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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경보(大雪警報) 속으로

Led Zepplin 2014. 12. 7. 23:50

 

 

  날씨가 추워도 고속도로는 한산하지 않았다, 며칠 날이 궂었다가 문득 햇볕이 좋은 탓이었을까. 시내도로도 아니고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는데 차량이 앞에서 걸리적거리면 은근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날릴 겸 '안성휴게소'에 들러 Shot을 추가한 Americano 한 잔을 뜨겁게 마셨다. 천안을 지나 '천안논산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오가는 차량의 숫자는 확연히 적어졌다. 휴대폰을 차량의 Audio에 Bluetooth로 연결하여 'KC & The Sunshine Band'의 'That's The Way'를 틀어놓고 엑설레이터 페달에 살짝 힘을 주어 밟는다. 질주하는 속도를 통하여 비로소 도시를 떠났음이 몸으로 느껴진다.

 

과속에서 듣기 좋은 음악으로는 Queen/ Eagles/ Led Zeppelin/ Steppen wolf/ CCR 등이다. 과속으로 부여를 통과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서천이 가까워지자 눈발은 강해졌지만, 도로에 쌓이지는 않았다. 속도를 낮추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사고 가능성의 스릴을 즐기며 과속으로 내달렸다. 서천 무렵에서 고속도로 램프를 돌아나와 호남고속도로와 연결지점에 도달하자 속도를 낮추고 눈발을 즐기며 음악을 바꾸었다. 눈을 맞으며 듣는 Classic은 서정적이다. 서천을 지나 금강대교를 통하여 군산으로 접어들자 설국(雪國)의 문턱에 진입하였음을 느끼게 되었다.

 

군산시내는 이미 설국으로 변하여 있었다. 시내를 통과하여 내항의 바닷가로 나왔다. 초저녁, 내항의 부교위에 서니 갯바람이 조금 불었으며 항구에 정박한 소형선박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졸고있었다. 선박들이 졸고있는 그 위로 눈발이 성글게 유성처럼 날리고 있었다. 눈발속으로 갯가 특유의 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렇다. 이 비린내를 맡고싶어 두어시간 남짓을 달려 내려온 것이 아니었을까. 몇년전만 해도 이 시각에 도착하여 내려오면, 해망동 갯가 어디쯤엔가 있는 낡고 오래된 포장마차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내어주는 차가운 소주 한 병을 따고 비린내나는 안주를 시켜놓고 먼바다를 응시하는 눈빛으로 소주를 마셨던 거다.

 

그렇게 시작된 술은 여러 추억들을 불러내 함께 어울려 시내 여기저기의 술집들을 순레하며 늦도록 대작하며 다같이 촉촉히 젖어들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홀로 조용히 조금 고독해 보고 싶다. 내가 맨 처음 군산에 왔던 그 날 밤에도 눈이 오늘처럼 무쟈게 왔던 것이다. 소년은 그날 처음으로 밤바다를 보았으며 배를 구경하였다. 그렇게 신새벽이 오자, 뱃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건조된 수만톤의 대형선박을 끌고 깊은 바다로 나가 온갖 테스트를 수십차례 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석유시추선을 희롱하듯이 테스트하는 희열(멋모르고 시운전에 탑승한 임원진들은 식겁하였지만..ㅎㅎ)도 맛보았다. 그러한 바다와의 인연은 소년의 신새벽에 시작되었던 거다.

 

 

군산시내.. '8월의 크리스마스'가 촬영되었던 골목들은 금방이라도 한석규와 다림이 심은하가 추운 어깨를 움추리고 차가운 두 손을 비비며 지나갈 것만 같다. 비록 초저녁일지라도 지방의 중소도시는 해가 떨어지면 인적이 뜸하다. 드물게 차량이 지나갈 뿐... 한 손을 서로 잡은 채 웃음으로 발스케이트를 즐기며 골목을 누비는 청춘남녀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내 머릿속과 흐릿한 시야에서만 두 청춘남녀가 파안대소로 깔깔거리며 발스케이트를 지치고 메아리를 남기며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도록 추억은 내 곁을 떠나지않고 나를 지켜주었다.

 

"이제는 타인일 뿐이라고/ 영혼의 영내 출입을 금지 시켰더니/ 하늘이 아픔을 하얗게 쏟는 밤/ 남은 것들만으로도/ 이토록 그리움이 연장되고 맙니다/ 사람 그리는 일이/ 한 동안 열중하다 시들해지는/ 일종의 취미 같진 않음인가/ 아아! 잔혹하여라/ 마음이 작아서 못견뎌하던 사람이/ 모서리 뾰쪽한 꽃을 뿌리며/ 맨발로 가슴팍을 건너갑니다"  ---  눈오는 밤에 쓰는 편지/ 박해옥

 

 

'고우당', 전국에서 일본식 다다미방에서 잠을 자볼 수 있는 유일한 숙박시설이다. 오늘처럼 눈 많이 오는 밤에 고우당의 방에 들어서니 일본 삿포로의 료칸(旅館/여관)에 들어 선 느낌이다. 고우당의 마당이 눈속에서는 또 다른 운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눈내리는 밤의 다다미방은 아나로그적인 추억을 연상시킨다. 일본의 북방 어느 도시에 온 듯 기묘한 기분... 예전 일제시대에는 군산에 유독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나오는 곡식들을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함일 것이다. 군산시는 그런 굴욕의 역사를 이겨내고 아픔을 역이용하여 문화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본의 한 부분을 군산의 구시가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으로 변모시킬 작정인 듯 하다.

 

 

 

날이 밝아 찾아간 은파호는 청량하고 아름다운 설원이다.

 

 

 

 

다리를 쉴 겸 군산대학교 앞의 Starbucks에서,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바깥풍경을 느긋하게 즐긴다. 이렇게 지내고보니, 나이들어 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엔 다시 폭설이 내린다는 예보이니, 떠날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2015년에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