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치듯 수도권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도착한 지리산 깊은 곳, 화엄사 아랫마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별빛 차가운 산길을 따라 바쁜 일없이 올라가는 나의 발길은 달빛을 받아 고즈넉했다. 멀리 고라니의 울음우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 울음은 왠지 슬펐지만 마음은 애써 담담했으며 문득 떠나간 암컷을 찾는 울부짖음으로 들린 건 나만의 기우였을까.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달빛을 받아 개울의 물결은 춤을 추었으며 재잘거리는 개울의 물소리가 조금 멀리 들릴 즈음해서 목탁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발길을 재촉하여 일주문을 들어서자 나를 붙잡고 매달리던 속세의 물결도 마지못해 옷자락을 놓아주고 억겁의 세월 속에 묻혀있던 불심이 소리없이 불을 지피며 깨어난다.
잠시 발길을 멈춰 멀고도 먼 뒤를 돌아보니 잊혀진 풍경속에 부르기도 안타까운 수많은 얼굴들이 주마등되어 스쳐가고 대웅전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는 어느 새 극락왕생을 빌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닮아있었다. 얼마를 잤을까의 그 비몽사몽 속에서, 도량석을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잠 깨어나니 그 언젠가의 동해바다 파도소리와 같던 꿈은 슬며시 물러난다. 잠을 씻고저 약수터에 이르니 먼저 온 석가세존이 웃으며 합장하고 얼른 엎드려 얼굴을 씻고 돌아서니 뒷전에 있던 달빛만이 합장으로 맞이한다. 예불을 위하여 대웅전에 오르니 문득 떠오르는 생각, 2012 세계 최고 권위의 Grammy Awords에 빛났던 황병준씨가 송광사 대웅전 예불소리의 음반 녹음중 녹음마이크의 위치 선정으로 고심 끝에 최적이라고 찾은 곳은 대웅전 중앙도 공중도 아닌 부처님의 귀 바로 옆이었다는 일화는 평범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송광사 건축은 신라말기이니 지금으로 부터 1,100년전 무렵...
대웅전, 그 신새벽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 팔정례로 부터 이어지는 새벽예불은 마침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저 언덕으로 저 언덕으로 저 언덕으로 가자. 그 깨달음의 언덕에서 일체를 성취하자)로 마감한다. 깨달음이 부족한 자에게 보리살타의 지혜에 의지하여 저 평화로운 언덕을 오르자는 말씀은 듣기에 따라 자못 아프며 부담스럽다. 현실은 맆스틱 짙게 바른 욕망과 반짝이는 매혹적인 물질로 가득하고 그 유혹은 일상이다. 마침내 온갖 번뇌와 망상이 반야지혜의 불꽃에 완전히 불타 사라져버린 평화로운 저 언덕으로의 해탈열반,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당문을 나서자 새벽안개속에 그 꿈은 붉디붉은 꽃 매화향이 되어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촉촉하게 적셔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