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와서 처음 타 본 기차는 장항선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정처없이 무한 우주속을 끝없이 달리는 기차에 잠시 탔다가 내리는 승객에 지나지 않는다. 고딩시절, 여름방학으로 밤기차에 올라 기차의 출입구 계단 난간의 손잡이에 매달려 맞바람을 거세게 맞으면 기차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환한 불빛 뿐 세상은 온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잠깐 두 손만 잠시 놓아버린다면, 삶은 조용히 간단하게 끝날 것이다. 한번 해보고싶은 호기심으로 간질거렸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인간의 일생이란 잠시 승차하여 객차안의 몇몇 사람들과 잠시 잠깐 인연을 맺고 다음이거나 그 다음 역에서 하차하여 조용히 어둠 속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지는 덧없는 존재이다. 결국, 인생이란 우연히 이 세상이라는 기차에 올라 탄 승객이다.
수년동안 오래 기다린 나의 기대에 보답하듯이, 봉준호 감독이 끌고 돌아 온 덩치 큰 열차는 대단히 재미있다. 2004년 겨울의 어느 날,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대머리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시커먼 표지의 프랑스 만화를 접한 게 그 시작이란 거다. 미국의 대표 영화 주간지인 ‘버라이어티’는 “〈설국열차〉는 한국 시장에서 ‘괴물’ 이상의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과 함께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봉준호의 훌륭한 묘사력, 세심하게 그려진 캐릭터도 돋보이지만 관객의 지적 수준을 존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호평했다. 북미지역의 최대 영화전문지인 ‘트위치 필름’ 또한 “〈설국열차〉는 한국 감독이 만든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영어 영화”라는 평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봉준호는 이미 자신의 게임에서 할리우드를 이겼다”고 평가했다.
〈설국열차〉는 현대사회 모든 인간들 삶의 축소판으로 계급사회의 이면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꼬리칸에서 맨 앞 엔진칸으로 갈수록 기차에 올라탄 이들의 계급은 겉모습부터 다르게 표현된다. 꼬리칸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밀어내고 심장을 겨누는 총구 앞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열차 꼬리칸에 무임승차한 그들은 17년간 빛이 차단된 꼬리칸에서 제대로 된 옷 한 벌 가지지 못하고 벌레로부터 추출한 단백질 블록을 빵 대신 씹어 먹는 사람들이지만, 열차의 2인자로 대변되는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은 화려한 모피 코트와 순백의 의상으로 확연한 계급사회를 보여준다.
〈설국열차〉는 초반에 보여준 속도감과 짜릿함과 달리 방어벽을 넘어설 때마다 쾌감이 극대화 될 것이란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당신은 지금 어느 칸에 타고 있습니까?”하고 질문하여 혼란을 부여하며 이를 통하여 〈설국열차〉는 소수가 만들어놓은 계급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현대인의 고뇌를 표현했다. 희생을 감수하고 방어벽을 열 것이냐 아니라면 이정도의 상황에서 만족할 것인지를 말이다. 또한, 계급사회 속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를, 또 어떻게 고착화한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를 봉준호는 묻고 있는 것이다.
개혁 또는 창조라 함은 완벽한 질서가 아니라 결함과 부조화/ 혼란속에서 싹트고 발전한다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순리이다.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기차는 결함과 혼란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인공적이고 억박적인 절제된 질서와 균형의 조직이다. 대체적으로 지도자들은 완벽한 질서와 균형을 갈구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합리주의가 추구하는 완벽한 통제란 애시당초 불가능한 거다. 독일의 나치즘이 실패했으며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실패한 좋은 사례이다. 〈설국열차〉 또한 역사가 증명한 것 처럼 통제 절정의 순간에 엄청난 폭주가 무너져 내렸다. 불균형의 상태는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개혁과 창조만을 강조하는 인위적인 통제만으로는 역사/ 기차의 질주는 지속할 수 없다.
봉준호 감독은 400억 제작비로 완성한 〈설국열차〉를 통해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자신만의 주제의식을 명철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묻는다. 현대판 노아의 방주 〈설국열차〉는 과연 새로운 세계의 대안인가 아니면 지금껏 이어온 삶의 연장선인가를 말이다. “저의 관심사는 늘 '영화'와 '인간'이었어요. 영화란 무엇인가. 어떠한 것이 진정 영화다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나. 앞으로도 이 같은 물음은 계속해서 하게 될 것 같아요. 이야기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 프랑스 만화가 저를 충동질해 〈설국열차〉를 만들었듯 저를 자극하는 소재, 이야기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죠. 거기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말입니다.” 〈설국열차〉를 시작으로 한 봉 감독의 도전은 흥미롭게 지켜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