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마살(驛馬煞)이 끼었다는 소리를 들을 지경으로 젊어서부터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총각때는 물론이요 결혼 이후에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어디를 막론하고 좌고우면(左顧右眄)없이 떠나곤 했던 거다. 업무상 출장도 나의 방랑벽을 부채질했음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 어느 날 술이 깬 새벽에 문득 일어나 조곤조곤 세어보니 46개국가량을 떠돌아 다녔다. 일본이나 유럽처럼 부지기수 중복으로 다녀 온 횟수는 빼고도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역마살, 맞다. 자다가도 어딘가를 가보고 싶다고 문득 생각되면 벌떡 일어나서 짐을 꾸릴 정도였다. 일찍부터 회사에서 내준 차는 나의 방랑벽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이 지나면서 차량이 증가하고 여행객이 늘면서부터 국내여행을 자제하는 편으로 바뀌었다. 나의 리듬에 걸리적거리는 자동차와 많은 여행객들에게 부딪히는 순간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백화점과 마트도 먹고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갈 뿐이다. 당연히 여름휴가는 아니간다. 추운 겨울에 조용히 묵묵히 떠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TV속의 자연다큐멘터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작년에 최고 사양의 대형 LED TV를 구입하고부터는 그 보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아프리카에 사는 바람까마귀가 사냥하는 법은 재미있다. 바람까마귀는 미어캣이 사는 땅굴 근처의 나뭇가지위에 조용히 앉아 미어캣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미어캣이 굴에서 나와 사냥을 시작하면, 바람까마귀는 미어캣들이 사냥을 하는 동안 망을 봐 준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독수리가 나타나면 즉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어 미어캣들이 땅굴로 재빨리 피하도록 소리를 질러준다.
독수리가 사라지고 미어캣이 다시 굴에서 나와 사냥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사냥의 성과물을 내면, 바람까마귀는 또 다시 날카로운 경고음을 내어 놀란 미어캣들이 허둥지둥 굴속으로 도망치도록 유도한다. 바람까마귀는 그 혼란의 틈을 이용하여 미어캣의 먹이를 가로채 나뭇가지위로 날아 올라가 맛있게 냠냠한다. 잠시 후, 다시 미어캣들이 굴에서 나와 먹이사냥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자 바람까마귀는 또 다시 무엇이라도 나타났다는 듯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보지만 미어캣들도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어렵쇼?” 미어캣들이 속지 않음을 간파한 바람까마귀는 이번에는 다급한 미어캣의 울음소리를 흉내내어 놀란 미어캣들이 황급히 몸을 숨기도록 한다. 그 순간을 이용하여 바람까마귀는 또 다시 미어캣의 먹이를 가로챈다. 소리의 흉내를 잘 내는 바람까마귀는 친절하게도 먼저 상황을 알려준답시고 두려움을 각인/ 훈련시킨다. 그리고는 다른 동물들의 먹이를 가로챈다. 그 다음에는 동료도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또 먹이를 가로챈다.
바람까마귀류는 몸길이가 대부분 20~60㎝ 정도이며 광택이 나는 검은색의 깃털을 갖고 있고 머리나 배부분이 흰색인 것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서태평양의 섬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 서식한다. 거칠고 감미로운 음조가 혼합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몇몇 종류는 다른 동물의 음색을 흉내를 잘 낸다는 거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충청남도와 강원도에서 발견이 된 적이 있으며, 이 밖에도 제주도와 낙동의 하구/ 서해의 섬에서도 발견이 된다고 한다. 시절이 어렵다보니 인간 바람까마귀가 많은 세상이다. 스마트폰으로 까지 진화한 첨단의 시대에도 인간 바람까마귀는 존재한다. 자나깨나 보이스피싱에 주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