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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지난 바닷가에서

Led Zepplin 2015. 8. 31. 01:56

 

 

철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달빛은 모래위에 가득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러운데

어깨위에 쌓이는 당신의 손길

그것은 소리없는 사랑의 노래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듣는다

 

아 기나긴 길 혼자 걸으며

무척이도 당신을 그리곤 했지

아 소리죽여 우는 파도와 같이

당신은 흐느끼며 뒤돌아 봤지

철지난 바닷가를 혼자 걷는다

옛일을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 송창식/ 철지난 바닷가

 

진입로 입구의 슈퍼와 식당/ 술집들이 장사를 그만두어 파장한 것은 분명하였으며 캠핑족에게 반찬을 팔던 반찬가게의 진열대도 비어있었고 튜브와 수영복를 대여해 준다는 간판마져도 공터에서 머쓱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지나간 여름 그렇게 왁자하던 해변 이미 피서객들이 물러간 바다는 서늘하도록 한산했다. 바닷가 모래밭 가벼운 물살의 솜씨로 만든 날선 물톱을 하나 둘 밟으며 미소같은 해풍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흔들거리고 있는 파도를 향하여 맨발로 나아가본다. 발목까지 적신 바닷물은 차가움이 느껴졌으며 모래밭엔 서너 명 피서객보다 많은 물새들이 조갯살을 찾아 느리게 자박자박 걸어 다닐 뿐 추억속의 그 녀는 그 곳에 없었다.

 

발자욱을 봅니다.

발자욱을 봅니다.

모래위에 또렷한

발자욱을 봅니다.

 

어느날 벗님이 밟고간 자욱

못뵈올 벗님이 밟고간 자욱

혹시나 벗님은 이 발자욱을

다시금 밟으며 돌아오려나.

 

님이야 이길을 올리없건만

님이야 정녕코 돌아온단들

바람이 물결이 모래를 씻어

옛날의 자욱을 어이 찾으리.

 

발자욱을 봅니다.

발자욱을 봅니다.

바닷가에 조그만

발자욱을 봅니다.

 

                                      ----- 양주동/ 별후(別後)

 

삶의 마지막 순간 천국을 향한 두 남자의 뜨거운 여행을 묘사한 토마스 얀 감독의 영화 녹킹 온 해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의 루디는 같은 병실에 입원한다. 시한부 판결을 받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남자. “바다를 한 번도 못 봤어?” “.. 한 번도...” 단 한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마틴은 그와 함께 바다로 향하는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을 위해 그들이 훔친 차는 트렁크에 100만 마르크가 들어있는 악당들의 스포츠카였던 것. 뜻밖의 돈을 얻게 된 이들은 천국의 문턱에서 그들이 평소 하고 싶었던 소원을 이야기하며 바다를 향하여 출발한다.

 

악당들과 경찰들의 치열한 추격 속에 그들의 여행은 위태로웠지만 영화의 끝에는 마침내 바닷가에 도착한다. 그리고, 바닷가 모래톱에 주저앉아 마틴이 루디, 할 말 있어?”라고 묻자, 루디가 대답한다. “두려운 건 하나도 없어.” 마틴은 말했다. “천국에서 주제는 하나야. 바다지.. 노을이 질 때 불덩어리가 바다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거든..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은 촛불과도 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쫒기는 시한부 인생, 그들이 눈을 감기 전에 만나고 보았던 철지난 바닷가의 쓸쓸한 풍경은 처절할만큼 서늘했으며 부는 바람마져 너무 차가웠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람을 환경의 동물이라 했던가. 이런 환경과 장소에서는 닫혀있던 오감의 문이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열리면서 생각도 점차 깊어진다. 도시의 어느 교차로에선가 환락가 골목의 어느 왁자한 주점에선가 그도 아니라면 오가는 수많은 차량과 군중속에서 나도 모르게 잃어버린 것들이 문득 떠올랐다. 설혹 지금 이 순간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할지라도 그 상실감은 더 이상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무게추는 무거워질 것만 같다. 한 바탕의 축제가 끝난 이 텅 빈 공허한 바닷가에서 얻어진 상실감은 심연으로 한없이 더욱 가라앉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반드시 상실감이 아니라 자괴감 아니 그 무엇이라 해도 좋겠다.

 

그러나, 마침내 바로 그 심연의 바닥까지 이르렀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것들과 연결된 그 끈을 잘라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생각의 끝 이 길의 끝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그동안 차마 놓지 못했던 그 것들과의 결연한 단절이 이루어야만 한다. 포구에 붙잡힌 채 출항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묶여있던 배가 결국 출항하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발길 닿는대로 오고 가며 거닐었던 바닷가에는 어느 새 노을이 저만치 다가왔으며 내 그림자와 출렁이던 바다 그리고 해송과 노을은 그대로 철지난 바닷가의 풍경화가 되었다.