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 달마로부터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독특한 형태로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을 두고 선종(禪宗)의 황금시대라고 한다. 이렇듯 선종이 풍미하던 시대에 대를 이어 여러 명의 선장(禪匠)들이 탄생한다. 조주선사(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선승)도 그들 중 한명이다.
진나라 예주 방림리에 두 동자가 함께 발심하여 집을 나와 임야사로 출가를 했다. 임야사(林野寺)란 그 이름으로 보아 말이 절이지 그냥 지붕도 없는 들판을 의미한다. 혈사(穴寺)가 절이 아니라 동굴이듯이 들판도 바위굴도 수행자가 머물면 바로 절이 된다. 그야말로 두타행(頭陀行) 그 자체였다는 의미이다.
한 아이의 이름은 종심(從諗· 뒷날의 ‘조주 선사·趙州禪師· 778∼897)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달정이었다. 이 두 동자가 태양산 서봉 아래에서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토굴을 만들고서 정진을 했다. 견성(見性· 깨달음)하여 많은 중생을 교화하길 발원하고 고락을 같이 나누면서 목숨을 걸고 수도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달정은 도중에 병이 나서 죽고 만다. 도반을 잃은 종심은 슬픔을 가누기 어려웠지만, 그 슬픔을 참고 도를 향하여 고승대덕(高僧大德· 깨우침과 덕이 높은 스님)을 찾아 천하를 주유한다.
종심이 열여덟 살 무렵, 전부터 이름을 들어왔던 남전선사(南泉/ 748∼834/ 중국 선종을 중흥시킨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 선사’의 걸출한 제자 3인방 중의 한 명)를 찾아간다. 선사는 이때 몸이 고단했음인지 주지실에 누워 있었는데, 한 사미승이 들어와 인사하는 것을 보자 대뜸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허, 그래? 그럼 서상(瑞像)을 보았느냐?" 서상원에서 왔다는 말에 ‘상서로운 상’을 보았느냐는 선사의 물음이다. 사미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서상은 보지 못했사오나,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남전은 벌떡 일어나 앉는다. 이거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단 번에 알아채고 기뻤던 것이다.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정해진 스승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주인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냐?" 이때 사미는 벌떡 일어나 선사에게 큰절을 하고 아뢰었다. "정월이라고는 하오나, 아직 날씨가 춥습니다. 스승께서는 법체 청안하시옵기 바라옵니다." 사미는 남전을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 인사를 드린 것이다. 남전 선사는 그를 기특히 여겨 특별히 보살피게 된다.
조주가 어느 날 스승인 남전선사에게 여쭈었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남전께서 말씀하시기를 "평상심(平常心)이 도다." 일상생활에 지니고 있는 그 마음이 곧 도라는 말이다. "평상심이 도라면, 따로 수도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도를 마음 밖에서 찾으려 하면 어긋나느니라." "하지만 도를 얻으려고 하면서 수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도라는 걸 알 수 있겠습니까?" "도는 알거나 모르는 데 있지 않다. 만일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참된 도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마치 텅 빈 허공과 같아 아무런 자취도 없느니라." 조주는 이 한마디에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 거리낄 것 없이 훤히 마음이 열린 그야말로 확철대오(確徹大悟)한 것이다.
이후, 조주는 스승인 남전선사를 40년 동안 모신다. 그의 법(法)을 전해 받고나서도 남전산(南泉山)에 머물면서 깨달음 뒤의 수행을 한 것이다. 남전선사께서 돌아가시자, 그의 나이 예순에 비로소 운수승(雲水僧)이 되어 물병 하나와 지팡이만을 짚고 행각의 길을 나선다. 그는 철저한 무소유의 진짜 수행자였다. 무왕이 불교를 탄압할 때는 산에 숨어 나무 열매와 풀뿌리로 주림을 달래고 풀을 엮어 몸을 가리면서도 수행자의 위엄 있는 태도만은 잃지 않았다.
20여년을 운수납자(雲水衲子)로 지내던 조주선사는 나이 여든이 되어 조주땅 동관음원에 자리를 잡았다. 동관음원은 조그맣고 가난하여 겨우 끼니를 이어갈 정도의 절이었다. 선사는 여위고 헐벗었지만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며, 좌선하는 선상(禪床)의 다리 하나가 부러지자 타다 만 장작개비를 대고 새끼로 묶어서 사용했다.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나설 때마다 선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선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도반 달정이가 세상에 다시 오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선사가 120살까지 산 것은 그냥 산 것이 아니라, 앞서 간 도반인 달정이를 기다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달정은 환생하였고 또 출가를 하였다. 수행자가 수행자로 다시 오는 것은, 업을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법명(法名)은 ‘문원’이라고 했다. 문원은 조주선사의 제자가 되어 도를 얻었다.
조주선사에게는 일화도 많다. 조주선사에게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저는 처음 절에 들어와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가르침을 구했다. 조주 선사는 “아침 죽은 먹었는가?”라고 물으셨다. 당시 선종(禪宗)에서는 아침은 죽으로 정해져 있었다. 신참 스님이 “먹었습니다.”라고 답하자, 조주선사는 단 한마디, “발우를 씻거라.”고 말하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식사를 한 발우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하도록 하라고 가르치시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禪)이란 특별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스승을 만나면 가르침을 청하고, 가르침을 들으면 바로 실천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인 것이다.
또 이런 문답도 있다. 유교의 한 선비가 스님이 짚고 있는 주장자를 보고 탐이 나서 물었다.
