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길에서 만난 전북 고창의 '판소리박물관'은 비와 낭만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비에 젖은 '고창읍성'은 더욱 고즈넉해 보이고...
50년 전통의 고창 조양식당은 몇년만에 다시 와보니, 리모델링으로 그 모습이 깔끔해졌다.
담양은 어딜 가도 메타쎄콰이어나무가 가로수로 길가에 즐비하다.
조선의 선비 양산보(梁山甫 1503~1557)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당시의 과거제도인 현량과에 급제하였으나, 기묘사화로 인하여 스승 조광조가 유배되고 결국 사약을 받고 절명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고향인 전남 담양군 남면 지석리에 파묻혀 별서 정원 '소쇄원(瀟灑園)'을 만들어 은둔의 삶을 살았다.
소쇄원은 양산보 선생 일가의 별서에 부속된 원림으로서, 생활은 본가에서 하고 소쇄원에서는 사색과 독서 교유(敎諭) 등 문화생활과 인근 사림의 후학들을 훈육하였다. 현재의 건물로는, 광풍각 등 3채가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부원당 등 10여채의 정자가 늘어서 있었으나, 정유재란 당시 많은 누각들이 소실되었다는 거다.
양산보 선생은 이 원림을 깨끗하고 맑은 기운이 깃든 곳이라 하여 소쇄원으로 칭하였으며, 광풍각과 그 위로 서재가 딸린 사랑채와 같은 작은 정자를 제월당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스승 조광조에 대한 간절한 추모의 정을 담고 있다.
조광조는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무숙을 흠모하여 그 인물됨을 맑은 날의 청량한 바람과 비 갠 뒤의 달빛과 같다고 하였다. 광풍과 제월은 각각 그러한 의미의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에서 따왔으며 스승을 흠모하는 양산보의 애절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소쇄원은 조선의 정원을 대표하는 자랑할만한 원림으로 그 특징이 자연과 그대로 어울린 자연스러움을 지닌다.
다른 나라의 정원들과 다르게 산과 오솔길과 건물과 또랑이 별도 별도로 구별됨이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진다는 점이다.
80년대초 무렵에 처음 와 본 이후로 몇년마다 자주 들려 옛선비의 정신을 흠향하곤 하였는데...
최근엔 도시물에 변색하여 자주 못오다가 오랫만에 와 보니 감개 또한 무량하다.
소쇄원을 구경시키고저 마지막에 함께 왔었던 전북대학 교수인 친구가 새삼 떠오른다.
소쇄원을 비롯한 인근의 식영정/ 환벽당/ 면앙정/ 죽녹원을 둘러 본 날 밤 선조들의 사상과 문학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만취하였던 그 밤이 그립다.
울안 골짜기가 따뜻하였던지.. 철쭉이 때아니게 예쁘게 피어있다.
여행도 밥심이다.
기운이 없으면 구경도 못하므로 잘 먹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
오랫만에 맛 본 바글바글 끓여 내 온 참게탕이 일미이다.
전남 화순에 있는 천불천탑의 신비를 간직한 '운주사'이다.
운주사는 미륵의 하생(下生)을 기다리던 이름없는 민초들의 원처럼 용화세상을 꿈꾸고 있는 자의...
못이룬 꿈과 절절한 안타까움이 저리도록 배어있는 미륵신앙의 오랜 성지이다.
그래서, 운주사의 이모저모는 눈물겹도록 정겹다.
구례의 화엄사와 순천의 송광사는 나에게 불교라는 대화엄의 세계를 가르쳐 준 고마운 절집이다.
오랫만의 원행으로 다시 찾은 그 모습이 아름답다.
다만, 대수술로 인하여 오랜 공백후에 카메라를 잡았더니...
그 조절법을 몽땅 잊어서 아름다운 송광사의 가을 풍경을 잡은 사진이 어색함은 못내 아쉽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꿈꾸는 선승들의 서슬 푸른 선기가 아름다운 선방입구이다.
대웅전앞에는 장바닥처럼 시끄러워도, 이 구역은 한낮의 햇살만이 한가로이 졸고 있을뿐이다.
나는 비교적 따끈하게 끓는 온돌을 즐기는데.. 대부분의 휴양림은 바닥온돌을 데우면 방안공기마져 더워져 자다가 자주 깨곤 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방안에 윗풍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덕유산에서의 잠자리는 바닥은 뜨거울망정 방안 공기는 서늘하여 무척 쾌적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편안하게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은 그만큼 상쾌하다.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 정상엘 오르니, 가슴이 서늘하도록 시원하다.
'대둔산'은 완주군과 논산시와 금산군에 접하여서 "거기가 어디냐?"고 누가 물었을 때, 딱히 대답하려면 항상 망설여지는 곳이다.
한반도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려도 팔색조라 불려도 좋을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특히,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반질반질한 철다리를 오르는 기분은 아찔하도록 짜릿하다!!!
멀리 빨갛게 계곡의 돌기둥을 연결한 가파른 철다리가 보인다.
대둔산엘 오면, 반드시 필히 올라 볼 일이다...ㅎㅎ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도 재미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부러 난간의 줄을 잡고 발을 굴러 여자들을 혼비백산 시킨다...ㅎㅎ
'올 가을은 시간을 단풍속에 매어두거라.
가을타는 냄새 그속에서
나도 한번쯤 태우고 싶은
그리운이 만나러 떠날수 있게.
노을빛 머플러 목에 두르고
갈바람 옷깃 스치는 억새밭에서
바라만 보던 사람 만나고 싶어.
여름이 힘들었던 올 가을은
되돌려 가을로 멈추어 놓고
오색단풍 이야기 엮어내는
잊지 못할 추억하나 만들고싶어.'
------- '가을에게'중에서/ 고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