한 달에 1,350달러(약 150만 원)로 생활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은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계대전 후 인류는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선진국 국민들의 소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질병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등 경제적 성장과 비례하여 인류의 수명은 늘어났지만 반대급부로 마음의 병 그리고 자살 등의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리하여, 각국의 정부는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추구해 온 기존의 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GDP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거다.
OECD 회원국 중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룩셈부르크는 행복지수에선 겨우 10위권일 뿐이다. GDP가 높은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국민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돈푼깨나 벌었다기에 도표를 들여다보았더니, 우리는 겨우 26위로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등과 도찐개찐으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다.
물론, 돈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 아님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 행복의 정체를 찾아 각종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미국 미시간대학의 ‘마일스 킨볼’ 경제학과 교수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로 수면/ 유전자/ 사회적 지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 현실에 대한 만족감을 꼽는다. 일례로 킨볼 연구팀이 미국의 60세 이상 장년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를 보자.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 슬픔과 충격에서 원래의 행복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로 돌아가는 기간은 평균 9개월이었다. 하지만 숨진 배우자가 생명보험에 가입해 있었을 경우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그룹에 비해 배우자를 잃은 충격의 정도가 약했다. 킨볼 교수는 “이 경우 돈이 슬픔을 경감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라며 “몸이 힘든 것을 알면서도 야근 철야근무를 하는 것은 이에 따른 보상(야근·철야수당)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석했다는 거다.
히말라야의 산기슭에 위치한 국가 부탄은 인구가 70만명 정도이며, 국민소득은 2천달러(2012년 우리나라: 2만2천달러 이상/ 누구를 위한 국민소득인지.. 츠암 나...)에도 미치지도 못하는 소국이다. 하지만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라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신앙 못지않게 오매불망 꿈꾸는 “돈만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사고를 깨부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부탄의 국왕은 1974년에 “GDP가 아닌 국민들의 행복지수(GNH/ Gross National Happiness)를 기준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부탄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경제성장에 목을 맬 때에도 심리적 웰빙과 건강, 생태계 보호 등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노력했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정체성을 잃지 않은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정체성의 중요함보다 서양과 미국의 아류임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양인들의 정체성을 흉내내지 못하여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부탄은 국제사회가 경제를 기준으로 흘러갈지라도 자신들이 원하고, 자신들에게 맞는 기준으로 살아간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생태계 보존과 전통문화 교육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국토의 60% 이상을 산림으로 유지하도록 법으로 정하는가 하면, 국가가 국민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바보들이 귀를 씻고 들어야 하는 대목인 거다.
부탄은 건강/ 시간 활용 방법/ 생활수준/ 공동체/ 심리적 행복/ 문화/ 교육/ 환경/ 올바른 정치 등 무려 9개 분야의 지표를 토대로 GNH를 산출해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GNH통계를 내기 위해 담당자가 1인당 5시간의 면담을 하는데, 8000명을 대상으로 72개 항목을 묻는다. “최근 1주일 동안 몇 차례 다른 사람에게 질투심을 느꼈나?” “몇 차례 화를 냈는지?” 같은 구체적인 질문으로 국민들의 심리상태를 수치로 산출해 낸다. 불교국답게 ‘명상 횟수’도 질문에 포함된다. GNH 조사를 주관하는 부탄 국립연구소는 이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정지도’라는 것을 제작한다. 그 결과로 지역별로 국민들의 불만과 만족도를 파악해 경제정책에 반영하고 있단다.
일련의 그러한 과정들이 과연 인구 70만 명의 소국이기에 가능한 방법일 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의 행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이고 섬세하며 친절한 방법이 국민들을 그렇게 유도해 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한제국’에서 국민의 민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으로 개국했다고 자랑질하는 KBS-TV의 정부홍보 광고가 최근 자주 나온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행복을 위하여/ 민중의 복리를 위하여 겨우 이정도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현실일 뿐이란 말인가... 우리가 그 정도밖에 안된단 말이냐? 너희들끼리만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살자는 소위 권력과 돈을 틀어쥔 일부의 지식인 개쉐들의 조직적인 잔머리와 행동들에 화가 치민다. 지금 우리는, 조선(朝鮮)과 별반 다름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다.
정부와 권자와 관리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기대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충분히 지치고 실망했다. 그것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그것들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절제를 생활화하여 ‘나의 행복 만들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국민의 행복은 오직 선거 때에만 당장 손에 쥐어줄 듯이 개거품 물고 부르짖으며 손목뼈가 금가도록 악수만 할 뿐이고, 여야가 모이면 쌈박질과 19세기에 벌이던 때 늦은 이념투쟁만 하는 국회와 자신들을 욕하고 흉볼까 불안하여 사찰에나 목매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와 권자와 관리들이 손발 씻고 대가리 박고 반성하고 있는지 증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