“부처님은 중생의 원을 들어 준다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지.” “저는 노스님이 짚고 계신 주장자(지팡이)를 갖고 싶습니다. 주시겠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 법이라네.” “스님,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나도 부처가 아니라네.”
하루는 두 사람의 선객(禪客· 선을 참구하는 사람)이 조주 스님을 찾아와서 도를 물었다. 그러자 조주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에는 여기에 온 적이 있던가?” “온 적이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들게(끽다거·喫茶去).” 이번에는 또 다른 한 명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가. 전에 여기에 온 일이 있었나?” “예. 온적이 있습니다.” “그래? 차나 한 잔 들게.” 곁에서 이런 광경을 지켜본 원주스님(院主·절의 살림을 맡아 하는 스님)이 끼어들며 말했다. “스님, 전에 온 일이 없는 사람에게 차를 들라고 하시는 것은 그렇다 치고 전에 온 일이 있는 사람에게 까지 차를 들라고 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이십니까?” 그러자 조주스님이 원주스님을 불렀다. “원주야?” “예~”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게.”
조주선사께 어느 선승이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자 선사께서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셨다. 조주선사의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 의 화두(話頭·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말하는 것)는 유명하다.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이 ‘무자(無字) 화두(話頭)’는 우리나라의 선방 스님들이 가장 많이 참구하는 화두로 알려져 있으며, 이 화두는 간화선(看話禪·화두와 함께 좌선을 하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참선 수행법) 수행(修行)의 핵심 공안(公案)이 된다. 붓다께서는 모든 사물에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주선사께서는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하셨을까. 여기에서는 있다(有) 없다(無)의 무(無)가 아니라 무(無)와 하나가 되는 경계를 봐야(참구·參究)만 한다.
있다를 인식할 때, 우리는 보이는 것을 말할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더 큰 세계도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수학의 여집합과 같은 세계가 있으므로 이 세계를 잘 아는 방법 중의 하나가 부정의 방법이다. 이를 Via Negativa 즉, 부정의 길을 말한다. 그 길에는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가 아니라 절대 긍정과 절대 부정이 아닌 무의 다이나믹(Dynamic)이 있다.
붓다께서는 모든 만물은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설(設)하셨으므로 아무리 하찮은 개라고 할지라도 불성(佛性)이 있는 것이지만, 조주선사는 어떤 스님의 질문에는 “무(無)”라고 대답을 하고 또 다른 스님이 똑같이 물었을 때에는 “유(有)”라고 대답을 했다. 따라서 조주스님의 ‘유’와 ‘무’는 있거나 없거나 하는 뜻의 유나 무가 아닌 것이며, 팔만사천의 법문을 다 뒤져보아도 이에 대한 견해는 결코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본인 스스로 체득해야만 한다는 거다.
확철대오(確徹大悟) 즉, 깨달음은 모든 사물과 현상의 진실에 대하여 분명코 그렇다고 깊이 인식하게 되는 경지를 말한다.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지식이 되어 뇌에 저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식(知識 즉, 알음알이)은 중요한 순간에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분노가 일어날 때 잊어버리고, 슬픔이 일어날 때 잊어버리고 고통이 가중되면 잊는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무심(無心)이 그의 본래 마음이며 참 부처임을 깨달은 사람은 분노가 일어나지 않으며 슬픔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이고 간에 항상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하며 대자유(大自由)를 얻는다는 거다.
깨달은 자(見性)는 세상의 온갖 고통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을 사용한다. 마음이 사물과 현상에 끌려가지 않고 자유자재한 사람을 부처라고 부른다. 깨달은 사람은 삼라만상이 곧 부처인 것을 안다. 우주와 자연은 그대로 부처이다. 스스로 우주이고 스스로 자연이며 그것과 혼연일체이다.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에 맞는 삶을 살다가 자연스럽게 간다. 흘러간 모든 부처께서 그러했듯이...
두 스님이 암자로 돌아가는 길에 냇가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다. 스님들은 내를 건너야 했는데 여인은 물이 깊어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여인을 업어 내를 건네주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동료 스님이 말했다. “자네는 스님이라는 신분을 잊었네. 스님이 어찌하여 여자를 등에 업을 수 있는가?” 듣고 있던 스님이 말했다. “이 사람아, 나는 그 여인을 냇가에 내려주고 왔는데, 자네는 왜 여기까지 그 여인을 데리고 왔는가?”
외국엘 자주 나가시는 신부님이 계셨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공항에서 작성하는 출국신고서 직업란에 항상 ‘신부님’이라고 적는다. 이번에도 그 신부님이 외국에 나가시게 되었는데 역시 출국신고서 직업란에 ‘신부님’이라고 적어 공항직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공항직원이 약간 샐쭉한 표정으로 “아니, 신부님! 제가 지난번 출국하실 때도 뵈었는데, 직업란에 신부님은 꼭 ‘신부님’이라고 쓰시던데 그냥 ‘신부’라고 쓰시면 안되나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신부님 말씀하시기를 “아니, 그러면 스님들은 ‘스’라고 씁디까?”
무엇을 어찌해야만 확철대오 한단 말인가. 아무리 무엇이라 중언부언해본들, 오늘도 필부는 잠은 쏟아지고 목이 마르며 도(道)를 향하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할 뿐이로다. 그래서 그 길을 길 없는 길 문 없는 문 무문(無門)이라 하는 것일 터... 이 멀고도 고단한 길에는 이 또~ ‘술’만한 도반이 없는 거다. 에고, 오늘밤은 술이나 한 잔 거하게 마시고 꿈에서나마 붓다에게 여쭈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