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길위의 상념

Led Zepplin 2012. 7. 13. 16:03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그러나, 보다 더 걷기(Walking)를 즐긴다. 요즘도 주말이면 멀지않은 곳일지라도 어딘가를 걷는다. 길을 걷다보면 으레 소도 만나고 중도 만나고 개도 만난다. 중국의 속담(俗談)에도 “책 만권을 읽는 것보다 만리를 여행하는 게 낫다”는 말이 있는데 만리길 여행에서의 체험(體驗)이 중요함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요즘 우리나라는 건강과 레저를 위한 방편(方便)으로 걷기가 대유행이다. 걷기 여행의 바람이 불자 지자체마다 길을 만들고 다듬느라고 바쁜데 꼭 그 길에 이름을 갖다 붙인다. 그 이름도 갖가지이며 지리산(智異山)의 둘레길/ 제주의 올레길/ 군산의 구불길/ 남해의 바래길/ 부산의 갈맷길/ 강릉의 바우길 등이다.

 

최근에는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의 대표명소인 제주 성산일출봉(천연기념물 제420호)의 옛 오솔길이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전북의 군산에도 구불길이라 하여 구석구석 도보여행로가 개척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故) 이청준 선생의 단편소설(短篇小說) ‘눈길’에 등장하는 시골길 또한 전남의 장흥군이 그 ‘눈길’을 복원(復元)했다는 소식이다.

 

이청준 선생의 단편소설 ‘눈길’은 1977년에 발표되었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고교생 이청준이 광주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는 아들 몰래 집을 팔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집으로 내려오게 되자 어머니는 집주인에게 사정을 하여 아들이 하룻밤 정든 고향집에서 머물게 한다. 이튿날 새벽, 모자는 밤새 함박눈이 내린 산길을 걸어 버스 정류장(停留場)으로 향한다. 아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어머니는 그 눈 쌓인 길을 되밟아 홀로 집으로 걸어가신다.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오목오목 디뎌놓은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소설 ‘눈길’에서)

 

나는 대체로 혼자 떠난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롭다. 그러나, 혼자 걷는 길은 비록 외롭지만 역설적(逆說的)이도록 그래서 오히려 행복하고 충만(充滿)하다. 그건 오랜 시간 먼 길을 혼자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다. 그 홀로 걷는 먼 길은 태양(太陽)이 녹여버릴 듯이 내려쪼이는 시련(試鍊)이 있어도 좋고 금방 곧 주저앉고 싶도록 다리가 아파도 좋다.

 

먼 길을 묵묵히 홀로 걷는 자는 그 시간동안 그는 누가 뭐라해도 홀로 성자인 거다. 그건 꼭 산티아고의 순례(巡禮)길이 아니어도 하등에 상관이 없다. 산티아고를 걸어야만 마침내 순례의 마침표를 이루었다느니 또는 도보의 일가견(一家見)을 갖췄다는 생각을 갖는 촌스러운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이다. 선진국이 되면 뭐하나, 천출(賤出)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상이 문제인 것을... 마치 루이비똥이나 구찌만이 핸드백인양,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칼질하면서 드셔야만 만찬이냐? 된장찌개에 묵은김치 척척 걸쳐 먹어도 맛만 좋더라...

 

나도 한 때 어느 도보여행(徒步旅行)의 회원인 적이 있다. 그러나, 짜맞추어진 시간(時間)의 틀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여야 하는 여행은 애초부터 나와는 맞지않았다. 젊어서부터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한 수많은 해외여행도 나는 홀로 떠돌아 다녔듯이 장년(壯年)이 된 지금의 걷기도 나는 홀로 수행(修行)한다. 자연과 사물을 벗삼아 묵묵히 더러는 나에게 또는 누구에겐가 고함을 지르며 걷는 나혼자만의 떠돌기가 나는 좋다.

 

배낭 하나를 달랑 짊어지고 모자를 눌러쓴 채 산에서 베어다 오랜시간 말린 대나무 작대기를 하나 골라 들고 길을 나서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인다. 세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이 험한 세상을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떠돌고 떠돌다 어느 변방(邊方)의 나무 그늘아래 고요히 숨진다 해도 나는 개코같은 나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허리끈 질끈 동여매고 떠난다. 저 길없는 길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